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숫자를 봤을 때 든 생각
얼마 전 폰세가 시범경기에서 157km에 가까운 공을 던지고 3이닝 퍼펙트 투구를 했다는 기록을 봤는데, 솔직히 숫자 하나만으로도 눈이 갔습니다. 97.3마일, 환산하면 시속 156.6km. 한국식 기사 제목에서는 자연스럽게 157km로 읽히는 구속입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건 단순히 빠른 공을 던졌다는 사실이 아니었어요. 3이닝 동안 주자를 한 명도 내보내지 않았고, 투구 수는 36개였습니다. 이건 힘으로 찍어누른 경기라기보다, 빠른 템포와 구종 선택이 같이 맞아떨어진 경기였습니다.
상대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였고, 폰세는 토론토 블루제이스 유니폼을 입고 선발 등판했습니다. 기록지만 보면 3이닝 무피안타 무사사구 무실점, 탈삼진 1개. 탈삼진 숫자가 엄청 많은 경기는 아니었습니다. 근데 오히려 그래서 더 재미있습니다. 삼진 쇼가 아니라 맞혀 잡는 퍼펙트였다는 뜻이니까요.
36구 퍼펙트, 왜 더 인상적이었나
3이닝 36구면 이닝당 12구입니다. 선발투수가 시범경기 초반에 가장 좋아하는 흐름이죠. 긴 승부를 계속 끌고 가지 않았고, 타자들이 방망이를 내게 만들었습니다. 1회부터 유격수 땅볼, 우익수 뜬공, 투수 땅볼로 세 타자를 처리했고, 2회도 땅볼과 직선타로 빠르게 넘어갔습니다.
이날 폰세의 구종 배합을 보면 포심 패스트볼 17구, 커터 9구, 슬라이더 6구, 스플리터 2구, 커브 2구였습니다. 포심 비중이 가장 컸지만 포심 하나만 밀어붙인 등판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커터와 슬라이더를 섞으면서 타자의 배트 중심을 피해 갔고, 커브와 스플리터는 적은 개수로도 타이밍을 흔드는 역할을 했습니다.
- 총 투구 수: 36구
- 최고 구속: 97.3마일, 약 156.6km
- 포심 평균 구속: 95.7마일, 약 154.0km
- 결과: 3이닝 무출루 무실점
- 시범경기 평균자책점: 1.50
야구에서 퍼펙트라는 단어는 늘 과열되기 쉽습니다. 정규시즌 9이닝 퍼펙트와 시범경기 3이닝 퍼펙트는 무게가 다릅니다. 그래도 이 투구가 가볍지 않은 이유는 분명합니다. 폰세가 이미 KBO에서 압도적인 시즌을 보낸 뒤, 더 높은 레벨의 무대에서 같은 방향의 강점을 보여 줬기 때문입니다.
KBO MVP 시즌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장면
폰세는 한화 이글스에서 뛰던 시즌에 29경기 180⅔이닝, 17승 1패, 평균자책점 1.89를 기록했습니다. 탈삼진은 252개였고 볼넷은 41개였습니다. 이 수치에서 가장 먼저 봐야 할 건 승수보다 삼진과 볼넷의 균형입니다. 252탈삼진에 41볼넷이면, 공이 빠른데 스트라이크존 근처에서 승부가 된다는 뜻입니다.
사실 외국인 투수가 KBO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메이저리그에서 통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리그 환경이 다르고, 타자들의 공략 방식도 다릅니다. 그런데 폰세의 경우는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단순히 한국에서 성적만 쌓은 게 아니라, 구속과 구종, 경기 운영 방식이 같이 업그레이드됐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피츠버그 시절의 폰세를 기억하는 쪽에서는 지금의 구속 상승이 꽤 낯설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는 이 정도로 95마일 이상을 꾸준히 찍는 투수라는 인상이 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화를 거친 뒤 포심 평균이 154km 수준까지 올라왔고, 여기에 커터와 킥체인지업 계열의 움직임을 더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투수가 30대 초반에 완전히 다른 프로필로 돌아오는 건 흔한 일이 아닙니다.
157km보다 중요한 건 다음 공이었다
빠른 공은 항상 시선을 빼앗습니다. 팬들도 중계 화면에 찍히는 구속 숫자에 먼저 반응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157km가 뜨면 일단 눈이 커집니다. 그런데 타자 입장에서 더 까다로운 건 그 다음 공입니다. 같은 팔 스윙에서 144km 커터가 들어오고, 136km 슬라이더가 바깥으로 휘고, 133km 커브가 아래로 떨어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폰세가 볼티모어전에서 보여 준 장면 중 하나가 바로 그 부분입니다. 피트 알론소를 상대로 빠른 공을 보여 준 뒤 커브로 약한 땅볼을 유도했습니다. 웨스턴 윌슨을 상대로는 잠시 투구가 끊기는 상황이 있었지만, 다시 승부를 이어가 커터로 삼진을 잡았습니다. 구속만 좋은 투수라면 이런 장면에서 공이 몰리거나 힘으로만 버티려는 선택이 나오기 쉽습니다. 폰세는 그보다 차분했습니다.
물론 시범경기입니다. 타자들도 몸을 올리는 단계이고, 투수도 정규시즌처럼 상대 전력 분석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상황은 아닙니다. 그래도 선발 경쟁 중인 투수에게 3이닝 36구 퍼펙트는 꽤 선명한 메시지입니다. 긴 이닝을 던질 준비가 됐는지, 스트라이크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넣는지, 빠른 공이 실제로 타자를 밀어내는지 보여 주는 자리였으니까요.
토론토 선발 경쟁 속 폰세의 위치
토론토 선발진은 이름값만 보면 헐겁지 않습니다. 케빈 가우스먼, 호세 베리오스 같은 기존 자원에 딜런 시즈, 셰인 비버, 맥스 슈어저, 에릭 라우어 등 여러 후보가 언급됩니다. 이런 팀에서 폰세가 자리를 잡으려면 KBO MVP라는 간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지금 필요한 건 메이저리그 타자 앞에서도 같은 무기가 통한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157km 퍼펙트 투구는 꽤 설득력이 있습니다. 6이닝 누적 1실점, 평균자책점 1.50이라는 시범경기 흐름도 나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건 빠른 공의 평균치입니다. 한두 개만 세게 던진 게 아니라 95마일대 포심을 반복해서 던졌다는 건 선발투수로서의 지속 가능성을 보여 줍니다.
저는 이 등판을 보면서 폰세의 이야기가 단순한 역수출 성공담으로만 소비되면 조금 아깝다고 느꼈습니다. KBO에서 완성도를 끌어올린 투수가 다시 메이저리그 문을 두드리고, 그 첫 장면에서 구속과 제구를 동시에 보여 줬다는 흐름이 더 재미있습니다. 157km라는 숫자는 입구일 뿐이고, 진짜 이야기는 그 공을 어떤 카운트에서 어떤 구종과 붙여 쓰느냐에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등판이 더 궁금합니다. 이번에는 몇 km가 찍히느냐보다, 타자들이 두 번째로 만났을 때도 같은 표정을 지을지가 보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