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능 스타에서 V리그 선수로, 출발부터 특이했다
얼마 전 인쿠시가 정관장 숙소를 떠나 목포과학대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봤는데, 이상하게 단순한 이별 기사처럼 읽히지 않았다. 보통 외국인 선수 교체나 계약 종료 소식은 성적표 몇 줄로 지나가지만, 인쿠시의 경우는 시작부터 흐름이 달랐다. 몽골 출신 자미얀푸렙 엥흐서열, 등록명 인쿠시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먼저 얼굴을 알렸고, 김연경과 훈련하는 장면을 통해 팬들에게 꽤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런 선수가 곧바로 V리그 정관장 유니폼을 입었다는 점부터 드라마성이 있었다. 정관장은 원래 아시아쿼터로 위파위 시통을 데려왔지만, 무릎 십자인대 부상 여파로 실전 투입이 어려웠다. 시즌 중반에 빈자리가 생겼고, 인쿠시는 대체 아시아쿼터 카드로 들어왔다. 준비된 풀시즌 영입이라기보다, 갑자기 열린 문을 통과한 케이스에 가까웠다.
17경기 43세트 104득점, 숫자로 보면 어땠나
인쿠시의 정관장 시절 기록은 17경기 43세트 출전, 104득점, 공격 성공률 32.6%로 남았다. 이 숫자만 놓고 보면 리그를 흔든 외국인 선수의 성적은 아니다. 그런데 시즌 중간 합류, 낯선 전술, 짧은 적응 기간, 프로 경험 부족까지 같이 놓고 보면 평가의 결이 달라진다.
아웃사이드 히터는 단순히 공을 세게 때리는 자리만은 아니다. 리시브 라인에 섞이고, 블로킹 위치를 맞추고, 전위와 후위를 오가며 세터와 타이밍을 맞춰야 한다. 특히 여자부 V리그는 서브 목적타와 수비 전술이 집요하다. 상대가 약점을 파악하면 한 경기 안에서도 공략 방향이 바뀐다. 그런 환경에서 인쿠시는 완성형 선수라기보다, 탄력과 반응 속도로 순간을 만드는 쪽에 가까웠다.
- 출전 규모: 17경기 43세트
- 공격 생산: 104득점
- 공격 성공률: 32.6%
- 역할: 위파위 부상 공백을 메운 대체 아시아쿼터
104득점이라는 결과는 꽤 상징적이다. 팀의 주포 역할을 완전히 떠안은 수치는 아니지만, 벤치 자원이나 이벤트성 영입에 머문 숫자도 아니다. 실제 경기 흐름 속에서 득점 루트로 쓰였고, 정관장이 공격 조합을 바꿔볼 수 있는 선택지를 줬다는 뜻이다.
정관장이 인쿠시와 계속 가지 않은 이유
정관장과 인쿠시의 동행 종료는 냉정하게 보면 이상한 선택이 아니다. 프로 구단은 스토리만으로 시즌을 설계할 수 없다. 아시아쿼터 한 자리는 팀 전력에서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정관장처럼 상위권 경쟁을 해야 하는 팀이라면 리시브 안정, 블로킹 높이, 공격 결정력, 풀시즌 내구성까지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정관장은 이후 중국 국가대표 출신 아웃사이드 히터 종휘를 영입했다. 발표된 연봉은 15만 달러였다. 이 흐름은 구단의 방향을 꽤 선명하게 보여준다. 즉시 전력감, 국제 경험, 검증된 경기 운영 능력을 원했다는 뜻이다. 인쿠시가 못했다기보다, 정관장이 다음 시즌 아시아쿼터 슬롯에 요구한 기준이 달랐다고 보는 쪽이 더 자연스럽다.
사실 시즌 중반 대체 선수는 평가가 늘 어렵다. 팀 전술은 이미 굳어져 있고, 체력 사이클도 새로 맞춰야 한다. 팬들의 기대는 방송 인지도 때문에 빠르게 커지지만, 코트 위 역할은 생각보다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인쿠시의 경우도 그 간극이 컸다. 관심도는 스타급이었지만, 선수로서는 아직 단계를 밟아야 할 부분이 많았다.
그래도 인쿠시가 남긴 장면은 분명했다
인쿠시의 장점은 기록지보다 경기 장면에서 먼저 보였다. 점프 타이밍이 빠르고, 몸이 뜨는 순간의 탄력이 좋았다. 공을 때릴 때 망설임이 적어서 랠리 중 분위기를 바꾸는 장면도 있었다. 근데 동시에 프로 리그의 벽도 분명히 보였다. 리시브 안정감, 공격 코스 다양성, 블로킹 이후 전환 동작 같은 부분은 더 다듬어야 했다.
이게 나쁜 평가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스무 살을 갓 넘긴 선수에게는 자연스러운 성장 곡선이다. 프로 무대에서 바로 완성도를 요구받는 포지션에 들어갔고, 그 안에서 43세트를 버텼다. 팬들이 인쿠시에게 반응한 이유도 단순히 예능 출신이라서만은 아니었다. 코트 위에서 실수해도 다시 뛰어오르는 태도, 득점 뒤에 나오는 솔직한 표정, 낯선 리그에 적응하려는 에너지가 보였다.
스포츠서울 보도에 따르면 인쿠시는 시즌 종료 뒤 SNS를 통해 팬과 구단, 동료들에게 고마움을 전했고, 다시 성장해서 인사하겠다는 뜻을 남겼다. 이 대목이 꽤 인상적이었다. 프로 계약이 끝났다는 사실보다, 본인이 이 경험을 다음 단계로 가져가겠다는 태도가 더 오래 남는다.
짧은 동행이 실패로만 남지 않는 이유
스포츠에서 짧은 계약은 종종 실패처럼 소비된다. 그런데 인쿠시와 정관장의 시간은 그렇게만 보긴 어렵다. 정관장은 부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새로운 카드를 썼고, 인쿠시는 그 기회를 통해 V리그라는 훨씬 높은 레벨을 직접 경험했다. 구단 입장에서는 임시 전력 보강이었고, 선수 입장에서는 커리어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샘플이 됐다.
팬 입장에서도 남는 게 있었다. 우리는 보통 완성된 스타를 좋아하지만, 가끔은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가 더 흥미롭다. 인쿠시는 바로 그런 선수였다. 완벽한 성적표를 남기진 않았지만, 17경기 동안 자신의 이름을 V리그 기록에 남겼고, 다음 기회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정관장과의 동행은 끝났지만, 인쿠시의 이야기가 끝난 건 아니다. 목포과학대에서 다시 훈련하고, 약점을 보완하고, 경기 운영을 더 익힌다면 다음 도전의 모양은 달라질 수 있다. 솔직히 이런 선수는 계속 지켜보게 된다. 기록은 아직 작지만, 기록 뒤에 남은 속도와 표정이 꽤 선명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