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수업에 오신 분이 화이트리에 식빵을 사 오셨는데, 그냥 뜯어 먹을 때는 분명 부드러웠는데 다음 날 아침엔 살짝 퍽퍽해졌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실 식빵은 맛있는 제품일수록 보관과 데우는 방식에서 차이가 크게 납니다. 버터 향, 우유 풍미, 결의 촉촉함이 좋은 식빵도 물기와 온도를 잘못 건드리면 금방 평범해져요.
저는 주방에서 빵을 직접 굽는 일도 했고, 한식당에서는 남은 식빵으로 아이들 간식이나 브런치 메뉴를 꽤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때 배운 건 단순합니다. 좋은 식빵은 많이 만지지 말고, 수분은 조금만 보태고, 불은 세게 시작하지 않는 쪽이 낫습니다.
화이트리에 식빵은 자르기 전부터 다릅니다
화이트리에 식빵처럼 결이 부드럽고 폭신한 식빵은 칼질부터 조심해야 합니다. 빵칼이 없으면 일반 칼로 꾹 누르게 되는데, 이러면 속결이 눌려서 식감이 무너집니다. 가능하면 톱니가 있는 칼을 쓰고, 위에서 힘으로 누르지 말고 앞뒤로 길게 움직여 주세요.
두께는 먹는 방법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냥 생으로 먹거나 잼을 바를 때는 2cm 정도가 좋고, 토스트로 구울 때는 2.5cm 정도가 편합니다. 프렌치토스트로 만들 거라면 3cm 가까이 두툼하게 잘라야 속까지 촉촉하게 남습니다.
- 생식용: 약 2cm
- 토스트용: 약 2.5cm
- 프렌치토스트용: 약 3cm
냉장고에서 꺼낸 차가운 빵은 바로 자르면 부스러기가 더 많이 납니다. 실온에 10분만 두었다가 자르면 칼이 훨씬 부드럽게 들어갑니다. 작은 차이 같지만 빵 결이 살아 있는지 죽는지가 여기서 갈립니다.
촉촉하게 데우는 방법은 물 한 방울 차이입니다
식빵을 데울 때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센 불에 오래 굽는 겁니다. 겉은 바삭해 보여도 속 수분이 빠져서 먹는 순간 목이 막힙니다. 특히 화이트리에 식빵처럼 부드러운 타입은 겉을 태우듯이 굽는 것보다 짧게 데워 향을 살리는 편이 더 맛있습니다.
팬에 데울 때
팬은 약불로 1분 정도 예열합니다. 버터를 넣는다면 5g이면 충분합니다. 빵 한 장 기준으로 물을 손끝에 살짝 묻혀 빵 표면에 아주 가볍게 튕겨 주세요. 물을 뿌린다는 느낌이 아니라 수분을 깨우는 정도입니다. 그다음 팬에 올려 한 면당 40초에서 1분 정도만 데웁니다.
버터를 많이 넣으면 처음엔 맛있지만 빵의 우유 향이 묻힐 수 있습니다. 저는 두꺼운 한 장에는 버터 5g, 얇은 한 장에는 3g 정도만 씁니다. 단맛을 올리고 싶으면 설탕보다 꿀을 1작은술 바르는 쪽이 식감이 덜 거칠어집니다.
토스터나 오븐을 쓸 때
토스터는 중간보다 약한 단계로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한 번에 진하게 굽기보다 짧게 굽고 색을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는 160도에서 3분 정도면 충분합니다. 냉동한 빵이라면 160도에서 5분 정도 잡되, 겉이 빨리 마르면 빵 위에 종이호일을 살짝 덮습니다.
제가 예전에 실수했던 지점도 여기였습니다. 냉동 식빵을 180도에 바로 넣었더니 겉은 딱딱하고 속은 차가웠습니다. 그 뒤로는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데우고, 마지막 30초만 열을 올립니다. 빵은 고기처럼 센 불에 겉면을 확 잡는 식재료가 아니더라고요.
곁들이는 재료는 많이 올릴수록 손해일 때가 있습니다
화이트리에 식빵은 빵 자체의 단맛과 부드러움이 있는 편이라 토핑을 욕심내면 오히려 밸런스가 흐려집니다. 집에 있는 재료로 충분히 맛을 낼 수 있고, 꼭 비싼 잼이나 크림을 따로 준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 버터 5g + 꿀 1작은술: 가장 무난하고 빵 향이 잘 살아납니다.
- 크림치즈 1큰술 + 딸기잼 1작은술: 단맛이 과하지 않아 아침에 좋습니다.
- 달걀 1개 + 우유 70ml: 두꺼운 프렌치토스트 한 장에 맞는 양입니다.
- 마요네즈 1작은술 + 슬라이스 치즈 1장: 짭짤한 간식으로 좋습니다.
- 남은 불고기 60g + 양배추 한 줌: 한 끼 샌드위치로 든든합니다.
잼이 없으면 꿀이나 올리고당을 아주 조금 써도 됩니다. 우유가 없으면 달걀물에 물을 1큰술 넣어도 프렌치토스트는 됩니다. 다만 물만 많이 넣으면 고소한 맛이 줄어드니, 달걀 1개에 물은 15ml 정도까지만 넣는 게 낫습니다.
프렌치토스트를 만들 때는 빵을 달걀물에 오래 담가두지 마세요. 부드러운 식빵은 20초씩 앞뒤로 적시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너무 오래 담그면 팬에 옮기는 순간 찢어지고, 안쪽이 익지 않아 질척한 식감이 납니다.
남은 식빵 보관은 냉장보다 냉동이 낫습니다
식빵은 냉장 보관하면 오래 갈 것 같지만 실제로는 식감이 빨리 굳습니다. 하루 안에 먹을 양만 실온에 두고, 나머지는 한 장씩 랩이나 지퍼백에 나눠 냉동하는 게 좋습니다. 특히 부드러운 식빵은 서로 붙은 채로 얼리면 꺼낼 때 찢어지기 쉽습니다.
냉동할 때는 자른 단면이 마르지 않게 밀착해서 감싸야 합니다. 저는 한 장씩 종이호일을 끼우고 지퍼백에 넣습니다. 이렇게 하면 아침에 한 장만 꺼내기 쉽고, 다시 얼렸다 녹이는 일이 줄어듭니다.
- 당일 먹을 양: 실온 보관
- 다음 날 이후 먹을 양: 한 장씩 냉동
- 냉동 기간: 2주 안에 먹는 편이 식감이 좋습니다.
- 해동: 실온 10분 뒤 약한 열로 데우기
냉동 식빵을 전자레인지에만 돌리면 가장자리가 질겨질 수 있습니다. 급할 때는 10초씩 끊어서 돌리고, 마지막에 팬이나 토스터로 30초 정도 겉면을 살려 주세요. 전자레인지는 속을 풀어주는 역할, 팬은 향과 식감을 되돌리는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실패했을 때는 이렇게 살리면 됩니다
이미 마른 식빵은 버리지 않아도 됩니다. 완전히 곰팡이가 생겼거나 냄새가 이상한 건 당연히 먹으면 안 되지만, 단순히 수분이 빠진 정도라면 다른 요리로 살릴 수 있습니다.
가장 쉬운 건 러스크입니다. 식빵을 막대 모양으로 자르고 버터 10g, 설탕 1큰술을 섞어 약불 팬에서 천천히 굴립니다. 이때 불이 세면 설탕만 먼저 타니 6분 정도 천천히 익히는 게 좋습니다. 마지막에 불을 끄고 2분 식히면 바삭함이 올라옵니다.
속이 퍽퍽한 빵은 달걀찜처럼 부드러운 재료와도 잘 맞습니다. 식빵을 작게 찢어 달걀 2개, 우유 120ml, 소금 한 꼬집과 섞고 약불에서 천천히 익히면 빵푸딩처럼 됩니다. 단맛을 원하면 설탕 1큰술을 넣고, 식사용이면 치즈 한 장을 올리면 됩니다.
화이트리에 식빵을 맛있게 먹으려면 특별한 기술보다 온도와 수분을 조심하는 게 먼저입니다. 좋은 식빵은 이미 가진 맛이 있으니, 집에서는 그 맛을 덮지 않고 살짝 깨워 주는 정도가 제일 좋았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런 부드러운 식빵을 만나면 첫날은 그냥 먹고, 둘째 날은 약불 토스트, 남은 건 냉동해 두었다가 프렌치토스트로 씁니다. 그 흐름이 가장 덜 아깝고, 끝까지 맛있게 먹는 방법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