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지인이 항공 마일리지 카드를 바꾸겠다고 혜택표를 들고 왔습니다. 적립률만 보면 꽤 좋아 보였는데, 월 지출을 넣어 계산해보니 1년에 실제로 남는 마일리지는 기대치의 절반도 안 됐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전월실적, 적립 제외, 월 적립한도, 연회비가 각각 따로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마일리지 카드는 감성 상품에 가깝습니다. 여행, 라운지, 항공권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할인카드보다 더 커 보입니다. 그런데 카드사 상품기획을 해본 입장에서 말하면, 이 상품은 숫자를 아주 차갑게 봐야 합니다. 1마일이 얼마짜리인지, 내 소비에서 몇 마일이 실제로 쌓이는지, 그 마일을 언제 쓸 수 있는지가 전부입니다.
1. 적립률보다 1마일 가치부터 잡아야 합니다
마일리지 카드 비교에서 가장 많이 놓치는 숫자가 1마일의 현금 가치입니다. 보통 대한항공, 아시아나, 해외 항공사 마일을 카드로 모을 때 1마일을 대략 10원에서 15원 사이로 잡고 계산합니다. 좌석 상황이 좋고 장거리 비즈니스석처럼 효율이 높은 구간이면 더 올라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단거리 이코노미, 성수기, 유류할증료가 큰 구간이면 체감 가치는 내려갑니다.
예를 들어 1,000원당 1마일 적립 카드가 있다고 보겠습니다. 1마일을 12원으로 보면 적립률은 1.2%입니다. 겉으로는 항공 마일리지라 특별해 보이지만, 숫자만 놓고 보면 1.2% 캐시백 카드와 같은 출발선입니다. 여기에 연회비 10만 원이 붙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연간 833만 원 정도를 써야 1.2% 가치로 연회비 10만 원을 겨우 회수합니다.
- 1마일 10원 기준: 1,000원당 1마일은 1.0% 적립
- 1마일 12원 기준: 1,000원당 1마일은 1.2% 적립
- 1마일 15원 기준: 1,000원당 1마일은 1.5% 적립
그래서 마일리지 카드는 적립률이 아니라 사용 가능성까지 같이 봐야 합니다. 3년 안에 가족 여행 항공권으로 쓸 계획이 있으면 1마일 가치를 높게 잡아도 됩니다. 반대로 해외여행이 불규칙하고 마일을 쌓아만 두는 타입이면 10원 이하로 보는 게 더 현실적입니다.
2. 전월실적은 적립보다 먼저 걸러야 할 조건입니다
많은 마일리지 카드는 전월실적 30만 원, 50만 원, 70만 원 같은 문턱을 둡니다. 문제는 전월실적 인정 항목과 마일 적립 항목이 같지 않다는 점입니다. 세금, 공과금, 아파트관리비, 상품권, 보험료, 무이자할부, 간편결제 일부는 실적에는 들어가거나 빠지고, 적립에서는 또 다르게 처리됩니다.
예를 들어 월 100만 원을 카드로 쓴다고 해도 전부 적립 대상은 아닙니다. 관리비 20만 원, 보험료 15만 원, 국세나 지방세 10만 원, 상품권성 결제 10만 원이 빠지면 실제 적립 대상은 45만 원만 남습니다. 1,000원당 1마일 카드라면 월 450마일, 1마일 12원 기준 월 5,400원 가치입니다. 이 정도면 연회비 10만 원 카드에서는 계산이 꽤 빡빡합니다.
실적 계산에서 자주 생기는 착각
- 카드값 100만 원이 곧 적립 대상 100만 원이라고 생각한다
- 간편결제 이름만 보고 모든 결제가 같은 업종으로 잡힌다고 본다
- 무이자할부를 써도 적립이 그대로 된다고 예상한다
- 전월실적 제외 항목과 적립 제외 항목을 따로 읽지 않는다
특히 마일리지 카드는 할인카드처럼 청구서에서 바로 티가 나지 않습니다. 마일은 조용히 쌓이고, 빠진 것도 조용히 빠집니다. 그래서 첫 달에는 카드 앱의 적립 내역을 꼭 대조해야 합니다. 예상보다 적립이 적다면 카드가 나쁜 게 아니라 소비 구조가 안 맞는 경우가 많습니다.
3. 월 적립한도와 구간형 적립은 체감 수익률을 낮춥니다
혜택표에 1,000원당 2마일, 해외 3마일 같은 문구가 있으면 눈이 갑니다. 그런데 옆에 월 2,000마일 한도, 특별적립 월 500마일 한도 같은 조건이 붙어 있으면 계산을 다시 해야 합니다. 적립률이 높은 구간은 대부분 한도가 있습니다. 카드사는 전체 손익을 맞춰야 하니까요.
월 150만 원을 쓰는 사람이 기본 1마일, 특정 업종 2마일 카드를 쓴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특정 업종에서 50만 원을 쓰면 이론상 1,000마일입니다. 그런데 특별적립 한도가 500마일이면 나머지 500마일은 기본 적립으로 내려가거나 아예 추가분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표시 적립률은 2마일이지만 실제 적립률은 그보다 낮습니다.
구간형 카드도 조심해야 합니다. 전월실적 50만 원 이상이면 기본 적립, 100만 원 이상이면 추가 적립 같은 구조는 소비가 딱 맞아야 좋습니다. 월 78만 원 쓰는 사람은 100만 원 구간 혜택을 못 받고, 월 115만 원 쓰는 사람은 초과분에서 한도에 걸릴 수 있습니다. 혜택표의 최고 구간은 카드사가 보여주고 싶은 얼굴이지, 내 지갑에 들어오는 평균값은 아닙니다.
4. 연회비 회수선은 연간 소비액으로 봐야 합니다
마일리지 카드의 연회비는 일반 할인카드보다 높은 편입니다. 국내전용보다 해외겸용이 비싸고, 프리미엄급으로 가면 바우처나 라운지 혜택이 붙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바우처를 내가 실제로 쓰는지입니다. 공항라운지를 1년에 한 번도 안 가면 라운지 혜택 가치는 0원입니다. 호텔 식사권도 억지로 쓰면 절약이 아니라 추가 소비가 됩니다.
단순 계산을 해보겠습니다. 연회비 15만 원, 1,000원당 1마일, 1마일 가치 12원으로 잡으면 기본 적립률은 1.2%입니다. 연회비만 회수하려면 연간 1,250만 원을 적립 대상 금액으로 써야 합니다. 월평균 약 104만 원입니다. 여기서 적립 제외 금액이 월 20만 원 있으면 실제 카드 사용액은 월 124만 원 이상이어야 비슷해집니다.
- 연회비 5만 원: 1.2% 기준 연 417만 원 적립 대상 소비 필요
- 연회비 10만 원: 1.2% 기준 연 833만 원 적립 대상 소비 필요
- 연회비 15만 원: 1.2% 기준 연 1,250만 원 적립 대상 소비 필요
물론 카드에 무료 항공권, 동반자 혜택, 바우처가 있고 내가 매년 정확히 쓴다면 회수선은 낮아집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현금처럼 쓰는 혜택과 조건부 혜택을 구분해야 합니다. 10만 원 바우처라고 적혀 있어도 사용처가 좁고 최소 결제금액이 붙으면 내 계산표에는 10만 원 그대로 넣지 않습니다. 저는 보통 체감 사용률을 50%에서 80% 정도로 낮춰 넣습니다.
5. 마일리지 카드가 맞는 사람과 안 맞는 사람은 꽤 분명합니다
마일리지 카드가 맞는 사람은 첫째, 연간 적립 대상 소비가 꾸준합니다. 둘째, 해외여행이나 장거리 이동 계획이 있습니다. 셋째, 항공사 좌석 검색과 예약 타이밍을 맞출 의지가 있습니다. 넷째, 연회비 높은 카드의 부가서비스를 실제로 씁니다. 이 네 가지 중 두세 개 이상 맞으면 계산해볼 만합니다.
반대로 월 소비가 50만 원 안팎이고, 관리비나 세금 비중이 높고, 여행 계획이 불규칙하다면 마일리지 카드는 생각보다 느립니다. 1년에 6,000마일 모으고 끝나는 구조라면 항공권까지 가는 길이 길어집니다. 그 사이 카드 상품이 바뀌거나 항공사 공제표가 조정되면 기대했던 가치도 흔들립니다.
월 120만 원 소비자의 간단한 예시
월 120만 원을 쓰고 그중 90만 원이 적립 대상이라고 보겠습니다. 1,000원당 1마일이면 월 900마일, 연 10,800마일입니다. 1마일 12원 기준으로 연 12만9,600원 가치입니다. 연회비가 10만 원이면 숫자상 2만9,600원 남습니다. 그런데 마일 사용이 2년 뒤이고, 좌석을 원하는 날짜에 못 잡을 수 있다면 체감 이익은 더 작아집니다.
같은 사람이 1.5% 캐시백 카드를 쓰면 적립 대상 90만 원 기준 월 1만3,500원, 연 16만2,000원입니다. 연회비가 2만 원이면 남는 금액은 14만2,000원입니다. 여행 로망을 빼고 숫자만 보면 캐시백 카드가 더 낫습니다. 이 비교를 불편해하는 분들이 많은데, 카드 선택은 기분보다 회수금액이 먼저입니다.
마일리지 카드는 잘 쓰면 좋은 상품입니다. 다만 좋은 사람에게만 좋습니다. 저는 마일리지 카드를 고를 때 혜택표 첫 줄보다 내 소비명세서 3개월치를 먼저 봅니다. 그 안에서 적립 제외를 빼고, 월 한도에 걸리는 금액을 자르고, 연회비를 나눠 넣으면 답이 꽤 빨리 나옵니다. 숫자가 남으면 쓰고, 숫자가 안 남으면 멋있어 보여도 내려놓는 게 맞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