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된 우승 시즌을 다시 보면 다른 선수가 보인다
얼마 전 1999년 한화 이글스 우승 시즌 기록을 다시 뒤적였는데, 처음엔 당연히 구대성, 정민철, 송진우, 장종훈, 데이비스, 로마이어 쪽으로 눈이 갔다. 그런데 경기 흐름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니 이상하게 백재호 이름이 계속 남았다. 화려한 MVP도 아니고, 시즌 타율이 리그를 흔든 선수도 아니었다. 그래도 그해 한화 야구를 이야기할 때 주전 유격수 백재호를 빼면 팀의 구조가 잘 설명되지 않는다.
1999년 한화는 정규시즌 72승 2무 58패를 기록했고, 한국시리즈에서는 롯데를 4승 1패로 꺾었다. 창단 첫 우승이었다. 보통 이 시즌은 마운드와 중심타선의 힘으로 기억된다. 실제로 한국시리즈 MVP는 1승 3세이브를 올린 구대성이었다. 하지만 야구는 중심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매일 나와서 유격수 자리를 지키는 선수, 하위타선에서 한 번씩 흐름을 바꾸는 선수, 그 선수가 백재호였다.
132경기 유격수의 무게
백재호의 1999년 정규시즌 기록은 132경기, 타율 0.248, 106안타, 24개의 2루타, 7홈런, 46타점, 43득점, OPS 0.665였다. 숫자만 보면 압도적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1999년은 팀당 132경기 체제로 확대된 시즌이었고, 백재호는 그 132경기에 모두 나왔다. 이 대목이 꽤 중요하다.
유격수는 단순히 타석에 서는 포지션이 아니다. 매 이닝 타구 방향을 읽고, 2루수와 호흡을 맞추고, 병살 타이밍을 계산해야 한다. 특히 1999년 한화처럼 선발과 불펜의 힘으로 버티는 팀은 내야 수비의 안정감이 곧 투수력의 연장선이 된다. 백재호와 임수민의 키스톤 조합은 그래서 기록표 바깥에서도 의미가 컸다.
- 출장 경기: 132경기
- 타격 성적: 타율 0.248, 106안타, 7홈런, 46타점
- 장타 흐름: 2루타 24개로 단타형 유격수에만 머물지 않음
- 팀 성적: 한화 72승 2무 58패, 한국시리즈 우승
솔직히 타율 0.248은 팬들이 오래 기억할 만큼 반짝이는 숫자는 아니다. 근데 유격수가 전 경기 가까운 밀도로 버티면서 두 자릿수에 가까운 홈런과 24개의 2루타를 보탰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당시 한화 타선에는 데이비스, 로마이어, 장종훈, 송지만 같은 이름이 있었다. 백재호는 그 사이에서 해결사라기보다 연결과 균형을 맡은 쪽에 가까웠다.
한국시리즈 1차전, 하위타선이 판을 흔든 순간
백재호의 1999년을 이야기할 때 가장 선명한 장면은 한국시리즈 1차전이다. 1999년 10월 22일 사직에서 열린 경기, 한화는 롯데에 6대3으로 이겼다. 경기 흐름은 꽤 요동쳤다. 한화가 먼저 앞섰지만 롯데가 5회말 김응국과 호세의 홈런으로 3점을 내며 뒤집었다. 원정 1차전에서 분위기가 롯데 쪽으로 넘어갈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때 6회초 백재호가 염종석을 상대로 동점 솔로 홈런을 쳤다. 스코어는 3대3. 그리고 이어 최익성의 대타 역전 투런 홈런이 터졌다. 한국시리즈 사상 두 번째 대타 역전 홈런으로 더 크게 기억되는 장면이지만, 그 직전에 백재호가 균형을 맞췄다는 사실도 같이 봐야 한다. 3대2로 끌려가던 경기와 3대3 경기는 압박의 결이 완전히 다르다.
이 장면이 재미있는 건 백재호가 시즌 내내 하위타선에서 묵묵히 움직이던 선수였다는 점이다. 큰 경기에서 하위타선이 홈런으로 흐름을 바꾸면 상대 배터리의 계산이 복잡해진다. 중심타선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이 사라진다. 1999년 한화가 한국시리즈를 4승 1패로 가져간 데에는 이런 작은 균열들이 쌓였다.
거포 유격수 기대와 현실 사이
백재호는 데뷔 초부터 장타 잠재력으로 눈길을 끈 선수였다. 1997년에는 16홈런을 기록했고, 1998년에도 두 자릿수 홈런을 쳤다. 그래서 1999년의 7홈런만 보면 조금 내려온 수치처럼 보인다. 실제로 홈런 숫자는 줄었다. 하지만 대신 2루타 24개와 106안타가 남았다. 완전히 한 방에만 기대는 타자가 아니라, 시즌을 버티는 방식으로 조금 이동한 느낌이 있다.
당시 KBO 유격수들을 떠올려보면 백재호의 위치가 더 또렷해진다. 롯데 김민재는 안정감과 콘택트로 상징되는 유격수였고, 현대 박진만은 수비형 유격수의 대표 이미지로 커가던 시기였다. 백재호는 그들과 다른 결이었다. 수비 부담이 큰 포지션을 맡으면서도 장타 가능성을 지닌 유격수, 하지만 시즌 전체 생산성에서는 기복이 남아 있던 선수였다.
그래서 1999년 백재호를 단순히 우승 멤버 중 한 명으로만 부르면 조금 아깝다. 그는 한화가 우승을 만들 때 매일 라인업 안에 있었던 유격수였고, 한국시리즈 1차전의 가장 중요한 변곡점 중 하나를 만든 타자였다. 기록이 압도적이지 않아서 더 흥미롭다. 야구에서 우승팀의 실제 질감은 이런 선수들에게서 꽤 많이 드러난다.
한화의 첫 우승을 완성한 보이지 않는 축
1999년 한화 우승을 떠올리면 구대성의 마무리, 정민철의 선발, 장종훈의 이름값, 외국인 타자의 파괴력이 먼저 나온다. 그게 틀린 기억은 아니다. 다만 백재호 같은 주전 유격수를 같이 놓고 보면 그 우승이 훨씬 입체적으로 보인다. 132경기 출장, 하위타선의 장타, 내야 중앙 수비, 한국시리즈 1차전 동점 홈런. 이 네 가지를 붙이면 백재호의 시즌은 꽤 선명한 문장으로 남는다.
팬들은 시간이 지나면 대개 가장 큰 장면만 기억한다. 우승 세리머니, MVP, 마지막 아웃카운트 같은 것들. 그런데 시즌을 실제로 굴러가게 만든 선수는 매일 같은 자리에 서 있던 주전들이다. 백재호의 1999년은 그런 의미에서 다시 볼 만하다. 숫자는 거창하게 빛나지 않지만, 한화의 첫 우승이라는 문장 안에서 빠지면 허전한 이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