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밑반찬은 양념보다 물 양에서 먼저 갈립니다
얼마 전 요리교실에서 멸치볶음을 같이 만들었는데, 같은 간장과 같은 물엿을 넣고도 한 분 것은 딱딱하고 한 분 것은 축축했어요. 둘 다 손맛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팬 예열, 불 세기, 마지막에 남은 수분이 달랐습니다. 밑반찬은 한 번 만들어 며칠 먹는 음식이라 처음 5분의 선택이 꽤 크게 남아요.
제가 주방에서 오래 일하면서 제일 많이 본 실수는 양념을 먼저 세게 잡는 거였습니다. 간이 부족하면 간장을 더 넣고, 색이 약하면 고춧가루를 더 넣고, 윤기가 없으면 물엿을 더 넣습니다. 그런데 밑반찬은 물기가 덜 날아가면 싱겁게 느껴지고, 너무 졸아들면 짜게 느껴집니다. 같은 양념이어도 수분이 얼마나 남았는지가 맛을 바꿉니다.
처음부터 재료를 많이 갖출 필요는 없습니다. 기본은 간장, 소금, 설탕이나 올리고당, 식초, 참기름 정도면 충분합니다. 대신 계량은 한 번만 정확히 해두는 게 좋아요. 밥숟가락 기준 간장 1큰술은 약 15ml, 설탕 1큰술은 수북하지 않게 10g 안팎으로 보면 됩니다. 숟가락을 산처럼 담으면 레시피가 갑자기 다른 음식이 됩니다.
오래 가는 밑반찬의 기본 비율
밑반찬을 만들 때 저는 재료 300g을 기준으로 많이 잡습니다. 집 냉장고에서 3~4일 먹기 좋은 양이에요. 나물류는 데치면 부피가 확 줄고, 볶음류는 식으면서 간이 조금 더 들어갑니다. 그래서 처음 맛봤을 때 딱 맞으면 다음 날은 살짝 짤 수 있습니다.
- 간장조림: 재료 300g에 물 120ml, 간장 2큰술, 설탕 1큰술, 맛술 1큰술
- 고춧가루 무침: 데친 재료 250g에 고춧가루 1큰술, 간장 1큰술, 다진 마늘 1작은술
- 식초 무침: 채소 300g에 식초 2큰술, 설탕 1큰술, 소금 1작은술보다 조금 적게
- 볶음 반찬: 재료 300g에 기름 1큰술, 간장 1큰술 반, 올리고당 1큰술
여기서 중요한 건 처음부터 양념을 전부 넣지 않는 겁니다. 간장은 80%만 먼저 넣고 마지막에 맞추면 실패가 적습니다. 특히 어묵, 멸치, 장아찌처럼 원재료에 간이 있는 재료는 레시피 양 그대로 넣으면 금방 짜집니다. 반대로 감자, 연근, 우엉은 속까지 간이 들어가는 시간이 필요해서 물을 너무 적게 잡으면 겉만 짜고 속은 밍밍합니다.
대체 재료도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맛술이 없으면 물 1큰술에 설탕 한 꼬집을 더해도 되고, 올리고당이 없으면 설탕을 절반 양으로 넣은 뒤 마지막에 물 1큰술을 보태 윤기를 맞추면 됩니다. 참기름이 없으면 들기름을 써도 되지만, 들기름은 향이 빨리 산화하니 넉넉히 만들 반찬에는 마지막에 아주 조금만 넣는 쪽이 낫습니다.
불 세기는 센 불보다 바꾸는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밑반찬은 센 불로 확 볶으면 맛있을 것 같지만, 집 화구에서는 생각보다 쉽게 탑니다. 특히 간장과 당이 들어간 양념은 팬 가장자리부터 눌어붙습니다. 저는 수업에서 늘 팬 가운데만 보지 말고 가장자리 색을 보라고 말합니다. 가장자리가 진한 갈색으로 빨리 변하면 불이 센 겁니다.
멸치볶음은 약불로 말리고 중불로 코팅합니다
멸치 100g은 마른 팬에서 약불로 3분 정도 먼저 볶아 비린내와 습기를 날립니다. 이때 기름을 먼저 넣으면 멸치 비린내가 기름에 갇혀요. 체에 한 번 털어 잔가루를 빼고, 팬에 식용유 1큰술을 두른 뒤 중불에서 1분 볶습니다. 불을 끄고 간장 1작은술, 올리고당 1큰술, 설탕 1작은술을 넣어 섞은 다음 다시 약불로 30초만 굴립니다. 간장을 많이 넣지 않는 이유는 멸치 자체가 이미 짜기 때문입니다.
감자조림은 물을 아끼면 설익습니다
감자 2개, 약 350g은 한입 크기로 썰고 찬물에 5분 담가 전분을 조금 뺍니다. 팬에 감자, 물 180ml, 간장 2큰술, 설탕 1큰술, 식용유 1작은술을 넣고 중불로 끓입니다. 끓기 시작하면 뚜껑을 덮고 중약불로 8분, 뚜껑을 열고 4~5분 졸입니다. 처음 물이 너무 적으면 감자가 익기 전에 양념만 타요. 젓가락이 들어간 뒤에 윤기를 내야 합니다.
오이무침은 소금 절임 시간이 간입니다
오이 2개는 4~5mm 두께로 썰고 소금 1작은술을 넣어 10분만 둡니다. 오래 두면 아삭함이 빠지고, 덜 두면 양념 후 물이 많이 생깁니다. 물기를 손으로 가볍게 짠 뒤 고춧가루 1큰술, 식초 1큰술 반, 설탕 1작은술, 다진 마늘 1작은술을 넣습니다. 간장은 색과 향이 필요할 때 1작은술만 넣습니다. 오이는 냉장고에 들어가면 물이 더 나오니 참기름은 먹기 직전에 넣는 편이 깔끔합니다.
실패했을 때는 새 양념보다 수습 순서가 먼저입니다
밑반찬이 짜졌을 때 물을 확 붓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짠맛은 잠깐 줄어도 재료가 물러지고 보관성이 떨어집니다. 짠 볶음 반찬은 같은 재료를 양념 없이 조금 더 볶아 섞는 게 제일 좋습니다. 없으면 양파채나 데친 숙주처럼 수분 있는 재료를 넣고 1분만 섞습니다. 오래 볶으면 새 재료에서도 물이 나와 전체가 질척해집니다.
싱거울 때는 간장을 바로 붓지 말고, 팬 한쪽에 간장 1작은술을 떨어뜨려 살짝 끓인 뒤 섞습니다. 생간장 맛이 덜 나고 향이 살아납니다. 단맛이 과하면 식초 몇 방울이나 고춧가루 한 꼬집이 균형을 잡아줍니다. 반대로 너무 매운 무침은 설탕보다 참기름과 깨를 조금 늘리는 게 낫습니다. 설탕만 늘리면 매운 단맛이 되어 밥반찬으로 피곤해질 때가 있어요.
물컹해진 나물은 다시 오래 볶아도 살아나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작게 썰어 달걀말이나 볶음밥에 넣는 편이 훨씬 맛있습니다. 저도 예전에 시금치나물을 너무 오래 데쳐서 손님상에 못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날은 다져서 밥, 참기름, 깨, 달걀과 섞어 작은 주먹밥으로 냈는데 오히려 반응이 좋았습니다. 실패한 반찬을 억지로 원래 모습으로 돌리려 하면 더 멀리 갑니다.
냉장고에 넣기 전 20분이 맛을 지킵니다
밑반찬은 만든 뒤 바로 뚜껑을 덮지 않는 게 좋습니다. 뜨거운 김이 안에서 물방울로 맺히면 볶음은 눅눅해지고 무침은 물이 빨리 생깁니다. 넓은 접시에 펴서 20분 정도 식힌 뒤 용기에 담으면 맛이 훨씬 안정됩니다. 단, 여름철이나 실내가 더울 때는 오래 방치하지 말고 김만 빠지면 바로 냉장고로 옮깁니다.
용기는 큰 것 하나보다 작은 것 두 개가 낫습니다. 매번 열고 닫는 반찬은 온도 변화가 잦아서 맛이 빨리 갑니다. 2~3일 안에 먹을 양만 앞쪽에 두고 나머지는 뒤쪽에 넣어두면 관리가 편합니다. 젓가락도 생각보다 중요합니다. 침이 묻은 젓가락으로 집으면 반찬이 빨리 상합니다. 덜어 먹는 습관 하나만으로도 밑반찬의 시간이 꽤 길어집니다.
집밥 밑반찬은 대단한 비법보다 작은 기준이 맛을 만듭니다. 물은 재료가 익을 만큼만, 불은 양념이 타지 않을 만큼만, 간은 마지막에 한 번 더. 이 세 가지만 잡아도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마음이 조금 든든해집니다. 저는 밑반찬이 그런 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밥상에 조용히 힘을 보태는 음식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