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소를 비껴 걸었더니 보였던 조용한 동네의 진짜 얼굴

서울 명소를 비껴 걸었더니 보였던 조용한 동네의 진짜 얼굴

얼마 전 주말 낮에 경복궁 근처를 지나가다가 사람 물결에 살짝 지쳤습니다. 사진 찍는 줄, 카페 대기 줄, 횡단보도 앞까지 이어진 관광버스들. 서울 명소라는 말이 붙은 곳들은 분명 아름답지만, 그 안에서 내 걸음의 속도를 지키기는 생각보다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그날은 지도에서 큰 글씨로 보이는 장소를 일부러 피해서, 한 정거장쯤 옆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서울은 꽤 다르게 보입니다. 유명한 문 하나, 전망 좋은 건물 하나보다 동네의 경사, 오래된 담장, 생활 소음이 더 오래 남을 때가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서울 여행은 그런 쪽에 가깝습니다. 누군가에게 꼭 가야 할 곳을 알려주는 것보다, 가볍게 걸어도 마음이 덜 닳는 길을 나누고 싶습니다.

서울 명소보다 한 발 옆, 부암동 백사실계곡

부암동은 이미 많이 알려진 동네지만, 막상 백사실계곡 쪽으로 들어가면 분위기가 금방 낮아집니다. 윤동주문학관이나 창의문 앞에는 사람이 꽤 있어도, 주택가 사이 골목을 따라 10분쯤 걸으면 소리가 달라집니다. 차 소리보다 물소리가 먼저 들리고, 계단 옆 담장에는 계절이 천천히 묻어 있습니다.

제가 갔던 날은 토요일 오후 2시쯤이었는데, 입구 근처에서 만난 사람은 열 명 남짓이었습니다. 북촌이나 서촌의 같은 시간대와 비교하면 훨씬 여유가 있었습니다. 길이 아주 넓지는 않아서 우산을 쓰고 걷기엔 불편할 수 있지만, 맑은 날엔 짧은 산책로로 딱 좋습니다. 운동화는 거의 필수에 가깝고, 비 온 뒤에는 돌이 미끄러울 수 있습니다.

가는 길에서 기억할 것

  • 버스에서 내려 주택가 골목을 지나야 해서 초행이면 지도를 자주 보게 됩니다.
  • 카페가 많은 중심 골목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편의시설이 확 줄어듭니다.
  • 30분만 잡아도 좋지만, 천천히 앉아 있으려면 1시간 정도가 편합니다.

사실 이곳은 거창한 풍경을 기대하고 가면 조금 심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심심함이 좋습니다. 나무 사이로 낮은 빛이 들어오고, 발밑의 흙길이 서울 한복판이라는 사실을 잠깐 잊게 만듭니다. 유명한 서울 명소 사이에서 숨을 고르는 작은 틈 같은 곳입니다.

성북동 골목에서 만난 조용한 오후

성북동은 대사관저와 오래된 주택, 작은 미술관이 섞여 있어서 걷는 맛이 있습니다. 혜화나 한성대입구 쪽의 활기와는 조금 다르게, 골목이 곧 풍경이 되는 동네입니다. 저는 보통 한성대입구역에서 시작해 성북동 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갑니다. 경사가 있어서 숨이 조금 차지만, 그만큼 뒤돌아봤을 때 골목의 깊이가 보입니다.

이 동네에서 좋았던 건 속도가 느리다는 점이었습니다. 500미터를 걷는 데 20분이 걸려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오래된 담벼락 앞에서 멈추고, 작은 찻집 간판을 보고, 길가에 놓인 화분을 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서울 명소를 검색하면 큰 궁이나 전망대가 먼저 나오지만, 제게는 이런 골목이 더 서울답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근데 성북동은 조용하다고 해서 완전히 비어 있는 동네는 아닙니다. 주말 점심 이후에는 유명한 빵집과 식당 앞에 줄이 생깁니다. 그래서 저는 오전 10시 전후를 좋아합니다. 가게들이 막 문을 열기 시작하고, 주민들이 장바구니를 들고 오가는 시간입니다. 여행자보다 생활자가 먼저 보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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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 절벽길, 화려하지 않아서 오래 남는 곳

창신동은 동대문과 낙산 사이에 있지만, 관광지의 얼굴과 생활의 얼굴이 가까이 붙어 있는 동네입니다. 봉제 골목을 지나 위쪽으로 올라가면 길이 갑자기 가팔라지고, 집들이 층층이 붙어 있는 풍경이 나옵니다. 저는 이 길을 걸을 때마다 서울이 평평한 도시가 아니라는 걸 새삼 느낍니다.

창신동 절벽길은 전망 명소처럼 탁 트인 사진 한 장을 주는 곳은 아닙니다. 대신 좁은 계단, 낮은 지붕, 빨래가 널린 창문, 멀리 보이는 도심 건물이 한 프레임 안에 들어옵니다. 솔직히 편안한 산책길은 아닙니다. 경사가 제법 있고, 길이 좁아 차가 지나갈 때는 벽 쪽으로 바짝 붙게 됩니다. 그래도 이 불편함까지 포함해서 기억에 남습니다.

  • 동대문역이나 동묘앞역에서 걸어 올라갈 수 있지만 편한 신발이 필요합니다.
  • 해 질 무렵은 빛이 예쁘지만 골목이 어두워지기 전 내려오는 편이 낫습니다.
  • 주거지라 사진을 찍을 때는 창문과 현관을 피하는 게 좋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관광객으로 오래 머물기보다, 조용히 지나가는 쪽이 맞다고 느꼈습니다. 누군가의 일상 위를 걷는 일이니까요. 서울의 낡은 표정과 현재의 속도가 동시에 보이는 곳이라, 가볍게 소비하기보다 천천히 보고 지나오게 됩니다.

망원동 시장 뒤편, 강변보다 골목이 먼저였던 날

망원동은 이제 꽤 유명해졌지만, 시장과 카페 거리만 벗어나면 아직 동네의 결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망원시장 안쪽에서 간단히 먹을 걸 사고, 바로 한강으로 가지 않고 주택가 골목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낮은 빌라, 작은 세탁소, 오래된 문구점이 이어지는 길이 생각보다 좋았습니다.

망원한강공원은 날씨 좋은 주말이면 돗자리와 자전거로 붐빕니다. 그런데 시장 뒤편 골목은 같은 시간에도 훨씬 조용합니다. 15분 정도만 걸어도 사람 많은 서울 명소의 분위기에서 빠져나와 동네 산책에 가까워집니다. 특히 평일 오후 3시쯤에는 가게들이 바쁘게 준비하는 소리와 아이들 하교 시간이 겹쳐서 묘하게 생활감이 진합니다.

이 동네는 큰 목적지를 찍고 가는 것보다 방향만 정하고 걷는 편이 어울립니다. 배가 고프면 시장에서 먹고, 커피가 생각나면 골목의 작은 가게에 들어가면 됩니다. 유명한 메뉴를 찾아 줄 서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저는 이름을 몰랐던 분식집에서 먹은 따뜻한 어묵 국물이 더 오래 기억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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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적은 서울을 찾을 때 제가 보는 기준

서울에서 한적한 장소를 찾는 일은 완전히 비밀스러운 장소를 찾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유명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는 집 앞이고, 출근길이고, 산책길입니다. 그래서 저는 장소보다 시간을 먼저 봅니다. 같은 서울 명소라도 토요일 오후 1시와 평일 오전 9시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 지하철역에서 바로 이어지는 곳보다 버스로 한 번 더 들어가는 동네가 비교적 조용합니다.
  • 전망대, 포토존, 대형 카페가 묶인 코스는 피로도가 빨리 올라갑니다.
  • 주거지 골목에서는 오래 머물기보다 천천히 지나가는 태도가 편합니다.
  • 비 오는 다음 날의 숲길, 평일 오전의 시장 뒤편, 해 지기 전의 언덕길이 좋았습니다.

유명한 곳을 피한다고 해서 여행이 작아지는 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기대를 조금 내려놓았을 때, 서울은 더 가까운 거리에서 말을 걸어왔습니다. 오래된 계단 하나, 문 닫힌 가게 앞 의자 하나, 골목 끝에서 잠깐 보이는 하늘 같은 것들이요. 다음에 서울 명소를 찾게 된다면 지도에 크게 표시된 이름 옆의 작은 길도 함께 봤으면 합니다. 저는 그 작은 길에서 서울을 더 자주 좋아하게 됐습니다.

서울 명소를 비껴 걸었더니 보였던 조용한 동네의 진짜 얼굴 -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