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공연 끝나고 집에 와서 KBS2 일일극 〈욕망의 덫〉을 이어 봤는데, 이 작품은 무대 복수극처럼 인물의 동선이 선명해야 재미가 살아납니다. 욕망의 덫 등장인물은 이름을 많이 외우는 드라마가 아니라, 누가 진실을 숨기고 누가 빼앗긴 시간을 되찾으려는지만 잡으면 훨씬 또렷해집니다.
2026년 8월 10일 첫 방송을 시작한 100부작 예정 작품이고, 평일 저녁 일일극답게 사건 속도가 빠릅니다. 2026년 9월 15일 기준으로는 26회까지 방송됐고 27회는 아시안게임 축구 중계 편성으로 하루 밀린 상태입니다. 그래서 뒤늦게 따라가려면 줄거리보다 인물의 욕망부터 잡는 편이 낫습니다.
욕망의 덫 등장인물, 먼저 두 진영으로 나누는 방법
큰 축은 고은설과 주미란입니다. 고은설은 살인 누명으로 10년을 잃은 사람이고, 주미란은 그 누명과 청마그룹 권력의 중심에 놓인 사람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강해라, 차석진, 서현재, 김정선, 강영훈이 얽히면서 복수극이 가족극으로 번지고, 가족극이 다시 멜로와 권력 싸움으로 바뀝니다.
- 고은설 쪽 인물은 진실 추적, 상처 회복, 복수의 실행을 담당합니다.
- 주미란 쪽 인물은 비밀 은폐, 권력 유지, 관계 조종을 담당합니다.
- 차석진과 서현재는 은설의 감정선과 사건 해결선을 동시에 흔드는 인물입니다.
이 드라마가 흥미로운 건 선악을 크게 그리면서도 각 인물에게 생활의 이유를 붙인다는 점입니다. 특히 일일극 특유의 과한 우연과 강한 감정 표현은 취향이 갈릴 수 있습니다. 근데 그 밀도를 즐길 수 있다면, 장서희 배우가 만드는 주미란의 압박감은 확실히 무대 위 악역처럼 시선을 붙듭니다.
고은설 쪽은 빼앗긴 시간을 보는 축입니다
고은설 전혜원
고은설은 청마그룹 디자인팀 신입사원으로 들어가지만, 사실 그 입사는 단순한 취업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 버려진 뒤 양어머니 박희정의 사랑을 받고 자랐고, 출생의 비밀이 드러나려는 순간 박희정 살인 사건에 휘말립니다. 억울한 누명으로 10년을 보낸 뒤 청마그룹 안으로 직접 들어가는 인물이라, 은설의 모든 움직임에는 복수와 생존이 동시에 걸려 있습니다.
서현재 장세현
서현재는 청마그룹 법무팀장이자 변호사입니다. 과거 국선 변호사 시절 은설의 결백을 믿었지만 결과적으로 지켜내지 못했고, 그 죄책감이 현재의 행동을 밀어붙입니다. 차석진이 은설의 옛 감정을 흔드는 사람이라면, 서현재는 은설이 무너지지 않게 현실적인 길을 열어주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박희정, 왕금자, 고기한, 고은국
박희정은 은설의 양어머니이자 사건의 출발점입니다. 왕금자는 은설의 양할머니로, 뒤늦게 은설의 생모를 찾으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판을 흔들기 시작합니다. 고기한과 고은국은 은설의 양가족인데, 특히 고은국은 가족이라는 이름과 원칙 사이에서 흔들린 인물이라 은설이 받은 상처를 더 생활감 있게 보여줍니다.
주미란 쪽은 숨긴 욕망을 보는 축입니다
주미란 장서희
주미란은 이 작품의 가장 강한 추진력입니다. 유모 출신으로 청마그룹 내부에 들어와 자리를 만들었고, 자신이 쌓아온 거짓을 지키기 위해 사람의 약점과 감정을 아주 정교하게 이용합니다. 최근 방송 흐름에서는 은설에게 접근해 신뢰를 얻는 척하면서 심리전을 벌이고 있는데, 이 장면들이 꽤 서늘합니다. 악역이 소리만 지르는 게 아니라,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골라 건네는 방식이라 더 불편하게 남습니다.
강해라 주새벽
강해라는 청마그룹의 상속녀이자 디자인팀장입니다. 학창 시절부터 은설을 질투했고, 현재도 차석진을 사이에 두고 은설과 계속 부딪힙니다. 해라를 단순한 질투 캐릭터로만 보면 조금 얕게 보입니다. 이 인물은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와 청마의 후계 구도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불안이 한 몸에 붙어 있습니다.
김정선 윤해영, 강영훈 유태웅
김정선은 배우 출신 청마장학재단 이사장이고, 강영훈은 청마그룹 대표이사입니다. 두 사람은 겉으로는 청마의 품격과 질서를 대표하지만, 은설의 출생과 과거 사건이 가까워질수록 균열이 커지는 자리입니다. 특히 은설과 김정선 사이에 뜻밖의 접점이 드러나면서 주미란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흐름은 앞으로의 큰 관전 포인트입니다.
차석진을 읽는 방법, 사랑보다 선택을 보세요
차석진은 설정환 배우가 맡은 청마그룹 전략기획본부장입니다. 은설과는 과거 첫사랑의 결이 있고, 현재는 강해라와 얽힌 현실적 관계가 있습니다. 여기에 어머니 박소연의 치료와 생활 문제가 겹치면서, 석진은 마음만으로 움직이기 어려운 인물이 됩니다.
그래서 석진의 장면은 로맨스처럼 보이지만 사실 선택의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은설에게 흔들리는 마음, 해라 곁에 있어야 하는 이유, 청마그룹에서 가진 위치가 서로 충돌합니다. 무대였다면 조명 하나로 세 갈래 그림자를 만들었을 인물입니다. 이 드라마에서 차석진을 볼 때는 누구를 좋아하느냐보다 어떤 선택을 미루고 있는지 보는 편이 더 재밌습니다.
처음 따라가는 사람을 위한 인물관계 읽기
초반 회차를 전부 보지 못했다면 박희정 사건, 고은설의 10년, 주미란의 청마 입성, 강해라의 질투, 차석진과 서현재의 대비 순서로 보면 됩니다. 나 부장과 이정태는 사건의 실행과 위증 쪽에 가까운 인물이라, 이름이 나올 때마다 은설의 누명을 만든 장치라고 기억하면 덜 헷갈립니다.
- 복수선은 고은설, 주미란, 서현재를 따라가면 잡힙니다.
- 멜로선은 고은설, 차석진, 강해라, 서현재가 만듭니다.
- 출생 비밀과 권력선은 김정선, 강영훈, 주미란, 왕금자가 흔듭니다.
- 생활극의 숨은 온도는 고기한, 고은국, 서미래, 서튼튼 같은 주변 인물이 채웁니다.
욕망의 덫 등장인물은 많지만, 각자 맡은 기능이 꽤 분명합니다. 은설은 빼앗긴 삶을 돌려받으려 하고, 미란은 들키지 않기 위해 더 깊은 덫을 놓습니다. 저는 이 작품을 볼 때마다 좋은 복수극은 피해자가 얼마나 세게 반격하느냐보다, 가해자가 얼마나 오래 자기 거짓을 진짜라고 믿어왔는지에서 힘이 나온다는 생각을 합니다. 〈욕망의 덫〉은 바로 그 지점을 꽤 집요하게 붙잡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