
얼마 전 상담에서 30대 맞벌이 부부가 청약통장을 들고 왔습니다. 통장 가입은 7년이 넘었고 예치금도 300만원이 들어 있었는데, 막상 넣으려던 단지는 1순위가 아니었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민영주택 기준은 맞췄지만, 그 단지가 요구한 거주기간과 세대주 조건을 공고일 기준으로 보지 않았던 겁니다.
청약은 운도 필요하지만, 그 전에 숫자를 틀리면 출발선에도 못 섭니다. 저는 상담할 때 청약을 상품처럼 권하지 않습니다. 대신 내가 가진 점수, 통장, 예치금, 대출 여력, 당첨 뒤 현금 흐름을 놓고 되는 청약과 안 되는 청약을 먼저 가릅니다.
1. 1순위는 통장만 오래 들고 있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2026년 8월 기준으로 청약 1순위에서 가장 많이 헷갈리는 부분은 민영주택과 국민주택의 기준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민영주택은 가입기간과 예치금이 중요하고, 국민주택은 납입 횟수와 납입 인정금액이 더 중요합니다. 같은 청약통장이라도 평가 방식이 다릅니다.
민영주택은 보통 투기과열지구나 청약과열지역이면 가입 후 24개월, 수도권은 12개월, 비수도권은 6개월을 봅니다. 여기에 지역별 예치금이 들어 있어야 합니다. 반면 국민주택은 납입 횟수와 장기 납입 내역이 더 크게 작용합니다. 국토교통부 안내에 따라 청약통장 월 납입 인정액은 과거 10만원 중심에서 25만원까지 확대된 흐름이라, 공공분양을 노리는 분은 단순히 통장 잔액보다 매월 꾸준히 인정 납입을 쌓는 쪽이 중요합니다.
실무에서 가장 아까운 경우는 공고가 뜬 뒤에야 통장을 보는 분들입니다. 청약은 입주자모집공고일 기준으로 자격을 판단하는 항목이 많습니다. 하루 늦게 세대주를 바꾸거나, 공고일 이후 예치금을 채우면 해당 청약에서는 소용이 없을 수 있습니다.
2. 예치금 300만원이면 다 되는 줄 알면 위험합니다
민영주택 청약 예치금은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의 기준을 따릅니다. 기준 지역은 아파트가 있는 곳이 아니라 신청자 주민등록상 거주지입니다. 서울 아파트에 넣더라도 내가 경기도 거주자라면 서울 기준이 아니라 기타 시·군 기준을 봅니다.
- 서울·부산 거주자: 전용 85㎡ 이하 300만원, 102㎡ 이하 600만원, 135㎡ 이하 1,000만원, 모든 면적 1,500만원
- 그 밖의 광역시 거주자: 전용 85㎡ 이하 250만원, 102㎡ 이하 400만원, 135㎡ 이하 700만원, 모든 면적 1,000만원
- 기타 시·군 거주자: 전용 85㎡ 이하 200만원, 102㎡ 이하 300만원, 135㎡ 이하 400만원, 모든 면적 500만원
여기서 숫자 하나가 갈립니다. 전용 84.99㎡는 85㎡ 이하로 보지만, 85.01㎡는 102㎡ 이하 구간으로 넘어갑니다. 상담하다 보면 “84 타입인 줄 알았는데 왜 600만원이 필요하냐”는 질문이 나옵니다. 공고문에는 전용면적이 소수점까지 적혀 있으니 모델명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됩니다.
3. 가점 84점 중 실제 승부는 부양가족에서 갈립니다
민영주택 가점제는 총 84점입니다. 무주택기간 32점, 부양가족 수 35점, 청약통장 가입기간 17점입니다. 청약홈 가점 계산 기준도 이 구조를 따릅니다. 통장을 15년 넘게 유지해도 통장 점수는 최대 17점입니다. 그래서 젊은 1인 가구가 통장만 오래 들고 있었다고 해서 인기 지역에서 높은 가점을 만들기는 어렵습니다.
무주택기간은 보통 만 30세가 된 날과 혼인신고일 중 빠른 날부터 계산합니다. 29세 미혼이라면 체감상 계속 무주택으로 살았어도 가점 계산에서는 불리할 수 있습니다. 부양가족은 본인을 빼고 계산합니다. 배우자, 자녀, 일정 요건을 갖춘 부모님 등이 들어가지만 주민등록 등재 기간과 실제 부양 요건을 같이 봅니다.
제가 보는 대략의 기준은 이렇습니다. 35점 안팎이면 인기 민영 단지의 가점제만 바라보기보다 추첨제 물량, 생애최초·신혼부부·다자녀 같은 특별공급 가능성을 함께 봐야 합니다. 45~55점대는 지역과 면적을 많이 가립니다. 60점 이상이면 선택지가 생기지만, 서울 핵심지나 분양가가 낮은 단지는 그 점수도 넉넉하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4. 청약 전에는 당첨보다 계약금을 먼저 봐야 합니다
청약 상담에서 제가 제일 먼저 묻는 숫자는 가점이 아니라 현금입니다. 당첨되면 보통 계약금 10% 안팎이 빠르게 필요합니다. 분양가 6억원이면 계약금만 6,000만원입니다. 발코니 확장, 옵션, 중도금 이자, 잔금 때 대출 한도까지 생각하면 통장에 6,000만원만 있다고 끝나는 구조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분양가 7억원 아파트에 당첨됐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계약금 10%면 7,000만원, 중도금 60%는 집단대출로 진행될 수 있지만 개인 신용, 규제지역, 기존 대출에 따라 조건이 달라집니다. 입주 시점에 잔금 30%인 2억1,000만원을 준비해야 하는데, 그때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생각보다 적게 나오면 전세를 놓거나 급하게 신용대출을 찾게 됩니다.
문제는 청약 당첨 후 포기했을 때 생기는 제한입니다. 단지와 공급 유형에 따라 재당첨 제한, 청약 제한, 특별공급 재사용 제한이 얽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청약은 “되면 좋고 아니면 말고”로 넣는 복권이 아닙니다. 당첨됐을 때 계약까지 갈 수 있는지 먼저 계산해야 합니다.
5. 점수가 낮아도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청약 가점이 낮다고 통장을 해지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웬만하면 말립니다. 청약통장은 금리가 아주 높은 상품은 아니지만, 주택을 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선택권을 남기는 계좌입니다. 특히 청년, 신혼부부, 생애최초, 신생아 관련 공급처럼 정책형 물량은 일반 가점과 다른 문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만 모든 청약을 붙잡을 필요는 없습니다. 내 가점이 32점인데 최근 커트라인이 60점대인 전용 84㎡만 계속 넣는 건 시간 낭비에 가깝습니다. 같은 지역이라도 전용 59㎡, 비인기 타입, 추첨제 비율이 있는 면적, 잔여세대, 무순위 조건을 따로 봐야 합니다. 물론 무순위도 거주지, 무주택, 재당첨 제한 등 조건이 붙는 경우가 있으니 공고문 기준이 먼저입니다.
청약은 남들이 좋다고 하는 단지를 따라가는 게임이 아닙니다. 내 통장으로 가능한 자격, 내 점수로 닿을 확률, 내 현금으로 버틸 수 있는 계약 구조를 맞춰야 합니다. 은행 창구에서 오래 봐온 바로는, 좋은 청약은 당첨되는 청약이 아니라 당첨된 뒤에도 생활이 무너지지 않는 청약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