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장을 보다가 땅콩버터 진열대 앞에서 꽤 오래 멈춰 선 적이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수입 브랜드 몇 개를 가격으로 비교하고 끝났을 텐데, 요즘은 국내산 원료, 무첨가, 저당, 비건 같은 말들이 훨씬 크게 보이더군요. 그중 옳곡은 조금 다른 결로 눈에 들어옵니다. 그냥 땅콩버터를 파는 브랜드라기보다, 국내산 땅콩을 소비자가 다시 보게 만드는 브랜드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네고왕 옳곡 편은 단순히 싸게 샀다는 이야기로만 보기엔 아깝습니다. 2026년 6월 11일부터 17일까지 카카오 톡딜에서 진행된 프로모션은 주요 제품을 최대 71% 할인하는 방식이었고, 땅콩버터 스무스와 크런치, 피스타치오 스프레드, 땅콩크런치 그래놀라, 땅콩 약과, 저당 매실청, 헤이즐넛 초코 스프레드, 마롱 스프레드까지 꽤 넓은 라인업을 전면에 세웠습니다. 할인은 미끼였지만, 소비자가 본 건 옳곡이라는 브랜드의 체력이었습니다.
네고왕은 할인 방송이 아니라 브랜드 시험대다
네고왕에 나간 브랜드를 볼 때 저는 늘 두 가지를 봅니다. 첫째, 가격을 얼마나 깎았는가. 둘째, 그 가격을 깎고도 브랜드의 약속이 흐려지지 않았는가. 많은 브랜드가 첫 번째에는 성공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에서 흔들립니다. 너무 큰 할인을 걸면 소비자는 환호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합니다. 원래 가격은 뭐였지?
옳곡이 흥미로운 건 할인폭보다 할인 뒤에 남은 메시지입니다. 옳곡은 국내산 땅콩 가공 브랜드라는 정체성이 분명합니다. 컬리나 오아시스 같은 유통 채널에서도 국내산 땅콩, 100% 땅콩버터, 비건 인증 같은 요소가 반복적으로 보입니다. 이건 네고왕용 문구가 아니라 브랜드가 이전부터 쌓아온 말입니다. 프로모션 때 갑자기 꺼낸 카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7일 만에 6개월치가 팔렸다는 숫자의 의미
로이슈 보도에 따르면 옳곡은 행사 기간 7일 동안 약 6개월치 평균 판매량을 소진했고, 일부 제품은 조기 품절되며 배송 일정도 순차적으로 조정됐습니다. 숫자만 보면 대박입니다. 그런데 브랜드 기획자 입장에서 더 중요한 건 이 숫자가 어디에서 왔느냐입니다.
네고왕의 폭발력은 이미 검증된 포맷입니다. 달라스튜디오가 만든 이 콘텐츠는 소비자 불만과 가격 협상을 예능 문법으로 풀어내며, 브랜드를 짧은 시간에 대중 앞에 세웁니다. 하지만 모든 브랜드가 같은 효과를 얻지는 않습니다. 가격만 강하면 일회성 구매로 끝납니다. 제품 서사가 있으면 장바구니에 들어가고, 사용 경험이 받쳐주면 재구매 후보가 됩니다.
- 할인폭: 최대 71%로 진입 장벽을 낮췄다.
- 제품군: 땅콩버터 하나가 아니라 스프레드, 그래놀라, 디저트로 확장했다.
- 명분: 헬시플레저와 국내산 원료라는 소비 트렌드에 붙었다.
- 리스크: 품절과 배송 지연이 브랜드 경험을 흔들 수 있었다.
옳곡의 강점은 제품보다 약속이 선명하다는 점
브랜드는 로고가 아니라 약속으로 기억됩니다. 옳곡의 약속은 비교적 단순합니다. 국내산 원료를 기반으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곡물과 견과 제품을 만든다는 것. 이 단순함이 꽤 강합니다. 식품 브랜드에서 소비자가 가장 피곤해하는 건 복잡한 설명입니다. 당류가 얼마고, 단백질이 얼마고, 원산지가 어디고, 인증은 무엇이고. 다 중요하지만 한 번에 다 외우긴 어렵습니다.
옳곡은 그 복잡함을 국내산 땅콩이라는 언어로 압축합니다. 특히 땅콩버터 시장은 원래 수입 브랜드와 대용량 제품의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여기에 국내산 100%, 고창 땅콩, 무첨가 같은 메시지를 얹으면 가격 경쟁만 하던 카테고리가 신뢰 경쟁으로 바뀝니다. 이 지점이 옳곡의 좋은 출발점입니다.
하지만 성공한 네고는 늘 숙제를 남긴다
솔직히 네고왕 이후의 진짜 과제는 매출 그래프가 올라간 다음부터 시작됩니다. 폭발적인 주문은 브랜드 인지도를 만들지만, 동시에 운영 능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품절, 지연 배송, 고객 문의 대응, 재입고 안내가 조금만 엉켜도 소비자는 할인 때 받은 호감을 금방 회수합니다.
특히 식품 브랜드는 첫 경험이 예민합니다. 맛이 기대보다 약하거나, 배송이 늦거나, 포장이 불안하면 소비자는 제품보다 상황을 기억합니다. 반대로 배송 지연이 있어도 안내가 빠르고, 제품 경험이 좋고, 다음 구매 이유가 분명하면 할인 고객은 천천히 팬으로 바뀝니다. 네고왕이 문을 열어줬다면, 그다음 방 안을 꾸미는 건 브랜드의 몫입니다.
옳곡이 오래가려면 할인보다 루틴을 팔아야 한다
옳곡이 앞으로 더 강해지려면 땅콩버터를 특가 상품이 아니라 생활 루틴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아침에 빵에 바르는 것, 요거트에 섞는 것, 그래놀라와 같이 먹는 것, 운동 전후 간식으로 쓰는 것. 이런 반복 장면을 브랜드가 계속 제안해야 합니다. 소비자는 좋은 원료를 한 번 사지만, 좋은 습관은 계속 삽니다.
네고왕 옳곡 편은 할인 행사로 시작했지만, 제가 보기엔 국내산 땅콩 브랜드가 대중적인 식탁 언어를 얻은 사건에 가깝습니다. 운도 있었습니다. 헬시플레저 흐름, 스프레드 시장의 확장, 네고왕의 파급력, 카카오 톡딜의 구매 편의성이 맞물렸습니다. 그런데 운이 왔을 때 받을 준비가 된 브랜드만 그 운을 매출이 아니라 자산으로 바꿉니다. 옳곡이 지금부터 보여줘야 할 건 더 큰 할인보다, 다시 사고 싶은 이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