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통영항 대합실에 앉아 있는데, 옆자리 부부가 비진도와 욕지도를 같은 날 다녀오겠다고 시간표를 펴놓고 있더군요. 마음은 이해됩니다. 통영 섬여행을 검색하면 이름난 섬이 한꺼번에 뜨니까요. 그런데 섬은 지도 거리보다 배 시간이 먼저입니다. 통영 앞바다는 섬이 촘촘해 보여도, 출발항이 다르고 막배 시간이 빠르면 하루 동선이 그대로 접힙니다.
저는 통영 섬을 갈 때 항상 세 가지를 먼저 봅니다. 어느 항에서 타는지, 섬 안에서 얼마나 움직여야 하는지, 그리고 결항되면 하루를 더 묵어도 되는 일정인지입니다. 이 세 가지만 잡아도 여행이 훨씬 덜 흔들립니다.
통영 섬여행은 목적지보다 출발항부터 고르는 게 낫다
통영 섬 배편은 통영항여객선터미널 하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통영항에서는 비진도, 매물도, 소매물도, 한산도, 연화도, 욕지도 방면 배를 많이 탑니다. 사량도는 보통 가오치항을 많이 씁니다. 욕지도는 통영항, 삼덕항, 중화항을 비교해야 할 때가 있고요. 같은 욕지도라도 어디서 타느냐에 따라 배 타는 시간과 차 싣는 조건이 달라집니다.
처음 가는 분에게는 통영항 출발이 가장 편합니다. 시내 숙소와 식당, 주차장 접근이 좋고 대합실도 익숙합니다. 다만 성수기 주말에는 표를 끊는 줄보다 주차장 들어가는 시간이 더 걸릴 때가 있습니다. 차를 가져간다면 출항 40분 전 도착은 빠른 편이 아닙니다. 차량 선적까지 한다면 1시간 전 도착을 잡는 게 마음이 편합니다.
- 비진도: 해수욕과 짧은 트레킹을 같이 하려는 사람에게 맞습니다.
- 욕지도: 섬 안 이동거리가 있어 1박이나 차량 이동이 편합니다.
- 사량도: 등산 목적이 분명한 사람에게 좋고, 가벼운 산책 기분으로 가면 힘듭니다.
- 한산도: 배 시간이 짧아 통영 섬여행 입문 코스로 무난합니다.
- 매물도·소매물도: 물때와 회항 시간을 꼭 맞춰야 해서 초행 당일치기는 빡빡합니다.
당일치기라면 한산도나 비진도가 무난하다
당일 통영 섬여행은 욕심을 덜어내야 합니다. 오전 배로 들어가서 점심 먹고, 한 코스 걷고, 막배 전 여유 있게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정도가 적당합니다. 저는 초행자에게 한산도나 비진도를 먼저 권합니다. 한산도는 배 시간이 비교적 짧고, 제승당 주변만 걸어도 섬에 들어왔다는 느낌이 납니다. 가족이나 부모님과 함께라면 무리 없는 쪽입니다.
비진도는 풍경이 좋습니다. 특히 내항과 외항, 잘록한 해변 구조가 선명해서 처음 보는 사람은 대부분 오래 기억합니다. 비진도 산호길은 걷는 맛이 있지만 여름 한낮에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숲길과 해변을 같이 지나도 땀이 꽤 납니다. 외항 쪽에서 시간을 너무 쓰면 돌아오는 배가 부담스러워지니, 도착하자마자 돌아갈 배 시간을 다시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비진도에서 흔한 실수
비진도는 사진만 보고 가면 동선이 느슨해집니다. 해변에서 한두 시간 놀고 나면 산호길을 반만 걷게 되거나, 반대로 산호길을 욕심내다 해수욕 시간이 사라집니다. 어린이 동반이면 해변 중심, 걷는 사람이면 산호길 중심으로 잡는 게 낫습니다. 둘 다 하려면 첫 배로 들어가고 간식과 물을 넉넉히 챙겨야 합니다.
1박 2일이면 욕지도와 사량도가 살아난다
욕지도는 당일로도 갈 수 있지만, 저는 1박 쪽이 더 맞다고 봅니다. 섬이 작아 보여도 막상 들어가면 전망대, 마을, 해안길, 카페, 식당 위치가 흩어져 있습니다. 차를 싣거나 섬 안 버스와 택시를 섞어야 동선이 부드럽습니다. 숙소는 선착장 가까운 곳이 편하고, 조용한 밤을 원하면 마을 안쪽 민박도 괜찮습니다. 다만 식당 영업은 계절 차이가 큽니다. 비수기 평일에는 저녁 선택지가 확 줄어듭니다.
사량도는 통영 섬여행 중에서도 성격이 분명합니다. 지리산, 불모산, 옥녀봉 능선을 걷는 코스는 조망이 좋지만 바위 구간이 있고 계단과 난간이 이어집니다. 등산화 없이 운동화만 신고 오르는 사람을 종종 보는데, 비 온 뒤에는 정말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산을 타러 간다면 새벽에 움직여야 하고, 산행 뒤 씻고 나올 시간까지 계산해야 합니다.
- 욕지도 1박: 해안 드라이브, 마을 산책, 낚시, 느린 식사에 맞습니다.
- 사량도 1박: 능선 산행 뒤 서두르지 않고 쉬려는 사람에게 맞습니다.
- 비진도 1박: 여름 해수욕과 해 질 녘 해변 시간을 원할 때 좋습니다.
- 매물도 1박: 걷기와 조용한 민박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어울립니다.
배편, 숙박, 섬 안 이동은 같은 날 같이 확인해야 한다
배편만 예약하고 숙소를 나중에 잡는 분이 있는데, 섬에서는 순서가 그렇게 깔끔하지 않습니다. 성수기에는 방이 먼저 없어지고, 비수기에는 방은 있어도 식사가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민박은 전화 확인이 빠릅니다. 방값보다 저녁 가능 여부, 아침 식사 가능 여부, 선착장 픽업 여부를 물어봐야 합니다.
운항 시간은 한국해운조합 여객선 예매와 각 선사 안내를 같이 보는 편이 좋습니다. 통영 바다는 남해치고 잔잔한 날도 많지만, 바람이 틀어지면 작은 섬 항로부터 흔들립니다. 매물도, 소매물도, 비진도 쪽은 물때와 파고 영향을 체감하기 쉽습니다. 전날 저녁에 정상 운항처럼 보여도 당일 아침에 바뀌는 날이 있습니다. 섬 숙박을 잡았다면 돌아오는 날 오후 일정은 비워두는 게 좋습니다.
제가 쓰는 일정 짜는 순서
- 먼저 가고 싶은 섬을 하나만 고릅니다.
- 출발항과 첫 배, 돌아오는 배 시간을 확인합니다.
- 섬 안 이동 수단을 정합니다. 도보, 버스, 택시, 차량 선적 중 하나를 골라야 합니다.
- 식사 가능한 곳과 숙소 운영 여부를 전화로 확인합니다.
- 결항되었을 때 통영 시내에서 하루를 보낼 대체 일정을 남겨둡니다.
계절별로 통영 섬은 꽤 다르게 보인다
봄에는 사량도와 욕지도 걷기가 좋습니다. 다만 꽃철 주말에는 배표가 빨리 빠집니다. 여름은 비진도 해수욕장이 강하지만, 그만큼 사람이 많고 숙박비도 오릅니다. 7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는 조용한 섬 여행을 기대하기보다 물놀이 여행으로 보는 게 맞습니다. 가을은 바람만 맞으면 가장 안정적입니다. 하늘이 높고 능선 조망이 좋아 사량도 산행 만족도가 큽니다.
겨울 통영 섬여행은 호불호가 있습니다. 사람은 적고 바다는 맑은데, 식당과 카페 영업이 줄어듭니다. 섬 안에서 버스 시간을 놓치면 기다림이 길어지고, 바람이 세면 체감온도가 확 떨어집니다. 대신 조용한 바다와 빈 선착장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겨울만 한 계절도 없습니다. 저는 겨울 욕지도에서 해 질 무렵 항구 불빛이 켜지는 시간을 꽤 좋아합니다.
통영 섬여행은 많이 보는 여행보다 덜 틀어지는 여행이 더 좋습니다. 하루에 섬 두 곳을 찍겠다는 계획보다 한 섬에서 배 시간에 맞춰 천천히 걷는 쪽이 오래 남습니다. 섬은 늘 조금 불편하고, 그 불편을 받아들일 때 풍경도 제 속도로 들어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