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꽃마을 기억 전시와 토크 콘서트

뫼꽃마을 기억 전시와 토크 콘서트

부평문화소비자협동조합, 뫼꽃마을 기억 아카이브 전시회 개최

부평문화소비자협동조합은 2026년 9월 3일부터 5일까지 부평구 산곡동 미추홀신협 5층 대강당에서 ‘안녕, 뫼꽃마을’ 기억 아카이브 전시회를 진행했다. 전시 마지막 날인 5일 오후 5시에는 주민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 콘서트도 함께 열렸다.

재개발로 사라진 산곡동 영단주택과 뫼꽃마을의 삶과 기억

전시는 3일과 4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5일에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운영됐다. 5층 대강당 입구에는 백마극장의 옛 포스터를 연상시키는 전시가 마련돼 당시 극장가의 분위기를 재현했다.

광고

뫼꽃마을의 역사와 네 가지 주제

전시는 ‘뫼꽃마을의 유래’, ‘조병창과 영단주택’, ‘애스컴 시티’, ‘그 시절 뫼꽃마을’ 네 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부평문화원과 부평역사박물관의 자료와 조합원 및 주민들이 제공한 사진을 통해 뫼꽃마을의 역사와 주민들의 이야기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었다.

뫼꽃마을의 유래

조선 말기 이 지역은 마장면과 석곶면의 경계에 위치했다. 마을은 산 끝에 자리해 ‘뫼끝말’이라 불렸으며, 산골짜기에 들어앉은 마을이라는 뜻으로 ‘산곡리’라 불렸다. ‘뫼끝말’은 ‘뫼꽃말’로도 불렸는데, 마을 뒷산 원적산에 꽃이 만개해 아름다운 동네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산화촌 또는 ‘뫼꽃마을’이라 불렸다.

1916년 측도에서는 산곡리 일대를 산화촌으로 표기했으며, 1930년대와 1950년대의 산곡리와 백마장 일대 풍경을 담은 사진도 전시됐다. 옛 마을의 모습과 당시 사람들의 생활상을 사진으로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광고

조병창과 영단주택

1930년대 후반 일제는 부평을 병참기지로 전환했다. 1939년부터 인천육군조병창 건설이 시작돼 1941년 5월 개창식을 가졌다. 조선인 노동자 수천 명이 강제 동원됐고, 산곡리는 백마정으로 행정 지명이 바뀌었다.

조병창 노동자들을 위한 대규모 주거지가 필요해 원적산 자락 산곡동 87번지 일대에 연립식 단층 주택 수백 호가 들어섰다. 영단주택은 경인기업주식회사가 1941년부터 1943년까지 한옥 형식으로 지은 ‘구사택’과 1944년 조선주택영단이 일본식으로 지은 ‘신사택’으로 나뉜다.

전시장에는 조병창 옛 전경 사진과 부평역사박물관 제공 자료가 전시돼 당시 역사의 현장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영단주택은 공동 우물과 소방도로를 갖춘 계획된 마을이었다. 이진우 작가의 작품도 전시돼 산곡동 골목의 따뜻한 분위기를 전했다.

애스컴 시티

1945년 9월 미 제24군단 상륙부대가 인천항에 상륙해 일본군이 남긴 인천육군조병창 부지를 접수하고 병참본부를 세웠다. 9월 16일 ‘애스컴 시티’라 명명됐으며, 캠프마켓 등 여러 기지가 조성됐다. 보급창, 신병보충대, 야전병원 등 수십 개 부대가 주둔했다.

기지 내에는 식당, 클럽, PX, 병원, 도서관, 극장, 체육관, 교회 등이 갖춰졌다.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로 미군 주둔이 공고해지며 애스컴 시티는 하나의 도시가 됐다. 광복 후 조병창 노동자 일부는 고향으로 돌아갔고, 빈자리는 애스컴 근무 한국인 종원들이 채웠다.

산곡동 영단주택은 1945년부터 1973년 애스컴 해체까지 기지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집이었다. 전국에서 일자리와 물자를 찾아 부평으로 모여든 이들이 부평 사람이 됐다. 영어 간판과 형형색색 불빛, 달러가 가득한 이곳은 부평 사람들에게 치열한 생존 공간이었다.

전쟁 후 경제난은 특히 여성들에게 가혹했다. 가족 부양을 위해 기지촌으로 모여든 여성들은 외화벌이 일꾼과 멸시의 대상이라는 이중 시선에 놓였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아동들은 편견 속에서 또 다른 삶을 견뎌야 했다.

그 시절 뫼꽃마을

1973년 애스컴 시티 해체 후 마을은 또 한 번 주인을 바꿨다. 군수공장 사택으로 시작된 마을은 공장 노동자의 동네가 됐다. 1970년대 부평에는 수출산업공단이 들어서고 한국베어링, 대우자동차 등 공장들이 문을 열었다.

아침이면 작업복 차림 사람들이 골목을 오가고, 저녁이면 돌아왔다. 조병창 노동자 집으로 지어진 마을은 부평 산업의 시간을 함께했다. 부평역사박물관과 부평문화원의 사진 자료에는 이곳을 지나온 사람들의 얼굴과 정겨운 나날이 담겼다.

골목은 마당이 되어 화분과 채소를 기르고, 전봇대 사이에 줄을 매어 이불을 널었으며, 여름에는 수박을 나눠 먹고 겨울에는 김장을 함께 담갔다.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어른들의 사랑방이었던 골목 문화가 그리웠다. 재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골목과 평상은 사라졌지만, 소중한 추억은 다음 세대에 이어져야 한다.

전시와 체험, 토크 콘서트

스크린에서는 전시된 사진들을 다시 볼 수 있었고, 마을에 얽힌 추억과 소망을 엽서에 적는 체험 코너도 마련됐다. 완성한 엽서는 빨랫줄을 연상시키는 공간에 걸어 추억을 글로 남기고 기념사진을 찍는 특별한 시간이 됐다.

엽서에는 재개발로 사라지는 산곡동에 대한 아쉬움과 추억이 담긴 글들이 눈에 띄었다. 빠르게 변하는 도시 속에서도 마을의 역사와 흔적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일깨웠다.

토크 콘서트와 공연

5일 오후 5시 토크 콘서트에는 많은 주민과 관계자가 참석해 뫼꽃마을 옛 이야기를 나눴다. 행사는 부평구문화재단의 ‘찾아가는 문화마실’ 서비스로 매칭된 부평아트센터 통기타 동아리의 오프닝 공연으로 시작됐다.

이 동아리는 2011년 결성된 7080시대 노래를 연주하는 통기타 동호회로, 이날 ‘꿈의 대화’, ‘영일만 친구’, ‘부르지마’, ‘Stand By Your Man’, ‘그 집 앞’ 등 5곡을 선보였다. 하모니카, 에어로폰, 카바사 등 다양한 악기가 어우러져 풍성한 무대를 만들었다.

토크 콘서트 첫 순서로 박명식 부평문화원 이사가 ‘사진으로 부평 읽어주는 남자’로 뫼꽃마을의 역사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뫼꽃마을이 마장면과 석곶면 경계에 위치했으며, 원적산 끝자락에 자리해 ‘뫼끝말’, ‘산곡리’로 불렸다고 설명했다.

산곡동은 부평에서 살기 좋은 동네로 꼽혔으며, 물이 자주 차는 부평에서 침수 피해가 적은 지역이었다. 1939년 인천육군조병창 건설과 미군기지 애스컴 시티 조성으로 마을은 크게 변했다. 2000년대 재개발로 영단주택 철거가 본격화됐다.

뫼꽃마을은 산골마을에서 군수공장과 미군기지, 산업단지를 거쳐 오늘날 도시로 변화했으며, 그 속 주민들의 삶과 기억은 지역의 소중한 역사로 남아 있다.

주제 영상 ‘우물이 있는 골목 이야기’는 AI 기술을 접목해 3대에 걸친 이웃의 삶을 영상으로 제작했다. 약 15분 분량으로 마을 주민들의 추억과 삶의 흔적을 담아내며, 다음 세대에 마을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갈지 생각하게 하는 의미 있는 영상이었다.

마지막 축하공연은 가수 박현우가 소속된 밴드가 맡았다. 이 밴드는 어쿠스틱 버스킹과 소공연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 ‘빗속에서’,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 ‘영영영’, ‘나는 반딧불’, ‘낭만에 대하여’ 등 6곡을 바이올린과 어쿠스틱 사운드로 선보여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재개발로 풍경은 변했지만, 뫼꽃마을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마을로 남아 있다. 앞으로도 부평문화소비자협동조합이 지역 역사와 문화를 발굴하고 기록하는 활동을 이어가길 기대한다.

뫼꽃마을 기억 전시와 토크 콘서트
뫼꽃마을 기억 전시와 토크 콘서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