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지인 가계부를 같이 보는데, 아파트담보대출 한도보다 더 무서운 숫자가 식비도 교육비도 아닌 ‘매달 빠져나가는 고정비’였습니다.
집을 살 때는 보통 집값, 대출 가능 금액, 금리부터 봅니다. 그런데 10년 넘게 가계부를 쓰다 보니 실제 생활을 흔드는 건 승인 금액보다 월 상환액이었습니다. 은행에서 4억까지 가능하다고 해도 우리 집 가계부가 4억을 감당한다는 뜻은 아니더라고요.
1. 대출 한도보다 월 상환액을 먼저 보기
아파트담보대출을 볼 때 제일 먼저 할 일은 “얼마까지 빌릴 수 있나”가 아니라 “매달 얼마까지 흔들리지 않고 낼 수 있나”를 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 3억 원을 30년 원리금균등으로 빌리고 금리가 연 4.2%라면 월 상환액은 대략 147만 원 안팎입니다. 여기에 관리비 25만 원, 재산세 월 환산 15만 원, 수선비 적립 10만 원까지 더하면 집 때문에 고정되는 돈이 월 200만 원 가까이 됩니다.
이 숫자가 무섭게 느껴진다면 겁이 많은 게 아닙니다. 오히려 가계부 감각이 살아 있는 겁니다. 대출은 처음 1~2년만 버티는 게임이 아니라 10년, 20년 동안 생활비와 같이 가는 지출입니다.
2. DSR은 은행 기준이지만, 생활 DSR은 따로 있다
금융위원회와 은행권 안내에서 자주 나오는 DSR은 연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부담을 보는 기준입니다. 은행권 차주단위 DSR 40% 같은 숫자는 실제 심사에서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다만 가계부를 쓰는 입장에서는 여기에 생활 DSR을 하나 더 봐야 합니다.
생활 DSR은 단순합니다. 세후 월소득에서 대출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율입니다. 부부 합산 세후 월소득이 600만 원인데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이 180만 원이면 생활 DSR은 30%입니다. 여기에 자동차 할부 40만 원, 학원비 80만 원, 보험료 45만 원이 붙으면 숨 쉴 자리가 급격히 줄어듭니다.
- 세후 소득의 25% 이내: 비교적 안정적인 편
- 세후 소득의 30~35%: 다른 고정비 점검이 꼭 필요한 구간
- 세후 소득의 40% 이상: 소득 감소나 금리 상승에 취약한 구간
물론 맞벌이인지, 자녀가 있는지, 부모님 지원이 있는지에 따라 다릅니다. 그래도 저는 가계부 상담을 할 때 월 상환액이 세후 소득의 3분의 1을 넘는 순간부터 꽤 보수적으로 봅니다.
3. 금리 1% 차이는 장보기 몇 번의 문제가 아니다
대출 금리 0.3%, 0.5%는 작아 보입니다. 그런데 원금이 크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4억 원을 30년 동안 갚는다고 할 때 금리가 연 4.0%에서 5.0%로 오르면 월 상환액은 대략 191만 원대에서 214만 원대로 올라갑니다. 매달 20만 원 넘게 차이 납니다.
이 20만 원은 커피 몇 잔 줄이는 정도로 해결되는 돈이 아닙니다. 한 달 통신비, 보험료 일부, 아이 학원 하나, 주말 외식 몇 번이 같이 움직입니다. 그래서 아파트담보대출을 받을 때는 현재 금리만 보지 말고 1%포인트 오른 경우도 반드시 계산해 두는 편이 낫습니다.
가계부에 넣어보는 간단한 방식
- 현재 예상 월 상환액
- 금리 1%포인트 상승 시 월 상환액
- 관리비와 세금의 월평균 금액
- 이사 후 늘어날 교통비, 양육비, 유지비
이 네 줄을 적어보면 집을 사도 되는지의 감이 훨씬 선명해집니다. 머리로는 괜찮아 보여도 숫자가 답답하면 그 답답함은 대체로 맞습니다.
4. 중도상환보다 비상금이 먼저일 때도 많다
대출을 받으면 빨리 갚고 싶어집니다. 저도 예전에는 여윳돈이 생기면 무조건 원금 상환이 최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계부를 오래 쓰다 보니 순서가 늘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았습니다.
비상금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중도상환만 열심히 하면, 갑자기 병원비나 실직 공백이 생겼을 때 신용대출이나 카드론으로 다시 빌릴 수 있습니다. 금리가 더 높은 빚으로 갈아타는 셈이죠. 그래서 최소 6개월치 필수생활비는 따로 두는 게 마음도 숫자도 편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집 필수생활비가 대출 포함 월 420만 원이라면 2,500만 원 정도는 안전판으로 보고, 그 이후의 여윳돈을 중도상환에 쓰는 식입니다. 이게 속도는 조금 느려 보여도 생활이 덜 흔들립니다.
5. 아파트담보대출 전 가계부에서 지워야 할 항목
대출 심사 전에 신용대출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가계부에서 반복되는 작은 구멍을 먼저 봅니다. 특히 구독료, 배달비, 편의점 지출, 충동 쇼핑은 한 달로 보면 작고 1년으로 보면 꽤 큽니다.
월 9,900원짜리 구독 4개면 3만 9,600원입니다. 배달비와 최소 주문 금액 때문에 한 번에 8,000원씩 더 쓰는 날이 주 2회면 한 달에 약 6만 4,000원입니다. 편의점 간식 5,000원이 주 4회면 월 8만 원입니다. 셋만 합쳐도 월 18만 원이 넘습니다.
이 돈을 전부 끊자는 뜻은 아닙니다. 죄책감으로 줄인 지출은 오래 못 갑니다. 대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항목부터 10만 원만 줄여도 대출 이후 숨통이 달라집니다. 월 10만 원은 1년이면 120만 원이고, 재산세나 이사 후 수리비 같은 돈을 막아주는 완충재가 됩니다.
대출 전 3개월만 해볼 계산
- 최근 3개월 평균 식비
- 최근 3개월 평균 배달·카페 지출
- 보험료와 통신비 고정액
- 자동차 관련 월평균 비용
- 대출 후 남는 자유 지출 한도
아파트담보대출은 좋은 집을 사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지만, 매달의 생활 방식을 바꾸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대출 가능액이 크게 나왔다고 바로 기뻐하기보다, 그 금액을 넣은 가계부가 1년 뒤에도 버틸 수 있는지를 먼저 봅니다. 집은 삶을 편하게 해줘야지, 매달 월급날마다 긴장하게 만들면 오래 버티기 어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