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미술관 전시 설명을 읽다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라는 이름을 다시 만났는데, 솔직히 처음 접하면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그림도 조각도 아닌데 사람들이 몇 시간씩 줄을 서고, 작가는 가만히 앉아 있거나 자기 몸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니까요. 그런데 조금만 배경을 알고 보면, 왜 그녀가 현대미술에서 자주 언급되는지 훨씬 선명해집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어떤 예술가인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1946년 옛 유고슬라비아의 베오그라드에서 태어난 퍼포먼스 아티스트입니다. 퍼포먼스 아트는 작품이 캔버스나 물건으로만 남는 방식이 아니라, 작가의 행동과 시간, 관객과의 관계 자체가 작품이 되는 예술입니다.
그녀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특이한 행동을 해서”가 아닙니다. 몸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관객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지, 예술가와 관객 사이의 긴장감이 어디서 생기는지 계속 밀어붙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현대미술이 어렵게 느껴지는 지점도 바로 여기입니다. 보기 좋은 결과물보다, 그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가 더 중요해지거든요.
대표작을 알면 훨씬 쉽게 보입니다
리듬 0
1974년에 진행된 리듬 0은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아브라모비치는 테이블 위에 장미, 깃털, 빵, 칼, 총 등 72개의 물건을 놓고 관객이 자신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던 관객들이 시간이 지나며 점점 과감해졌고, 작품은 인간의 호기심과 폭력성, 책임감의 경계를 드러냈습니다.
이 작품이 지금도 자주 언급되는 이유는 충격 때문만은 아닙니다. “내가 관객이었다면 어디까지 했을까?”라는 질문을 남기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본다는 일이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선택과 책임의 문제가 되는 순간입니다.
연인들
아브라모비치는 독일 출신 예술가 울라이와 오랫동안 협업했습니다. 두 사람은 예술가이자 연인이었고, 함께 호흡과 신체, 관계를 주제로 한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1988년 작품 연인들에서는 두 사람이 중국 만리장성의 양끝에서 출발해 가운데에서 만났고, 그 만남을 끝으로 관계를 끝냈습니다.
영화 같지만, 이 작품은 꽤 현실적입니다. 사랑의 시작보다 끝을 예술로 다뤘기 때문입니다. 낭만적으로 포장하기보다, 긴 시간과 거리, 체력, 감정의 소모를 그대로 보여준 셈입니다.
예술가가 여기 있다
2010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예술가가 여기 있다는 대중에게 그녀를 널리 알린 작업입니다. 아브라모비치는 전시장에 앉아 관객 한 명과 말없이 마주 봤습니다. 짧게는 몇 분, 길게는 오래 앉은 사람도 있었고, 많은 관객이 눈물을 보였습니다.
겉으로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침묵이 핵심입니다. 스마트폰도 대화도 없이 누군가와 정면으로 마주하는 경험이 생각보다 낯설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거대한 장치 없이도 사람의 시선과 시간이 얼마나 강한 감정을 만들 수 있는지 보여줬습니다.
왜 몸을 그렇게까지 쓰는 걸까
아브라모비치의 작품을 보면 “왜 굳이 저렇게까지 하지?”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작품의 재료로 삼았습니다. 숨을 참거나, 오래 앉아 있거나, 고통과 피로를 견디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여기서 몸은 단순한 도구가 아닙니다. 우리가 두려움, 지루함, 통증, 긴장감을 실제로 느끼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작업은 관객에게 설명보다 감각으로 먼저 다가옵니다. 누군가 몇 시간을 버티는 장면을 보면, 보는 사람도 자신의 한계를 상상하게 됩니다.
- 작품의 재료: 캔버스보다 작가의 몸과 시간이 중심이 됩니다.
- 관객의 역할: 조용히 보는 사람이 아니라 작품의 분위기를 바꾸는 존재가 됩니다.
- 주요 감정: 불편함, 긴장감, 몰입, 연민이 동시에 생깁니다.
처음 보는 사람은 이렇게 접근하면 편합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작품을 처음 접할 때는 “이게 예술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어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그 반응이 출발점에 가깝습니다. 현대미술은 예쁜지 아닌지보다, 왜 내가 이런 반응을 하는지 들여다볼 때 재미가 생깁니다.
먼저 작품이 만들어진 상황을 확인하면 좋습니다. 몇 년도에, 어디서, 작가가 어떤 규칙을 세웠는지 보는 겁니다. 예를 들어 리듬 0은 6시간 동안 진행됐고, 관객에게 72개의 사물이 주어졌다는 조건이 중요합니다. 조건을 알면 작품이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일종의 사회 실험처럼 보입니다.
그다음에는 내 반응을 관찰하면 됩니다. 불편한지, 지루한지, 감동적인지, 혹은 과하다고 느껴지는지 말입니다. 아브라모비치의 작품은 모두가 같은 감상을 해야 하는 종류가 아닙니다. 누군가에겐 강렬한 예술이고, 누군가에겐 지나친 자기노출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 차이까지 작품을 둘러싼 이야기의 일부가 됩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남긴 흥미로운 지점
그녀의 작업을 좋아하든 아니든,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예술이 꼭 물건으로 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흔들었습니다. 작품이 끝나면 남는 것은 사진, 영상, 기록뿐일 수 있지만, 그 순간을 함께한 사람에게는 꽤 오래 남는 경험이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녀의 작품이 “보는 예술”보다 “버티는 예술”에 가깝다고 느껴집니다. 작가도 버티고, 관객도 버팁니다. 침묵을 견디고, 불편함을 견디고, 누군가를 판단하고 싶은 마음도 견딥니다. 그래서 처음엔 어렵게 보이지만, 알고 나면 의외로 사람 사이의 아주 기본적인 감정과 맞닿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