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칩 과자를 먹는 브랜드로 만든 SK하이닉스의 진짜 이야기

hbm칩 과자를 먹는 브랜드로 만든 SK하이닉스의 진짜 이야기

얼마 전 편의점 과자 매대를 보다가 ‘HBM칩스’라는 이름을 보고 잠깐 웃었습니다. 반도체 업계에서 HBM은 엔비디아와 AI 서버를 떠올리게 하는 꽤 무거운 단어인데, 그게 허니바나나맛 과자 봉지 위에 올라와 있었거든요. 브랜드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이런 장면이 가끔 있습니다. 처음엔 장난처럼 보이는데, 뜯어보면 꽤 계산된 브랜드 약속이 숨어 있는 경우 말입니다.

기술 기업이 왜 과자를 만들었을까

SK하이닉스와 세븐일레븐이 함께 낸 ‘허니바나나맛 HBM칩스’는 2025년 11월 출시됐습니다. HBM은 원래 High Bandwidth Memory의 약자지만, 이 과자에서는 Honey, Banana, Mat의 앞글자로 다시 읽히죠. 말장난입니다. 그런데 좋은 말장난은 그냥 웃기고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어려워하던 기술어를 입에 올리게 만듭니다.

사실 반도체 브랜드는 대중과 친해지기 어렵습니다. 스마트폰이나 자동차처럼 손에 잡히는 완제품도 아니고, 광고를 본다고 바로 구매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닙니다. B2B 기업의 브랜드는 보통 투자자, 고객사, 구직자에게만 말을 걸죠. 그런데 AI 시대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일반 소비자도 엔비디아, GPU, HBM 같은 단어를 뉴스에서 듣습니다. 알긴 아는데, 여전히 멀게 느끼는 단어. 이 틈에 과자가 들어온 겁니다.

이름 하나로 만든 대중 번역기

브랜드 기획 관점에서 HBM칩 과자가 흥미로운 지점은 제품 자체보다 ‘번역 방식’입니다. 어려운 기술을 쉽게 설명하려고 긴 문장을 붙인 게 아니라, 사람들이 이미 아는 카테고리로 옮겼습니다. 칩은 반도체 칩이면서 스낵 칩이고, HBM은 기술명이면서 맛의 약자가 됩니다. 이중 의미가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 제품은 출시 60일 만에 35만 개가 팔렸고, 전국 판매 1위 점포가 이천SK점이었다고 합니다. 이 숫자가 재미있는 이유는 단순 판매량 때문만은 아닙니다. 과자를 사는 행위가 내부 구성원, 협력사, 반도체 업계 주변 사람들에게 일종의 참여 인증이 됐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브랜드가 대중에게만 팔리는 게 아니라 내부 사람들에게도 ‘우리 회사가 이런 것도 한다’는 이야깃거리가 된 거죠.

  • 가격은 2,000원대로 진입 장벽이 낮았습니다.
  • 반도체 모양을 닮은 사각형 형태로 제품 콘셉트가 눈에 보였습니다.
  • 허니바나나맛이라는 익숙한 맛을 써서 낯선 기술명과 균형을 맞췄습니다.
  • 스티커 카드와 경품 이벤트로 수집과 공유의 이유를 붙였습니다.
광고

운도 좋았지만, 운이 탈 자리를 만들어뒀다

브랜드 캠페인을 평가할 때 저는 운을 꽤 중요하게 봅니다. 아무리 잘 만든 기획도 시대의 공기를 못 타면 조용히 사라지고, 조금 엉성한 기획도 우연한 장면 하나로 폭발할 수 있습니다. HBM칩스는 분명 운을 탔습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한국에서 시민들에게 HBM칩스를 나눠준 장면이 기사화되면서 제품은 그냥 편의점 PB 과자가 아니라 AI 반도체 밈이 됐습니다.

근데 이건 완전히 우연만은 아닙니다. 애초에 HBM이라는 단어가 엔비디아, AI, SK하이닉스의 공급망 이야기와 연결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젠슨 황에게 HBM칩스를 건넸다는 보도도 이어졌고, ‘진짜 HBM을 사는 사람이 HBM 과자를 먹었다’는 그림이 만들어졌습니다. 마케터 입장에서는 이보다 좋은 무료 확산 소재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과자가 유명인을 억지로 빌린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HBM이라는 기술 맥락 안에 이미 있던 인물이었고, 제품은 그 맥락을 가볍게 받을 수 있는 형태였습니다. 그래서 장면이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광고처럼 보이기보다 농담처럼 보였고, 농담처럼 보였기 때문에 더 멀리 갔습니다.

브랜드 약속은 ‘쉽게 느껴지게 하겠다’였다

SK하이닉스 뉴스룸에서 밝힌 취지는 반도체를 더 친근하게 느끼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흔한 브랜드 문장처럼 들리지만, HBM칩스는 그 약속을 실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기술을 설명하지 않고 경험하게 했습니다. 먹고, 찍고, 나누고, 이야기하게 만들었습니다.

브랜드가 한 약속과 행동이 맞아떨어질 때 사람들은 설득당했다기보다 스스로 발견했다고 느낍니다. “HBM이 뭐더라?” 하고 검색하게 만드는 힘은 30초짜리 기업 광고보다 더 오래 갑니다. 특히 채용 브랜드 관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반도체 회사가 어렵고 딱딱하다는 이미지를 조금 느슨하게 만들고, 젊은 소비자에게 ‘저 회사는 자기 기술을 가지고 놀 줄 아네’라는 인상을 남기니까요.

잘한 점과 아슬아슬한 점

물론 이런 기획은 늘 줄타기입니다. 기술 기업이 너무 가볍게 보이면 전문성이 희석될 수 있고, 장난이 과하면 내부에서도 불편함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HBM칩스는 적어도 출발점에서는 균형이 괜찮았습니다. 실제 주력 기술명과 제품 형태, 맛 이름, 유통 채널이 하나의 농담 안에서 굴러갔기 때문입니다.

다만 다음 단계가 중요합니다. 한 번의 밈은 브랜드 자산이 아니라 이벤트로 끝날 수 있습니다. 캐릭터, 굿즈, 체험형 프로그램으로 이어간다고 했을 때, 그 세계관이 과자 봉지의 농담을 반복하는 수준에 머물면 금방 식습니다. 반대로 HBM이 왜 중요한지, SK하이닉스가 왜 그 기술에서 자신감을 갖는지,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AI 인프라를 어떻게 체감하는지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면 이야기는 길어집니다.

광고

과자가 남긴 브랜드 감각

hbm칩 과자는 엄청난 매출 상품이라서 기억될 기획은 아닐 겁니다. 2,000원짜리 스낵 하나가 반도체 기업의 실적을 바꾸지는 않으니까요. 하지만 브랜드의 온도를 바꾸는 장치로는 꽤 똑똑했습니다. 대중이 어려운 기술을 처음 만나는 입구를 보고서나 세미나가 아니라 편의점 매대로 바꿔놓았으니까요.

브랜드는 결국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서 나를 떠올리게 만들 것인가의 싸움입니다. SK하이닉스는 HBM을 데이터센터 안에만 두지 않고, 과자 봉지와 홍대 거리와 편의점 계산대 위로 끌고 왔습니다. 솔직히 이런 시도는 조금 유치해야 성공합니다. 너무 점잖으면 아무도 말하지 않거든요. 이번엔 그 유치함이 기술의 무게를 덜어냈고, 그래서 꽤 오래 기억될 만한 브랜드 장면이 됐다고 봅니다.

hbm칩 과자를 먹는 브랜드로 만든 SK하이닉스의 진짜 이야기 -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