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 경매 사이트에서 물건을 많이 보는 게 실력은 아니었습니다
얼마 전 초보 투자자 한 분이 저한테 경매물건 30개를 캡처해서 보내왔습니다. 빌라, 오피스텔, 상가, 토지까지 섞여 있었고 겉으로 보면 감정가 대비 40% 떨어진 물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표시해드린 건 딱 2건이었습니다. 나머지는 수익이 작아서가 아니라, 초보가 들어가면 돈보다 시간이 먼저 녹을 물건이 많았습니다.
경매를 처음 시작하면 자꾸 싼 물건부터 눈에 들어옵니다. 감정가 3억짜리가 최저가 1억9천이면 괜히 기회처럼 보입니다. 근데 현장에서 오래 보다 보면 가격이 싸진 데는 거의 이유가 있습니다. 유찰이 많이 된 물건은 시장이 놓친 보석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누군가 계산기를 두드리다 내려놓은 물건입니다.
제가 경매물건을 볼 때 제일 먼저 보는 건 수익률이 아닙니다. 권리관계가 단순한지, 점유자가 누구인지, 대출이 나올 만한 물건인지, 주변 매매와 전세가가 실제로 받쳐주는지부터 봅니다. 낙찰가를 낮게 쓰는 건 기술이지만, 위험한 물건을 애초에 거르는 건 생존에 가깝습니다.
초보자는 감정가보다 점유관계를 먼저 봐야 합니다
한번은 서울 외곽 빌라 경매물건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감정가는 2억6천, 최저가는 1억7천대였습니다. 주변 실거래를 보면 얼핏 2억2천까지는 보였고, 단순 계산으로는 취득세와 명도비를 넣어도 남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매각물건명세서를 보니 대항력 있는 임차인이 보였습니다. 보증금은 1억4천. 배당요구를 했는지, 확정일자는 언제인지, 전입일자는 말소기준권리보다 빠른지 하나씩 확인해야 하는 물건이었습니다.
이런 물건은 숫자만 보면 싸 보입니다. 하지만 낙찰자가 인수해야 할 보증금이 있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1억7천에 낙찰받았다고 좋아했는데 인수 보증금 1억4천이 붙으면 실제 취득비는 3억을 넘습니다. 주변 시세가 2억2천인 동네에서 이런 실수를 하면 수익이 아니라 손실 확정입니다.
경매물건을 볼 때 점유자는 크게 세 부류로 나눠 봅니다. 소유자가 직접 사는 경우, 임차인이 사는 경우, 그리고 누가 사는지 애매한 경우입니다. 소유자 점유라고 무조건 쉬운 것도 아니고, 임차인이라고 무조건 어려운 것도 아닙니다. 다만 초보라면 대항력 있는 임차인, 유치권 주장, 법정지상권 가능성, 공유자 다툼이 있는 물건은 일단 뒤로 미루는 게 낫습니다.
- 전입일자가 말소기준권리보다 빠른 임차인
- 매각물건명세서에 인수사항이 적힌 물건
- 현황조사서와 사진이 서로 어색한 물건
- 상가인데 영업자가 장기간 점유 중인 물건
- 토지 위 건물 소유관계가 복잡한 물건
이런 물건은 고수에게도 쉽지 않습니다. 돈을 벌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초보가 공부용으로 잡기에는 수업료가 너무 비쌀 수 있습니다.
사진 좋은 물건보다 현장 냄새가 더 정확할 때가 많습니다
경매물건 사진은 생각보다 많은 걸 말해줍니다. 그런데 사진만 믿으면 안 됩니다. 법원 현황조사 사진은 촬영 시점이 오래됐을 수 있고, 내부 사진이 없으면 실제 상태를 거의 모릅니다. 특히 빌라 반지하, 오래된 다세대, 지방 구축 아파트는 누수와 곰팡이, 배관 상태가 수익을 잡아먹습니다.
제가 예전에 낙찰 직전까지 갔던 수도권 다세대가 있었습니다. 최저가는 1억2천, 주변 전세는 1억4천까지 보였습니다. 숫자로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현장에 가보니 1층 계단 벽에 물 자국이 길게 내려와 있었고, 우편함에는 장기 체납 고지서가 잔뜩 꽂혀 있었습니다. 건물 뒤쪽으로 돌아가니 외벽 크랙도 보였습니다. 그날 바로 접었습니다.
현장조사는 거창할 필요 없습니다. 낮에 한 번, 밤에 한 번 가보면 분위기가 다릅니다. 낮에는 주차 상태, 건물 관리 상태, 주변 상권을 보고 밤에는 소음, 조명, 골목 분위기를 봅니다. 같은 500미터 안에서도 임대가 잘 나가는 골목과 공실이 쌓이는 골목은 분명히 갈립니다.
제가 현장에서 꼭 보는 항목
- 공동현관과 계단 청소 상태
- 우편함에 쌓인 고지서와 폐문 여부
- 주차 가능 대수와 실제 주차 스트레스
- 인근 중개업소의 실거래 체감가
- 비슷한 물건의 전세, 월세 소진 속도
중개업소에 들어가서 “이거 경매로 나왔던데 얼마면 팔릴까요”라고 묻는 방식은 별로입니다. 보통 방어적으로 답합니다. 저는 비슷한 평형 매물을 찾는 사람처럼 물어봅니다. “이 근처 20평대 빌라 매매는 요즘 얼마에 거래돼요?”, “전세는 바로 나가나요?” 이렇게 물으면 훨씬 현실적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입찰가는 희망 수익이 아니라 빠져나갈 가격에서 거꾸로 잡습니다
초보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낙찰받고 싶은 마음으로 입찰가를 올리는 겁니다. 경쟁자가 있을 것 같고, 한 번 떨어지면 아쉬우니까 300만 원, 500만 원씩 더 씁니다. 그런데 경매는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남기는 게임입니다. 낙찰받았는데 남는 게 없으면 그건 성공이 아닙니다.
저는 경매물건을 볼 때 매도가를 먼저 보수적으로 잡습니다. 예를 들어 주변 실거래가 2억4천까지 있다고 해도, 급매로 빠질 수 있는 가격을 2억2천으로 봅니다. 거기서 취득세, 법무비, 명도비, 수리비, 대출이자, 중개수수료, 보유기간 비용을 뺍니다. 그리고 최소로 남겨야 할 금액을 뺀 뒤 입찰가를 잡습니다.
숫자로 보면 더 쉽습니다. 예상 매도가가 2억2천이고 총비용이 1천5백만 원, 최소 기대수익을 1천5백만 원으로 잡으면 내가 쓸 수 있는 총 취득가는 1억9천입니다. 여기서 낙찰 이후 들어갈 비용이 별도로 있다면 입찰가는 더 내려갑니다. 남들이 2억을 쓴다고 나도 따라가면 그 순간 내 수익은 남의 낙찰 욕심에 맞춰 사라집니다.
경락잔금대출도 미리 확인해야 합니다. 같은 아파트라도 지역, 전용면적, 방공제, 임차인 여부, 감정가와 낙찰가 차이에 따라 실제 한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대출이 생각보다 덜 나오면 잔금일 전에 급하게 사금융이나 지인 돈을 찾게 됩니다. 그때부터 투자가 아니라 버티기가 됩니다.
좋은 경매물건은 화려하지 않고 설명이 단순합니다
10년 넘게 입찰장을 다니면서 느낀 건, 초보에게 좋은 경매물건은 대단히 특별한 물건이 아니라는 겁니다. 권리분석이 단순하고, 점유관계가 예상 가능하고, 시세 확인이 어렵지 않고, 대출과 출구가 보이는 물건입니다. 이런 물건은 수익률이 엄청나게 높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대신 실수했을 때 다치는 폭이 작습니다.
처음부터 유치권, 선순위 임차인, 지분, 법정지상권 같은 물건으로 수익을 크게 내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런 물건에서 돈 버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서류 한 장만 보고 들어가지 않습니다. 현장 확인, 이해관계자 통화, 소송 가능성, 시간 비용까지 전부 가격에 반영합니다. 초보가 겉모양만 따라 하면 안 됩니다.
저라면 처음 3건은 수익을 크게 잡지 않습니다. 아파트나 관리 잘 되는 다세대처럼 비교가 쉬운 물건으로 시작해서, 매각물건명세서와 등기부, 현황조사서가 서로 어떻게 맞물리는지 몸으로 익히겠습니다. 한 번 낙찰받고 잔금 치르고 명도까지 끝내보면 책에서 보던 문장들이 다르게 보입니다.
경매물건은 싸게 사는 물건이 아니라, 리스크를 가격으로 계산하는 물건입니다. 싸 보이는 물건을 많이 보는 것보다, 위험한 이유를 정확히 말할 수 있는 물건을 하나씩 걸러내는 습관이 먼저입니다. 저는 지금도 입찰 전날 밤에 서류를 다시 봅니다. 그 한 번의 확인이 몇천만 원을 지켜준 적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