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상담실에서 만난 산모님이 아기용품점 영수증을 보여주셨는데, 출산 전 준비물만 160만 원이 넘게 찍혀 있더라고요. 물건이 많아서 안심되는 마음도 이해합니다. 저도 첫째 때는 손수건을 50장 넘게 샀고, 결국 절반은 서랍 안에서 새것처럼 남았습니다. 산후조리원에서 8년째 상담하다 보면 비슷한 장면을 정말 자주 봅니다. 아기를 위한 마음은 큰데, 막상 집에 가면 쓰는 물건은 꽤 좁혀집니다.
아기용품점은 필요한 물건을 한 번에 볼 수 있어서 편합니다. 그런데 초보 부모에게는 장점이 단점이 되기도 해요. 눈앞에 있는 모든 물건이 다 필요한 것처럼 보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매장에 가기 전에 딱 한 가지 기준을 세우라고 말합니다. “출산 직후 2주 안에 쓸 물건인가?” 이 질문에 바로 답이 안 나오면 일단 미뤄도 됩니다.
아기용품점 가기 전, 목록을 3칸으로 나누는 방법
출산 준비물 목록을 하나로 길게 적으면 거의 다 사게 됩니다. 대신 세 칸으로 나누면 과소비가 줄어요. 첫 번째는 바로 써야 하는 것, 두 번째는 상황 보고 살 것, 세 번째는 선물로 받아도 되는 것입니다.
- 바로 살 것: 기저귀 소량, 물티슈, 배냇저고리나 바디수트 3~5벌, 손수건 20~30장, 속싸개 2~3장, 아기 세제, 체온계
- 상황 보고 살 것: 분유포트, 젖병소독기, 수유쿠션, 아기띠, 역류방지쿠션, 바운서
- 천천히 받아도 되는 것: 장난감, 치발기, 외출복, 신발, 큰 사이즈 내복, 침대용 장식품
특히 기저귀는 신생아용을 박스로 많이 사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아기 체중이 생각보다 빨리 늘기도 하고, 브랜드마다 허리 밴드나 허벅지 핏이 달라서 맞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조리원 퇴소 후 1~2주 쓸 정도만 먼저 사두고, 아기 피부와 체형을 보고 늘리는 쪽이 현실적입니다.
젖병도 마찬가지입니다. 완전 모유수유를 생각해도 처음 며칠은 보충수유가 필요할 수 있고, 반대로 분유수유를 예상했는데 모유가 잘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8개, 10개씩 사기보다 2~4개 정도로 시작해도 충분한 집이 많습니다. 세척과 소독을 하루에 몇 번 할 수 있는지에 따라 필요한 개수가 달라집니다.
매장에서 직원 설명을 들을 때 흔들리지 않는 기준
아기용품점 직원분들이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매장은 판매 공간이고, 부모는 불안한 상태로 들어갑니다. “요즘 엄마들은 다 사요”라는 말이 들리면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어요. 그럴 때는 가격보다 사용 기간을 먼저 보세요.
예를 들어 신생아 전용 물건 중에는 사용 기간이 1~2개월인 제품이 꽤 있습니다. 10만 원짜리 물건을 두 달 쓰면 하루 비용은 작아 보이지만, 아기가 싫어하면 사용 기간은 0일이 됩니다. 바운서, 스윙, 수면 보조용품은 특히 아기 성향을 탑니다. 조리원 동기에게는 효자템이어도 우리 집에서는 빨래 걸이가 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상담실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다들 필요하다길래 샀는데, 우리 애는 안 누워요.” 이 물건들이 전부 나쁜 게 아니라, 미리 많이 살수록 실패할 확률이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가능하면 대여, 중고, 지인에게 며칠 빌려보기 같은 선택지를 열어두면 좋습니다.
매장에서 바로 사도 되는 물건
소모품은 비교적 실패가 적습니다. 손수건, 기저귀, 물티슈, 아기 세탁세제, 면봉, 손톱가위, 체온계처럼 사용 목적이 분명한 물건은 미리 준비해도 괜찮습니다. 다만 여기서도 ‘대용량’은 조심해야 합니다. 아기 피부에 맞지 않으면 좋은 브랜드도 우리 집에서는 안 맞는 물건이 됩니다.
사진 때문에 사고 싶어지는 물건
신생아 외출복, 모자, 양말, 작은 신발은 정말 귀엽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생후 한 달 전후에는 외출이 많지 않고, 집에서는 갈아입히기 쉬운 옷이 최고입니다. 머리부터 끼우는 옷보다 앞이나 옆으로 여미는 옷이 편하고, 단추가 많은 옷보다 스냅 단추가 수유 후 갈아입히기 쉽습니다. 사진용 옷은 1~2벌이면 충분한 집이 많아요.
초보 부모가 아기용품점에서 자주 과하게 사는 품목
제가 상담하면서 가장 많이 말리는 품목은 신생아 베개입니다. 질병관리청과 소아청소년과 진료 현장에서 안내하는 안전수면 원칙을 보면, 어린 아기는 단단하고 평평한 바닥에서 자는 것이 기본입니다. 푹신한 베개, 두꺼운 이불, 쿠션류는 예쁘고 포근해 보이지만 실제 수면 환경에서는 신중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수유 관련 풀세트입니다. 젖병, 젖꼭지 단계별 세트, 보온가방, 분유케이스, 젖병집게, 전용건조대까지 한 번에 담으면 금액이 금방 커집니다. 그런데 수유 방식은 출산 후 몸 상태, 아기 빠는 힘, 병원과 조리원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세트를 맞추기보다 기본만 두고 조절하는 편이 낫습니다.
세 번째는 아기 화장품 종류입니다. 로션, 크림, 오일, 밤, 파우더, 수딩젤까지 다 갖출 필요는 없습니다. 신생아 피부는 예민하고, 제품을 여러 개 바르면 어떤 것에 반응했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처음에는 순한 보습제 하나로 시작하고, 발진이나 건조가 심하면 소아청소년과나 피부과 상담을 받는 쪽이 더 정확합니다.
- 신생아 베개: 꼭 필요한 물건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 두꺼운 이불 세트: 계절과 실내 온도에 따라 활용도가 낮을 수 있습니다.
- 장난감 대량 구매: 생후 초반에는 보는 시간보다 먹고 자는 시간이 훨씬 깁니다.
- 외출용품 풀세트: 실제 외출 패턴이 생긴 뒤 사도 늦지 않습니다.
- 고가 수면용품: 아기 성향을 많이 탑니다.
예산을 아끼려면 ‘새것’과 ‘중고’를 나눠야 합니다
아기 물건은 전부 새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위생과 안전이 중요한 품목만 새것으로 사고, 짧게 쓰는 물건은 중고나 대여를 활용해도 됩니다. 특히 아기침대, 바운서, 아기욕조, 모빌은 사용 기간이 짧은 편이라 상태 좋은 중고가 많이 나옵니다.
반대로 카시트는 중고 구매에 신중해야 합니다. 사고 이력이나 사용 기간을 정확히 알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카시트는 예산을 아끼는 물건이라기보다 안전 기준을 먼저 보는 물건에 가깝습니다. 침구류, 젖꼭지, 젖병 꼭지, 목욕타월처럼 피부나 입에 직접 닿는 품목은 새것이 마음 편합니다.
예산을 100만 원으로 잡았다면 저는 처음 장보기에서 50만~60만 원만 쓰라고 말합니다. 나머지는 출산 후 2~4주 동안 실제로 부족한 곳에 쓰는 게 좋습니다. 아이가 토를 자주 하면 손수건과 턱받이가 더 필요하고, 모유수유가 길어지면 수유패드와 편한 수유복이 중요해집니다. 분유수유가 중심이면 젖병 개수와 세척 동선이 더 중요해지고요. 집마다 돈 써야 할 지점이 달라집니다.
아기용품점 방문 순서는 이렇게 잡으면 편합니다
매장에 들어가면 큰 물건부터 보지 말고, 매일 손이 가는 물건부터 고르는 게 좋습니다. 기저귀, 물티슈, 손수건, 옷, 목욕용품처럼 바로 쓰는 것부터 담아야 예산 감각이 생깁니다. 큰 육아용품은 마지막에 봐도 늦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평일 낮처럼 사람이 적은 시간에 가는 것도 방법입니다. 주말 매장은 북적이고, 직원 설명도 빠르게 지나가서 생각할 틈이 없습니다. 배우자나 가족과 같이 간다면 “오늘 바로 살 것”과 “사진만 찍어둘 것”을 미리 나누세요. 매장에서 마음이 흔들릴 때 서로 잡아주는 역할이 꽤 큽니다.
제가 권하는 방식은 간단합니다. 첫 방문은 구경과 가격 확인, 두 번째 방문에서 구매입니다. 첫날 바로 사지 않아도 됩니다. 집에 와서 수납공간을 보고, 조리원 제공 물품도 다시 확인하고, 선물로 들어올 가능성이 있는 물건을 빼면 목록이 확 줄어듭니다.
아기용품점은 잘 이용하면 정말 편한 곳입니다. 다만 부모의 불안을 채우는 곳이 아니라, 우리 집 생활에 맞는 물건을 고르는 곳이어야 합니다. 아기는 생각보다 많은 물건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건 매일 조금씩 드러납니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갖추려 애쓰기보다, 아기와 부모가 같이 살아보면서 채워가는 쪽이 훨씬 덜 지치고 오래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