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피닉스 머큐리 경기 기록지를 넘겨보다가 세이 위트컴이라는 이름에서 손이 멈췄습니다. 득점 5점대, 리바운드 1점대, 어시스트 2개 안팎. 겉으로만 보면 크게 튀지 않는 숫자입니다. 그런데 3점 성공 개수와 커리어 흐름을 같이 놓고 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 선수는 단순한 로테이션 가드가 아니라, WNBA에서 오래 버틴 슈터가 어떤 방식으로 팀에 가치를 남기는지 보여주는 꽤 좋은 사례입니다.
늦게 들어왔지만 오래 남은 선수
세이 위트컴, 정확히는 새미 위트컴은 1988년생 가드입니다. 워싱턴대를 거쳤고, WNBA 드래프트에서는 이름이 불리지 않았습니다. 보통 이 지점에서 선수 커리어가 크게 꺾이기 쉽습니다. 그런데 위트컴은 2017년 시애틀 스톰에서 WNBA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당시 나이가 28세였습니다. 신인으로 보기엔 늦고, 팀이 장기 육성 자원으로 밀어주기에도 애매한 나이였습니다.
그래서 더 흥미롭습니다. 위트컴은 폭발적인 운동능력이나 압도적인 사이즈로 리그에 들어온 선수가 아닙니다. 키는 5피트 10인치, 포지션은 가드. 결국 살아남는 방법은 명확했습니다. 공을 받았을 때 망설이지 않고 던질 수 있어야 했고, 수비가 한 발 늦으면 바로 대가를 치르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런 선수가 300경기 넘게 WNBA 코트를 밟았다는 건, 슛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문이 열릴 수 있는지 보여줍니다.
숫자로 보면 더 선명한 3점의 가치
Basketball-Reference 기준으로 위트컴의 WNBA 정규시즌 커리어는 324경기, 평균 7.1점, 2.3리바운드, 2.0어시스트입니다. 커리어 야투율은 39.0%, 3점 성공률은 35.9%입니다. 이 수치만 놓고 보면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의 기록은 아닙니다. 하지만 3점 누적 532개라는 숫자를 붙이면 해석이 달라집니다.
WNBA 공식 프로필에서도 위트컴은 벤치에서 넣은 3점슛 부문 역대 최상위권 선수로 소개됩니다. 특히 벤치 멤버로 기록한 3점 성공 306개는 카라 로슨과 함께 역대 최다 타이 기록으로 언급됩니다. 이건 단순히 오래 뛰었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감독이 경기 흐름을 바꾸고 싶을 때, 혹은 주전 볼 핸들러 주변에 공간이 필요할 때, 위트컴 같은 선수의 존재가 전술판을 바꿉니다.
- 커리어 정규시즌 324경기 출전
- 커리어 3점 성공 532개
- 통산 3점 성공률 35.9%
- 2018년, 2020년 시애틀에서 WNBA 우승
- 2024년 호주 대표팀으로 올림픽 동메달
재밌는 건 위트컴의 장점이 ‘많이 던진다’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3점 시도 비중이 높아도 커리어 유효 야투율이 52.3%까지 올라갑니다. 2점 야투율보다 슛 선택의 효율을 더 잘 보여주는 지표에서 이 정도를 유지했다는 건, 본인의 역할을 꽤 정확히 이해했다는 뜻입니다.
2025년 피닉스에서 터진 커리어 하이
위트컴 이야기를 할 때 2025년 피닉스 머큐리 시즌은 빼기 어렵습니다. WNBA 공식 기록에 따르면 2025년 정규시즌 43경기에서 평균 9.1점, 2.6리바운드, 2.5어시스트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총 3점 성공 86개는 리그 상위권 수준이었고, 머큐리 구단 내에서도 매우 중요한 외곽 생산력이었습니다.
가장 강렬했던 장면은 2025년 7월 7일 댈러스전입니다. 위트컴은 이 경기에서 커리어 하이 36점을 넣었고, 3점슛 7개를 성공했습니다. 36세 시즌에 커리어 최고 득점을 찍었다는 사실이 꽤 인상적입니다. 보통 슈터는 나이가 들수록 수비 부담, 출전 시간, 릴리스 속도 유지가 모두 과제가 됩니다. 그런데 위트컴은 오히려 피닉스에서 자신의 슛 볼륨을 다시 키웠고, 한 경기 폭발력까지 증명했습니다.
그 경기는 단순히 ‘운 좋은 밤’으로 넘기기 어렵습니다. 그 시즌에 위트컴은 4개 이상 3점을 넣은 경기가 여러 차례 있었고, 6월 중순부터 말까지 5경기 연속 4개 이상 3점슛을 성공시키며 WNBA 역사상 최장급 흐름과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슛감이 뜨거운 날에는 벤치와 주전의 구분이 크게 의미 없어집니다. 상대 수비 입장에서는 코너에 서 있는 위트컴을 절대 비워둘 수 없고, 그 순간 페인트존과 핸드오프 공간이 같이 열립니다.
2026년 기록은 내려갔지만 역할은 남아 있다
2026년 현재 위트컴은 피닉스 머큐리 소속으로 뛰고 있습니다. 최근 집계 기준 17경기에서 평균 5.1점, 1.7리바운드, 2.0어시스트, 3점 성공률 32.3%를 기록 중입니다. 2025년의 폭발적인 생산력과 비교하면 분명 내려온 수치입니다. 하지만 37세 가드에게 평균 득점만으로 가치를 재단하는 건 조금 급합니다.
실제로 최근 경기 흐름을 보면 기복은 있습니다. 8월 29일 토론토전에서는 16분 동안 3점 6개 중 4개를 넣고 14점을 기록했습니다. 반대로 워싱턴전이나 애틀랜타전에서는 슛 볼륨과 성공률이 들쑥날쑥했습니다. 이게 베테랑 슈터의 현실입니다. 매 경기 15점을 보장하는 선수는 아니지만, 특정 쿼터에 2~3개를 연속으로 꽂으면 경기의 공기 자체가 바뀝니다.
피닉스 입장에서도 위트컴은 단순한 백업 가드가 아닙니다. 앨리사 토마스, 카일라 쿠퍼 같은 핵심 자원이 림을 향해 압박을 걸 때 외곽에 믿고 세워둘 수 있는 선수입니다. 볼을 오래 들고 있지 않아도 되고, 패스가 돌아오는 타이밍에 바로 슛으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이런 유형은 박스스코어보다 라인업 조합에서 더 빛납니다.
세이 위트컴을 보는 재미
제가 위트컴의 커리어를 좋아하는 이유는 화려한 스타 서사와 조금 다르기 때문입니다. 드래프트 미지명, 늦은 WNBA 데뷔, 시애틀에서의 우승, 뉴욕을 거쳐 피닉스에서 다시 살아난 외곽 생산력, 그리고 호주 대표팀 동메달까지. 숫자만 보면 평균 7점대 가드인데, 경로를 따라가면 리그에서 살아남는 기술이 보입니다.
스포츠 기록은 가끔 선수를 작게 보이게 만들기도 합니다. 평균 득점, 출전 시간, 야투율만 보면 위트컴은 주연보다 조연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500개가 넘는 커리어 3점슛, 벤치 3점 생산 역대급 기록, 36세 시즌 커리어 하이 36점 같은 숫자는 다른 말을 합니다. 좋은 팀에는 늘 이런 선수가 필요합니다. 공을 많이 만지지 않아도 수비를 움직이게 만들고, 한 번 뜨거워지면 경기 흐름을 통째로 가져오는 선수. 세이 위트컴은 그런 의미에서 기록지를 천천히 읽을수록 더 재밌어지는 이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