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V리그 지난 시즌 기록을 다시 넘겨보다가 김종민 감독 이름에서 한참 멈췄습니다. 우승 두 번, 정규리그 1위, 여자부 사령탑 최다승, 그리고 챔피언결정전을 앞둔 갑작스러운 결별까지. 이 정도면 단순히 ‘좋은 감독이었다’는 말로는 부족합니다. 김종민 감독의 도로공사 10년은 숫자와 장면이 계속 부딪히는 이야기였습니다.
도로공사에서 만든 긴 시간의 무게
김종민 감독은 2016년 한국도로공사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프로 스포츠에서 한 팀을 10년 가까이 이끄는 건 정말 쉽지 않습니다. 특히 여자배구는 외국인 선수, FA, 세터 조합, 리시브 라인 변화에 따라 시즌 분위기가 확 바뀌는 리그입니다. 그런데 김 감독은 이 변동성 안에서 도로공사를 꾸준히 봄배구권 팀으로 묶어냈습니다.
한국배구연맹 기록과 주요 보도를 기준으로 보면, 그의 가장 선명한 업적은 2017~2018시즌 창단 첫 통합우승입니다. 정규리그 1위로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했고,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으며 구단 역사의 기준점을 바꿨습니다. 도로공사가 ‘끈질긴 팀’이라는 이미지를 가진 것도 이때부터 훨씬 강해졌죠.
2022~2023시즌, 0%를 뒤집은 감독
김종민 감독을 말할 때 2022~2023시즌은 빼놓기 어렵습니다. 도로공사는 정규리그 3위로 포스트시즌에 들어갔고, 챔피언결정전에서는 흥국생명에 먼저 2패를 당했습니다. V리그 여자부 챔프전에서 1, 2차전을 내준 팀이 우승한 적은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확률 0%였습니다.
그런데 도로공사는 거기서 3연승을 했습니다. 배구에서 5전 3선승제의 흐름은 생각보다 냉정합니다. 한 번 밀리면 리시브가 흔들리고, 리시브가 흔들리면 세터 선택지가 줄고, 결국 공격 효율까지 내려갑니다. 하지만 당시 도로공사는 박정아, 캣벨, 배유나, 문정원, 임명옥으로 이어지는 축을 끝까지 버텨냈습니다. 김 감독의 팀은 화려한 폭발력보다 랠리를 오래 끌고 가는 힘, 상대가 먼저 급해지게 만드는 운영이 강했습니다.
김종민 감독 배구의 색깔
- 리시브와 디그를 바탕으로 실점 흐름을 길게 끊어내는 운영
- 베테랑의 경기 읽기와 젊은 선수의 역할 분담을 섞는 방식
- 외국인 공격수 한 명에게만 기대기보다 국내 선수 득점 루트를 살리는 구조
- 세트 후반 접전에서 범실을 줄이는 쪽에 무게를 둔 경기 관리
사실 보는 입장에서는 답답할 때도 있습니다. 압도적인 높이나 스피드로 밀어붙이는 팀은 아니었으니까요. 근데 긴 시리즈로 가면 그런 팀이 더 무섭습니다. 한 경기의 하이라이트보다 다섯 경기의 체력을 계산하는 팀. 김종민 감독의 도로공사는 그런 쪽에 가까웠습니다.
2025~2026시즌 1위, 그리고 너무 낯선 이별
2025~2026시즌은 또 다른 의미로 기억될 시즌입니다. 도로공사는 정규리그 36경기에서 24승 12패, 승점 69로 여자부 1위를 확정했습니다. 2위 현대건설과 승점 차는 4점. 2017~2018시즌 이후 8년 만의 정규리그 1위였습니다. 모마, 타나차, 강소휘의 공격 축이 살아났고, 임명옥 이적 이후에는 문정원이 수비 중심을 잡았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김종민 감독의 10년은 다시 정상으로 올라가는 이야기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도로공사는 김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기로 했고, 김영래 수석코치 대행 체제로 챔프전을 치렀습니다. 관련 사안에는 코치 폭행 및 명예훼손 혐의와 법적 절차가 얽혀 있었고, 한국배구연맹 상벌위원회도 앞서 판단을 보류한 바 있습니다.
스포츠 팬 입장에서는 여기서 감정이 복잡해집니다. 성과와 책임은 따로 봐야 합니다. 정규리그 1위를 만든 감독의 경기 운영 능력은 기록으로 남지만, 팀 안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판단과 책임 문제도 가볍게 넘길 수 없습니다. 동시에 챔프전을 불과 며칠 앞두고 사령탑을 바꾼 구단의 선택이 경기력에 어떤 충격을 줬는지도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도로공사는 챔피언결정전에서 GS칼텍스에 시리즈 3패로 밀렸고, GS칼텍스는 포스트시즌 6전 전승으로 우승했습니다.
숫자로 보면 더 선명한 감독의 초상
김종민 감독은 2025년 12월 여자 프로배구 사령탑 최다승 기록을 새로 썼습니다. 당시 보도 기준 통산 158승. 더 눈에 띄는 건 이 승수가 여러 팀을 돌며 쌓은 숫자가 아니라 도로공사 한 팀에서 만든 기록이라는 점입니다. 한 팀의 선수 구성, 프런트 방향, 홈 팬 분위기, 리그 판도 변화를 모두 견디며 만든 승수라서 무게가 다릅니다.
감독 평가는 늘 어렵습니다. 우승컵만 보면 2017~2018시즌과 2022~2023시즌이 먼저 보입니다. 하지만 흐름을 보면 2025~2026시즌 정규리그 1위도 꽤 큽니다. 주축이 바뀌고, 리베로 자리도 변했고, 리그 전체의 공격 화력이 올라간 상황에서 다시 1위까지 간 건 우연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솔직히 김종민 감독의 이름은 앞으로도 꽤 오래 논쟁적으로 불릴 것 같습니다. 도로공사를 정상권 팀으로 만든 감독이라는 기록, 챔프전을 앞두고 팀을 떠난 감독이라는 장면, 그리고 내부 문제로 책임의 질문을 남긴 인물이라는 평가가 함께 따라다닐 테니까요.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도로공사 배구를 기록으로 다시 읽을 때, 김종민 감독의 10년은 건너뛰고 갈 수 없는 챕터입니다. 좋은 장면만 골라 박제하기엔 복잡하고, 논란만으로 지워버리기엔 남긴 숫자가 너무 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