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세 80만 원짜리 물건, 처음엔 좋아 보였습니다
얼마 전 후배가 경매 물건 하나를 들고 왔습니다. 수도권 역세권 오피스텔인데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80만 원을 받을 수 있다더군요. 감정가는 2억 4,000만 원, 2회 유찰돼서 최저가는 1억 5,360만 원까지 내려온 상태였습니다. 숫자만 보면 꽤 그럴듯합니다. 대충 계산하면 연 월세 960만 원이고, 낙찰가를 1억 6,500만 원으로 잡으면 표면 수익률이 5.8%쯤 나옵니다.
근데 현장에 가보니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같은 건물에 공실 안내문이 꽤 붙어 있었고, 관리사무소에 물어보니 최근 6개월 사이 월세가 70만 원대 초반까지 내려간 거래도 있었습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호가 80만 원은 말 그대로 주인이 받고 싶은 가격이지, 실제 계약 가격은 아니었던 겁니다. 경매 초보가 월세 물건을 볼 때 제일 많이 하는 실수가 여기서 나옵니다. 받을 수 있는 월세와 받고 싶은 월세를 같은 숫자로 놓고 계산합니다.
월세 수익률은 임대료보다 빠져나가는 돈이 먼저입니다
저는 월세 물건을 볼 때 임대료부터 보지 않습니다. 먼저 빠져나가는 돈을 적습니다. 취득세, 법무비, 명도비, 수리비, 공실 기간, 중개수수료, 대출이자,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가능성, 건강보험료 영향까지 적어놓고 봅니다. 숫자가 길어지면 재미없어 보이지만, 이걸 안 적으면 낙찰받고 나서야 현실이 보입니다.
예를 들어 1억 6,500만 원에 낙찰받고, 경락잔금대출을 70% 쓴다고 해보겠습니다. 대출금은 약 1억 1,500만 원입니다. 금리를 연 5%로 잡으면 이자만 1년에 575만 원, 월로 나누면 약 48만 원입니다. 월세를 75만 원 받는다고 해도 이자 빼면 27만 원 남습니다. 여기에 관리비 체납 정리, 도배 장판, 에어컨 수리, 중개수수료가 한 번 들어가면 1년 치 남는 돈이 순식간에 날아갑니다.
- 월세 75만 원: 연 900만 원
- 대출이자 월 48만 원: 연 576만 원
- 공실 2개월 발생: 150만 원 손실
- 수리비 200만 원 발생: 첫해 현금흐름 급감
이렇게 계산하면 첫해에는 손에 쥐는 돈이 거의 없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입지가 좋아서 장기적으로 가격이 오를 물건이면 버틸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월세 수익 하나만 보고 들어가는 물건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월세 투자는 매달 돈이 들어오는 투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중간중간 크게 빠져나가는 돈을 견디는 투자입니다.
세입자가 있다고 다 좋은 물건은 아닙니다
경매 물건을 보다 보면 매각물건명세서에 임차인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초보자는 여기서 마음이 놓인다고 말합니다. 이미 사람이 살고 있으니 낙찰받자마자 월세가 들어올 것 같다는 생각이죠. 솔직히 저도 초반에는 그렇게 봤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몇 번 맞아보면 생각이 바뀝니다.
중요한 건 그 세입자가 대항력이 있는지, 배당을 받고 나가는 사람인지, 낙찰자에게 보증금을 요구할 수 있는지입니다. 보증금 5,000만 원에 월세 40만 원짜리 빌라가 있다고 해도, 그 보증금을 낙찰자가 떠안는 구조면 낙찰가는 싸 보일 뿐입니다. 실제 인수 금액을 더하면 시세보다 비싸게 사는 경우도 나옵니다.
제가 예전에 본 물건 중에 낙찰가만 보면 주변 시세보다 3,000만 원 저렴한 다세대주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순위 임차인의 보증금 4,500만 원 중 일부를 낙찰자가 인수해야 하는 구조였습니다. 입찰표를 쓰기 전에는 싸 보였는데, 권리분석을 하고 나니 전혀 싼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날 입찰장에 초보 투자자 몇 명이 들어왔고, 결국 한 분이 낙찰받았습니다. 축하 박수는 나왔지만 저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월세 물건은 시세조사를 두 번 해야 합니다
매매 시세조사와 임대 시세조사는 따로 해야 합니다. 매매가가 싸다고 월세가 잘 나가는 건 아닙니다. 반대로 매매가는 덜 올라도 월세 수요가 꾸준한 동네도 있습니다. 원룸, 오피스텔, 빌라, 아파트는 보는 기준이 다릅니다.
저는 월세 물건을 보면 최소한 세 가지를 확인합니다. 첫째, 같은 건물이나 같은 단지의 실제 임대 거래 분위기입니다. 둘째, 주변 공실의 개수입니다. 셋째, 임차인이 왜 이 동네를 선택하는지입니다. 대학가면 방학 공실을 봐야 하고, 산업단지 주변이면 회사 이전 가능성을 봐야 합니다. 역세권 오피스텔이면 공급 물량이 더 중요합니다. 옆 블록에 신축 오피스텔이 700실 들어오면 기존 건물 월세는 눌릴 수밖에 없습니다.
현장에서는 부동산 사무실 한 곳만 믿으면 안 됩니다. 어떤 중개사는 거래를 만들기 위해 좋은 말만 합니다. 그래서 저는 같은 동네에서 최소 세 군데는 묻습니다. “이 물건이면 얼마에 빨리 나가요?”라고 묻는 것과 “얼마 받을 수 있어요?”라고 묻는 건 답이 다릅니다. 빨리 나가는 가격이 실제 시장 가격에 가깝습니다.
초보가 월세 경매에서 특히 조심할 물건
제가 초보에게 웬만하면 피하라고 말하는 월세 물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관리비가 과한 오피스텔입니다. 월세 70만 원인데 관리비가 18만 원이면 임차인 입장에서는 체감 월세가 88만 원입니다. 주변 신축이 비슷한 가격이면 굳이 낡은 건물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둘째는 불법 용도변경 흔적이 있는 물건입니다. 근린생활시설을 주거용처럼 쓰는 경우, 월세는 잘 나오는 것처럼 보여도 대출과 매각에서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세입자 민원이나 원상복구 문제도 가볍지 않습니다. 셋째는 명도가 꼬일 가능성이 큰 물건입니다. 월세 투자는 빠르게 임대 세팅이 되어야 의미가 있는데, 점유자와 4개월, 6개월 끌리면 수익률 계산은 종이 위 숫자로만 남습니다.
- 관리비가 주변보다 높은 물건
- 공실이 많은 건물의 중간층 또는 저층 물건
- 선순위 임차인 인수 가능성이 있는 물건
- 수리 범위를 실내만 보고 판단하기 어려운 노후 빌라
- 임대 수요보다 공급 증가가 빠른 지역의 소형 오피스텔
월세는 안정적인 투자처럼 포장되기 쉽습니다. 매달 통장에 돈이 꽂히니까요. 그런데 경매로 월세 물건을 잡을 때는 싸게 사는 것보다 잘못 사지 않는 게 먼저입니다. 특히 첫 물건이라면 수익률 1~2% 더 욕심내기보다, 권리관계 단순하고 명도 예상이 되는 물건을 고르는 편이 낫습니다. 현장에서는 크게 버는 사람보다 오래 살아남는 사람이 결국 더 멀리 갑니다.
저는 아직도 입찰 전날이면 계산기를 여러 번 두드립니다. 월세 80만 원이라는 숫자 하나만 보면 마음이 급해지지만, 공실 두 달과 수리비 300만 원을 넣는 순간 표정이 달라집니다. 그 표정이 불편할수록 오히려 제대로 보고 있는 겁니다. 경매장은 싸게 사는 곳이기도 하지만, 남들이 놓친 위험을 먼저 발견해야 살아남는 곳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