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친구랑 모란에서 약속을 잡았는데, 막상 만나고 나니 둘 다 같은 말을 했다. “근데 여기 술집 어디로 가야 하지?” 모란역 주변에 술집이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많다는 말이 꼭 고르기 쉽다는 뜻은 아니었다. 간판은 계속 보이고, 골목마다 분위기는 조금씩 다르고, 배는 고픈데 실패는 하기 싫었다.
그래서 그날은 바로 들어가지 않고 15분 정도 일부러 걸었다. 역 출구 근처부터 먹자골목 안쪽까지 한 바퀴 돌면서 메뉴판, 손님층, 소음, 테이블 간격을 봤다. 생각보다 모란술집은 “어디가 제일 유명하냐”보다 “오늘 누구랑 어떤 술을 마시냐”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동네였다.
모란술집은 골목 분위기부터 갈린다
모란역 근처 술집은 크게 보면 세 가지 느낌으로 나뉘었다. 역에서 가까운 곳은 접근성이 좋고 회전이 빠른 편이었다. 1차로 가볍게 들어가기 좋지만, 금요일 저녁 7시 이후에는 웨이팅이 생기거나 안쪽 자리가 빨리 차는 경우가 많았다.
조금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고기, 전골, 해산물처럼 안주 중심 술집이 많았다. 여기는 술보다 밥을 겸하는 느낌이 강했다. 퇴근 후 배고픈 상태라면 이쪽이 훨씬 만족도가 높았다. 반대로 2차로 이미 배가 찬 상태라면 안주 양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
더 안쪽이나 골목 끝 쪽에는 조용한 이자카야, 감성 포차, 작은 바 느낌의 가게들이 섞여 있었다. 여기는 대화하기 좋지만, 좌석 수가 적은 곳이 많아서 4명 이상이면 조금 애매했다. 둘이 조용히 마시거나 오랜만에 깊은 얘기할 때는 오히려 이런 곳이 낫다.
1차라면 안주 가격보다 테이블 회전을 봤다
모란술집을 고를 때 메뉴 가격만 보면 헷갈린다. 예를 들어 안주 하나가 18,000원인 곳과 26,000원인 곳이 있어도, 양과 기본 찬, 술이 들어가는 속도를 생각하면 체감 비용이 달라진다. 둘이 가서 안주 하나로 1시간 반을 버틸 수 있으면 26,000원짜리도 나쁘지 않았다.
내 기준으로 1차 술집은 세 가지를 봤다. 첫째, 대표 안주가 밥이 되는지. 둘째, 테이블 간격이 너무 붙어 있지 않은지. 셋째, 직원 호출이 가능한 구조인지. 사람 많은 시간대에는 이 세 가지가 꽤 크게 작용한다.
- 배고픈 상태: 고기, 전골, 닭발, 곱창류가 무난했다.
- 가볍게 시작할 때: 전, 튀김, 어묵탕, 꼬치류가 편했다.
- 대화가 중요할 때: 음악 소리와 테이블 간격을 먼저 보는 게 낫다.
솔직히 술집에서 실패했다고 느낄 때는 안주 맛보다 정신없음이 더 컸다. 주문이 늦고, 옆 테이블 소리가 너무 크고, 화장실 동선이 불편하면 좋은 안주도 금방 피곤해진다. 특히 모란처럼 술집이 몰려 있는 곳에서는 사람이 많은 가게가 항상 나에게 맞는 가게는 아니었다.
2차 모란술집은 ‘덜 먹는 안주’가 중요했다
1차를 든든하게 먹고 나면 2차는 완전히 기준이 바뀐다. 이때는 맛집보다 앉아 있기 편한 곳이 좋았다. 메뉴판에 탕, 볶음, 구이만 가득한 곳보다 마른안주, 과일, 간단한 튀김, 하이볼 같은 선택지가 있는 곳이 부담이 적었다.
실제로 친구 셋이서 1차로 고기를 먹고 2차를 찾았을 때, 안주가 무거운 곳에 들어갔다가 거의 손도 못 댄 적이 있다. 술은 더 마시고 싶은데 안주가 계속 남으니 괜히 아깝고, 테이블도 복잡해졌다. 그 뒤로 2차 모란술집을 찾을 때는 메뉴판에서 10,000원대 가벼운 안주가 있는지 먼저 확인한다.
하이볼이나 생맥주 위주로 가는 날도 마찬가지다. 술 자체가 달거나 탄산이 있으면 튀김류가 잘 맞고, 소주를 계속 마시는 날은 국물 하나가 있는 편이 편했다. 이런 작은 조합이 다음 날 컨디션까지 은근히 좌우했다.
사람 수에 따라 선택이 꽤 달라진다
모란술집은 2명, 4명, 6명 이상일 때 만족도가 확 달라진다. 둘이 갈 때는 작은 가게도 좋다. 오히려 바 자리나 구석 테이블이 있으면 더 편하다. 그런데 4명이 넘어가면 분위기보다 좌석 배치가 먼저다. 원형 테이블인지, 테이블을 붙일 수 있는지, 의자가 불편하지 않은지가 중요해진다.
6명 이상이면 예약 가능 여부를 먼저 확인하는 게 좋다. 모란은 유동 인구가 많아서 “가서 보면 되겠지” 했다가 한참 걷는 일이 생긴다. 특히 금요일, 토요일 저녁에는 6시 30분과 8시 사이의 체감 난도가 다르다. 6시 30분에는 선택지가 꽤 있는데, 8시가 넘으면 빈자리보다 흩어진 자리가 더 많았다.
- 2명: 작은 이자카야, 조용한 포차, 바 테이블도 괜찮다.
- 3~4명: 안주 중심 술집이나 테이블 넓은 포차가 편하다.
- 5명 이상: 예약, 테이블 결합, 화장실 동선을 먼저 보는 편이 낫다.
근데 이것도 너무 빡빡하게 따질 필요는 없다. 술자리는 결국 같이 간 사람 분위기가 절반 이상이다. 다만 첫 가게에서 너무 지치면 뒤 대화까지 흐려지니, 처음 10분만 꼼꼼히 보는 게 꽤 효과적이었다.
내가 모란에서 다시 고른다면 이렇게 갈 것 같다
다시 모란술집을 고른다면 나는 일단 목적을 먼저 정할 것 같다. 배고픈 퇴근길이면 안주 양이 넉넉한 곳으로 가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이야기하려는 날이면 골목 안쪽의 조용한 곳을 찾겠다. 사람 많은 주말이라면 유명한 곳을 고집하기보다 바로 앉을 수 있고 메뉴 구성이 괜찮은 곳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가격은 둘이서 1차 기준 안주 1~2개, 술 2~3병 정도면 대략 4만 원대 후반에서 6만 원대까지 생각하면 마음이 편했다. 하이볼이나 칵테일을 섞으면 조금 더 올라간다. 여러 명이 가면 안주를 나눠 먹을 수 있어서 오히려 1인당 부담은 줄어드는 편이다.
모란술집은 화려한 한 곳을 딱 찍는 재미보다, 그날의 상태에 맞춰 고르는 재미가 있는 동네였다. 배고픈 날, 시끄럽게 웃고 싶은 날, 조용히 한잔하고 싶은 날의 답이 다 다르다. 그래서 나는 다음에 모란에서 약속이 잡히면 바로 검색창만 붙잡고 있기보다, 역 주변을 한 바퀴 천천히 걸어볼 생각이다. 의외로 그 10분이 술자리의 질을 제일 크게 바꿔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