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현대미술 이야기를 하다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 이름이 나왔는데, 의외로 두 사람을 ‘연인 예술가’ 정도로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사실 이 둘의 이야기는 로맨스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몸을 재료로 삼은 퍼포먼스, 서로를 밀어붙인 협업, 그리고 이별까지 하나의 작품처럼 남긴 관계였으니까요.
두 사람을 이해하려면 시대부터 보면 쉽습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1946년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태어난 퍼포먼스 예술가입니다. 울라이는 본명이 프랑크 우베 라이시펜으로, 1943년 독일에서 태어났습니다. 두 사람은 1970년대 중반에 만나 1976년부터 본격적으로 함께 작업했습니다.
당시 퍼포먼스 아트는 그림이나 조각처럼 ‘남는 물건’을 만드는 방식과 달랐습니다. 예술가의 몸, 시간, 고통, 관객의 반응이 작품이 됐죠. 그래서 처음 보면 “이게 왜 예술이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들여다보면, 두 사람은 인간관계의 긴장과 신뢰를 아주 직접적인 방식으로 보여줬습니다.
대표작은 관계의 한계를 실험했습니다
마리나와 울라이는 자신들을 따로 떨어진 두 명이 아니라 하나의 존재처럼 다루기도 했습니다. 서로를 ‘두 개의 몸, 하나의 예술적 정체성’처럼 밀어붙인 셈입니다. 대표작들을 보면 그 방향이 꽤 선명합니다.
- Relation in Space: 두 사람이 반복해서 서로에게 부딪히며 몸과 충돌의 의미를 드러낸 작업입니다.
- Breathing In/Breathing Out: 서로의 입을 맞댄 채 상대가 내쉰 숨만 들이마시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사랑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의존과 질식이 느껴집니다.
- Rest Energy: 울라이가 활을 잡고, 마리나는 화살촉이 자신의 심장을 향하도록 선 작품입니다. 아주 작은 실수도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죠.
- Imponderabilia: 두 사람이 미술관 입구에 벌거벗은 채 마주 서고, 관객은 그 사이를 지나가야 했습니다. 관객의 시선과 선택까지 작품 안으로 들어온 사례입니다.
이 작품들이 흥미로운 건 자극적인 장면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디까지 자신을 맡길 수 있는지, 관계 안에서 힘의 균형은 어떻게 흔들리는지, 관객은 불편한 상황 앞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 묻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별까지 작품이 된 만리장성 프로젝트
두 사람의 관계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이 1988년의 The Lovers입니다. 흔히 만리장성 프로젝트로 불리는데요. 원래는 서로 반대편에서 출발해 만리장성을 걸은 뒤 가운데서 만나 결혼하려는 계획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준비 기간이 길어지는 사이 두 사람의 관계는 변했습니다. 실제로 프로젝트가 실행됐을 때는 결혼이 아니라 이별의 만남이 됐습니다. 마리나는 산해관 쪽에서, 울라이는 고비사막 쪽에서 출발해 각각 약 2,500km 안팎을 걸었고, 가운데에서 만나 포옹한 뒤 헤어졌습니다.
솔직히 이 이야기는 너무 영화 같아서 과장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강하게 남습니다. 보통 이별은 조용히 사라지거나 감정적으로 끝나는데, 두 사람은 그것을 긴 걷기와 만남, 그리고 작별의 장면으로 남겼습니다. 관계의 시작보다 끝을 더 긴 시간과 거리로 표현한 셈입니다.
2010년 재회 장면이 오래 회자되는 이유
2010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The Artist Is Present를 진행했습니다. 작가는 의자에 앉아 관객 한 명과 말없이 마주 보는 방식이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차례로 앉았습니다. 그중 울라이가 등장한 장면은 지금도 자주 언급됩니다.
두 사람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고, 마리나는 감정이 북받친 듯 손을 내밀었습니다. 이 장면이 사람들에게 크게 남은 이유는 단순한 재회라서가 아닙니다. 예전의 사랑, 공동 작업, 갈등, 예술적 동료 의식이 한순간에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뒤에도 두 사람 사이에는 저작권과 회고록을 둘러싼 법적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관계를 낭만적으로만 보는 건 조금 아쉽습니다. 아름다운 장면도 있었고, 현실적인 다툼도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 복잡함 때문에 두 사람의 이야기가 더 인간적으로 느껴집니다.
처음 접할 때는 작품보다 질문을 따라가면 좋습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를 처음 접할 때 작품 설명만 외우면 금방 멀어집니다. 대신 몇 가지 질문을 잡고 보면 훨씬 가까워집니다. 왜 이들은 몸을 작품의 중심에 놓았을까. 왜 사랑과 위험을 같은 장면 안에 넣었을까. 관객은 정말 구경만 하는 사람일까.
두 사람의 작업은 편하게 감상하기 어려운 편입니다. 불편하고, 때로는 위험해 보이고, 어떤 작품은 보는 것만으로도 긴장이 됩니다. 그런데 그 긴장 덕분에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예민한 균형 위에 있는지 느끼게 됩니다. 사랑도, 협업도, 이별도 결국 서로의 몸과 시간에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을 아주 노골적으로 보여준 예술가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둘을 ‘비극적인 예술 커플’로만 기억하기보다, 관계를 예술의 언어로 끝까지 밀어붙인 동료로 보는 편이 더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두 사람이 남긴 작품은 오래전 퍼포먼스지만,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일의 설렘과 위험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지금 봐도 이상하게 현재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