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후배 하나가 법원 입찰장 앞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감정가 2억 8천만 원짜리 빌라가 두 번 유찰돼서 최저가가 1억 7천만 원대까지 내려왔는데, 이거 그냥 넣어도 되냐는 겁니다. 말투는 담담했지만 이미 마음은 낙찰받은 사람 같더군요. 제가 제일 먼저 물어본 건 시세도 아니고 대출도 아니었습니다. “거기 누가 살고 있는데?” 이 한마디였습니다.
경공매는 싸게 사는 기술처럼 보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싸게 보이는 이유를 찾아내는 일에 가깝습니다. 경매든 공매든 숫자만 보고 들어가면 처음엔 운 좋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 삐끗하면 보증금 10%가 그냥 수업료가 됩니다. 그 후배도 딱 그 문턱에 서 있었습니다.
경공매가 싸 보이는 순간부터 의심해야 합니다
초보 때 가장 많이 하는 착각이 있습니다. 감정가 3억짜리가 2억 1천만 원까지 떨어졌으니 9천만 원 싸게 사는 거라고 계산하는 겁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감정가가 늦게 따라오는 경우가 많고, 빌라나 상가처럼 거래가 뜸한 물건은 감정가 자체가 시장 가격보다 높게 잡힌 경우도 꽤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본 서울 외곽 다세대 물건이 그랬습니다. 감정가는 2억 6천만 원, 최저가는 1억 8천만 원대였습니다. 숫자만 보면 좋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인근 실거래를 6개월 단위로 잘라보니 같은 면적, 같은 층급 물건이 1억 9천만 원에도 매수자를 못 찾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전세가는 1억 4천만 원 밑으로 내려가고 있었고요. 낙찰받고 취득세, 법무비, 이자, 명도비까지 붙이면 사실상 시세 매수와 다를 게 없었습니다.
경공매에서 할인율은 미끼가 될 때가 많습니다. 진짜 봐야 할 건 감정가 대비 몇 퍼센트가 아니라, 지금 팔면 얼마에 나갈 수 있느냐입니다. 저는 입찰가를 정할 때 보통 세 가지 숫자를 따로 씁니다.
- 급매로 팔아도 빠질 가능성이 낮은 가격
- 대출이 막혀도 버틸 수 있는 자기자본 한도
- 명도와 수리, 세금까지 넣은 총매입가
이 셋 중 하나라도 흐릿하면 저는 입찰장을 나옵니다. 좋은 물건은 다음에도 나오지만, 날아간 보증금은 잘 안 돌아옵니다.
경매와 공매는 닮았지만 다르게 물립니다
경공매라고 묶어서 부르지만 경매와 공매는 진행 방식이 다릅니다. 경매는 법원이 진행하고, 법원경매정보에서 매각물건명세서, 현황조사서, 감정평가서 같은 기본 서류를 확인합니다. 공매는 온비드를 통해 온라인 입찰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고, 한국자산관리공사나 공공기관, 금융기관, 보증기관 물건이 섞여 나옵니다.
둘 다 입찰보증금을 넣고 최고가 매수인이 된다는 점은 비슷합니다. 하지만 공매는 물건마다 조건이 훨씬 제각각입니다. 어떤 물건은 명도 책임이 매수자 부담으로 명확히 적혀 있고, 어떤 물건은 체납관리비나 제세공과금 부담 기준이 공고문에 따로 붙습니다. 법원 경매처럼 익숙한 흐름으로만 보면 놓치는 문구가 생깁니다.
제가 공매에서 가장 먼저 보는 문장
공매 공고문을 열면 저는 사진보다 조건을 먼저 봅니다. “현황대로 매각”, “명도 책임 매수자 부담”, “공부와 현황 상이 가능”, “제세공과금 별도 확인” 같은 문구가 있으면 표시해 둡니다. 이 문장들은 겁주려고 있는 말이 아닙니다.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기관이 어디까지 책임지는지 선을 그어놓은 말입니다.
한 번은 지인이 공매로 상가를 낙찰받으려 했습니다. 감정가 대비 65% 수준이라 좋아 보였죠. 그런데 현장을 가보니 간판은 멀쩡한데 안쪽은 장기간 비어 있었고, 관리사무소에서 미납관리비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공고문에는 인도와 점유 관계 확인은 매수자 책임이라는 취지의 문구가 있었습니다. 계산기를 다시 두드리니 싸게 사는 게 아니라 애매한 리스크를 떠안는 구조였습니다.
권리분석은 말소기준권리만 외우면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초보 강의에서 말소기준권리를 많이 이야기합니다. 중요합니다. 근저당, 압류, 가압류, 담보가등기 같은 권리 중 어디를 기준으로 뒤 권리가 사라지고 앞 권리가 남는지 봐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 사고는 그 다음 줄에서 납니다. 임차인의 대항력, 확정일자, 배당요구 여부, 전입일자와 점유 여부가 맞물릴 때 돈이 움직입니다.
아까 전화 온 후배 물건도 그랬습니다. 등기부만 보면 선순위 근저당이 있고 뒤 권리는 대부분 말소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매각물건명세서에 임차인 전입일이 근저당보다 빠르게 적혀 있었습니다. 보증금은 8천만 원. 배당요구 여부도 애매했고, 현황조사서에는 실제 점유자가 가족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건 낙찰가를 낮게 쓰면 해결되는 물건이 아니라, 초보가 아예 피해야 하는 물건에 가까웠습니다.
경공매에서 권리분석은 빈칸 채우기가 아닙니다. 서류끼리 서로 맞는지 대조하는 작업입니다. 등기사항증명서, 전입세대 열람, 매각물건명세서, 현황조사서, 감정평가서, 공매 공고문을 따로 보지 말고 서로 충돌하는 지점을 찾아야 합니다. 숫자보다 문장 하나가 더 비쌀 때가 있습니다.
수익률 계산은 낙찰가가 아니라 빠져나갈 돈으로 해야 합니다
낙찰가 2억 원에 받아서 2억 3천만 원에 팔면 3천만 원 남는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그렇게 깔끔하게 안 떨어집니다. 취득세, 법무사 비용, 인지대, 등기비, 중개수수료, 대출이자, 관리비, 수리비, 명도비, 보유 중 공실 비용까지 다 넣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2억 원에 낙찰받은 빌라가 있다고 해보죠. 취득 관련 비용을 대략 500만 원, 이자와 보유비를 300만 원, 도배장판과 누수 보수를 700만 원, 명도 합의금과 이사비를 400만 원으로 잡으면 벌써 1천900만 원입니다. 여기에 매도할 때 중개수수료와 양도 관련 세금까지 보면, 2억 3천만 원 매도는 생각보다 남는 돈이 얇습니다.
저는 입찰 전 계산서에 일부러 나쁜 숫자를 넣습니다. 매도 기간은 3개월이 아니라 6개월, 수리비는 견적보다 20% 높게, 명도는 대화가 안 풀리는 경우까지 잡습니다. 그래도 남으면 들어갑니다. 이 방식이 화끈하진 않아도 오래 버티게 해줍니다.
초보가 처음부터 피하는 게 나은 물건들
경공매를 처음 시작한다면 어려운 물건으로 실력을 증명하려 들 필요가 없습니다. 특수물건을 잘 처리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경험과 자금 여유, 협상 체력, 법률 조력까지 갖춘 뒤 이야기입니다. 초보가 첫 낙찰에서 해야 할 일은 큰 수익이 아니라 절차를 끝까지 완주하는 겁니다.
- 선순위 임차인 보증금 인수 가능성이 있는 물건
- 유치권 신고가 있고 현장 점유가 강한 물건
- 지분경매 중 공유자 관계가 복잡한 물건
- 분묘, 맹지, 불법 증축처럼 현장 확인이 어려운 토지
- 공매 공고문에 인도와 하자 책임이 넓게 매수자 부담으로 적힌 물건
이런 물건은 싸게 낙찰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남들이 몰라서 안 들어가는 게 아니라, 계산해보니 감당할 이유가 없어서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공매 시장에서 고수처럼 보이는 행동은 과감한 입찰이 아니라 안 들어갈 물건을 빨리 지우는 겁니다.
제가 후배에게 그날 입찰하지 말라고 한 이유도 단순했습니다. 수익이 작아서가 아니라 손실의 모양이 잘 안 보였기 때문입니다. 부동산 경공매는 겁먹을 필요는 없지만, 겁 없는 척할 필요는 더 없습니다. 현장에 오래 남는 사람들은 대단한 배짱보다 불편한 숫자를 끝까지 확인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저는 아직도 입찰표 쓰기 전날 밤에는 계산서를 다시 엽니다. 십 년을 해도 그 긴장감은 줄지 않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