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진료실 옆 상담 자리에서 “밥만 줄이면 된다던데, 삼겹살은 마음껏 먹어도 되나요?”라고 묻는 분을 만났습니다. 저탄고지식단은 이름 그대로 탄수화물은 줄이고 지방 섭취를 늘리는 방식입니다. 체중이 빨리 내려가는 경험을 한 분도 있고, 반대로 변비나 입 냄새, 피로감 때문에 금방 중단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식단은 유행처럼 따라가기보다 내 건강 상태와 생활 리듬에 맞는지 먼저 보는 게 중요합니다.
저탄고지식단은 무엇을 줄이고 무엇을 늘리는 식사일까요?
보통 한국인의 식사는 밥, 면, 빵, 떡처럼 탄수화물 비중이 높은 편입니다. 저탄고지식단은 이 비중을 크게 낮추고, 고기·생선·달걀·치즈·견과류·오일 같은 지방과 단백질 식품을 늘립니다. 더 엄격한 방식은 하루 탄수화물을 20~50g 정도로 제한하기도 합니다. 흰쌀밥 한 공기에 탄수화물이 대략 65g 안팎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꽤 강한 제한입니다.
탄수화물을 많이 줄이면 몸은 포도당 대신 지방에서 만들어지는 케톤을 에너지원으로 더 쓰게 됩니다. 이 과정 때문에 초기에 체중이 빨리 줄어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만 처음 빠지는 무게 중 일부는 지방만이 아니라 수분과 글리코겐 감소도 포함됩니다. 숫자가 빨리 내려간다고 해서 몸속 지방이 같은 속도로 줄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왜 체중이 줄어드는 사람이 있을까요?
저탄고지식단으로 체중이 줄어드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전체 섭취 열량이 줄기 쉽다는 점입니다. 밥, 과자, 음료, 빵을 줄이면 간식 횟수가 줄고 혈당 출렁임이 덜해져 허기가 줄었다고 느끼는 분이 있습니다. 단백질과 지방은 포만감이 오래가는 편이라 식사 사이에 덜 찾게 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데 “지방은 얼마든지 먹어도 된다”는 식으로 이해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삼겹살, 버터, 크림, 치즈를 계속 늘리면 열량은 금방 올라갑니다. 예를 들어 견과류 한 줌은 건강한 음식으로 볼 수 있지만 양이 두세 줌으로 늘면 한 끼 간식 열량이 됩니다. 식단의 이름보다 실제로 얼마나 먹는지가 더 큰 영향을 줍니다.
몸에 부담이 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탄고지식단을 시작한 뒤 처음 1~2주 사이에 머리가 멍하거나 피곤하고, 어지럽고, 운동할 때 힘이 빠지는 분이 있습니다. 흔히 탄수화물을 급하게 줄였을 때 생길 수 있는 변화입니다. 물과 전해질 섭취가 부족하면 더 심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변비도 흔합니다. 밥과 과일, 콩류, 통곡물을 줄이면서 식이섬유가 같이 줄기 때문입니다.
혈액검사에서 LDL 콜레스테롤이 오르는 분도 있습니다. 특히 포화지방이 많은 고기 기름, 버터, 가공육 위주로 식단을 짜면 그 가능성이 커집니다. 심혈관질환이 있거나 콜레스테롤 약을 먹는 분이라면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닙니다. 당뇨병 약, 특히 인슐린이나 혈당을 떨어뜨리는 약을 쓰는 분은 탄수화물을 급격히 줄이면 저혈당 위험이 생길 수 있어 의료진과 먼저 상의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 임신 중이거나 수유 중인 경우
- 신장질환, 간질환, 췌장질환이 있는 경우
- 당뇨병 약이나 혈압약을 복용 중인 경우
- 섭식장애 경험이 있거나 식사 제한에 민감한 경우
- LDL 콜레스테롤이 높거나 심혈관질환 병력이 있는 경우
이런 경우에는 혼자 강하게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질병관리청과 여러 전문학회 안내에서도 만성질환자는 식사 조절을 할 때 개인 상태를 함께 봐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한다면 이렇게 조심스럽게 시작하는 편이 낫습니다
처음부터 밥을 완전히 끊기보다 양과 종류를 바꾸는 방식이 현실적입니다. 예를 들어 매 끼니 밥 한 공기를 먹던 분이라면 반 공기에서 3분의 2공기 정도로 줄이고, 대신 채소와 단백질을 충분히 채우는 식입니다. 흰빵, 달달한 음료, 과자, 야식처럼 줄였을 때 이득이 큰 음식부터 손보는 게 부담이 덜합니다.
지방을 늘릴 때도 종류가 중요합니다. 버터와 가공육을 자주 먹기보다 생선, 올리브유, 들기름, 아보카도, 견과류처럼 불포화지방이 많은 식품을 적당량 활용하는 편이 낫습니다. 단백질은 달걀, 생선, 닭고기, 두부, 콩류를 섞으면 식단이 덜 질립니다. 채소는 잎채소, 버섯, 오이, 브로콜리, 양배추처럼 비교적 탄수화물이 낮은 식품을 챙기면 변비 예방에도 도움이 됩니다.
병원에 가야 하는 신호
식단을 바꾼 뒤 어지럼이 심하거나 식은땀이 나고, 가슴 두근거림이 이어지거나, 구토와 복통이 생기면 진료를 받아야 합니다. 당뇨병이 있는 분이 혈당이 평소보다 반복해서 낮거나 지나치게 높게 나온다면 식단을 계속 밀어붙이면 안 됩니다. 또 3개월 정도 식단을 유지했다면 체중만 볼 게 아니라 혈압, 공복혈당, 당화혈색소, 간수치, 신장기능, 혈중 지질을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탄고지식단은 누군가에게는 식욕을 다루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모두에게 맞는 만능 식사법은 아닙니다. 특히 오래 지속할 수 없는 방식이라면 체중이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기 쉽습니다. 저는 환자분들께 “평생은 아니어도 6개월은 불편하지 않게 할 수 있는가”를 자주 묻습니다. 식단은 의지력 시험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라서,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보면서 조금 느리게 가는 편이 결국 오래 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