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순위표를 보다가 기아 타이거즈 이름이 아래쪽에 붙어 있는 걸 보고 잠깐 멈칫했습니다. 작년에 그렇게 강했던 팀이 시즌 초반부터 최하위권까지 내려앉는 장면은 단순한 부진으로 넘기기엔 꽤 낯설었거든요.
초반 순위표가 유독 낯설었던 이유
기아는 2024시즌 통합 우승팀이었습니다. KBO 기록실 기준으로 팀 타율 0.301, 득점 858점, 안타 1542개, OPS 0.828을 찍은 팀이었죠. 리그에서 유일하게 팀 타율 3할을 넘겼고, 득점권 타율도 0.308로 강했습니다. 말 그대로 한 번 흐름을 잡으면 이닝을 통째로 가져가는 타선이었습니다.
그런데 2025시즌 초반 풍경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4월 초 기준 12경기 4승 8패, 승률 0.333으로 9위까지 내려갔고, 최하위와도 반 경기 차이였습니다. 지난해 같은 12경기에서 8승 4패로 2위권에 있었던 걸 떠올리면 체감 낙폭이 더 큽니다. 우승팀의 느린 출발이 아니라, 경기 내용까지 같이 가라앉은 출발이었습니다.
타선의 색이 빠진 게 가장 크게 보였다
기아의 초반 문제는 점수 생산에서 먼저 드러났습니다. 개막 직후 광주 5연전에서는 37점을 냈습니다. 경기당 7.4점이니 타격감 자체는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죠. 근데 그 뒤 흐름이 급격히 식었습니다. 이어진 4경기에서 8득점에 그쳤고, 강한 타선 특유의 압박감이 사라졌습니다.
김도영 이탈의 체감은 숫자 이상이었다
가장 큰 변수는 김도영의 부상이었습니다. 2024년 김도영은 타율 0.347, 38홈런, 109타점, 40도루, 143득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시즌을 보냈습니다. 장타, 주루, 득점 창출을 동시에 담당한 선수였습니다. 그런 선수가 개막전부터 햄스트링 부상으로 빠지면 단순히 한 명이 빠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상대 배터리의 볼 배합, 중심타선 앞뒤 연결, 주자의 움직임까지 줄줄이 바뀝니다.
여기에 박찬호의 무릎 문제, 김선빈의 종아리 부상까지 겹쳤습니다. 기아 타선은 지난해처럼 앞에서 흔들고, 중간에서 붙이고, 중심에서 터뜨리는 구조가 강점이었는데 초반에는 그 연결고리가 자주 끊겼습니다. 패트릭 위즈덤이 홈런으로 버텨준 장면은 분명 있었지만, 팀 공격이 특정 장타 하나에 기대는 모양이 되면 상대도 계산하기 쉬워집니다.
선발은 버텼는데 후반이 새었다
흥미로운 건 선발진만 놓고 보면 완전히 무너진 팀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초반 기아 선발 평균자책점은 2점대 후반으로 리그 상위권에 가까웠고, 퀄리티스타트도 꾸준히 나왔습니다. 양현종, 제임스 네일, 김도현 같은 선발 카드가 경기의 뼈대를 세운 날도 적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그 뒤였습니다. 불펜 평균자책점이 8점대까지 치솟으며 경기 후반 리드를 지키거나 접전을 끌고 가는 힘이 떨어졌습니다. 선발이 5~6이닝을 잘 막아도 7회 이후 흔들리면 타선은 더 급해집니다. 공격에서는 한 방을 기다리고, 수비에서는 실점 부담이 커지고, 불펜은 또 심리적으로 몰립니다. 시즌 초반 연패는 대개 이런 식으로 서로를 잡아당기며 커집니다.
- 2024년 기아: 팀 타율 0.301, 득점 858점, OPS 0.828
- 2025년 초반 기아: 12경기 4승 8패, 승률 0.333, 9위권 추락
- 초반 주요 변수: 김도영, 박찬호, 김선빈 등 핵심 야수 부상
- 투타 엇박자: 선발진은 버텼지만 불펜과 타선 흐름이 동시에 흔들림
최하위권 추락이 남긴 진짜 숙제
기아의 시즌 초반 최하위권 추락은 운이 나빴다는 말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부상은 컸습니다. 김도영처럼 리그 최상급 생산력을 가진 선수가 빠졌고, 내야의 중심축이 동시에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강팀은 부상자가 생겼을 때 대체 자원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들어오느냐에서 진짜 체력이 드러납니다.
기아 입장에서는 초반 부진이 오히려 시즌 운영의 약점을 빨리 보여준 셈입니다. 공격에서는 출루와 연결 능력을 되살려야 하고, 불펜은 역할을 더 분명하게 나눠야 합니다. 특히 지난해처럼 역전승을 쌓으려면 6회 이후 버티는 힘이 필요합니다. 장타 몇 개로 분위기를 바꾸는 야구도 좋지만, 매일 이길 수 있는 팀은 작은 이닝을 버리는 횟수가 적습니다.
솔직히 기아 전력 자체가 하위권에 머물 팀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우승팀이라는 이름값은 다음 시즌 첫 달에 아무 점수도 보태주지 않습니다. 순위표 아래쪽을 찍고 올라오는 과정에서 어떤 타순을 믿고, 어떤 불펜 조합을 고정하고, 부상 복귀 선수들의 부담을 어떻게 나눌지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서 이 초반 추락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디펜딩 챔피언 기아가 다시 강팀의 리듬을 만들 수 있는지 묻는 꽤 날카로운 시험처럼 느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