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에서는 말이 빠를수록 더 조심해야 합니다
얼마 전 지인 부탁으로 신축 오피스텔 분양 상담 현장에 같이 간 적이 있습니다. 입구부터 현수막이 화려했습니다. 선착순 특별가, 확정수익, 잔금대출 가능, 전매 가능. 이런 말이 한꺼번에 붙어 있으면 저는 반대로 속도가 느려집니다. 돈 되는 물건이면 왜 이렇게 서둘러 팔까, 그 생각부터 듭니다.
분양사기는 꼭 허름한 사무실에서만 벌어지지 않습니다. 모델하우스도 멀쩡하고, 직원들도 정장 입고, 설명 자료도 두껍습니다. 초보자는 여기서 안심합니다. 그런데 경매판에서 오래 구르다 보면 겉모습보다 먼저 보는 게 따로 있습니다. 땅 주인이 누구인지, 건축 인허가는 어디까지 갔는지, 분양대금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이 세 가지입니다.
그날도 직원은 수익률 이야기를 먼저 했습니다. 보증금 얼마, 월세 얼마, 공실 걱정 없음. 숫자만 들으면 그럴듯했습니다. 그런데 토지 등기와 시행사 구조를 보니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땅은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고, 분양대금 계좌는 신탁사 관리 계좌가 아니라 시행사 명의 계좌였습니다. 이 정도면 저는 계약금 100만 원도 쉽게 넣지 않습니다.
분양사기에서 자주 나오는 말들
제가 본 사기성 분양 현장은 말투가 비슷합니다. 첫째, 오늘 안에 결정해야 한다고 압박합니다. 둘째, 대출은 무조건 나온다고 말합니다. 셋째, 주변 시세보다 싸다고 반복합니다. 넷째, 계약서의 불리한 조항은 별일 아니라고 넘깁니다. 사실 진짜 좋은 물건은 설명이 단순합니다. 권리관계도 단순하고, 돈 흐름도 단순합니다.
- 계약금을 시행사나 분양대행사 일반 계좌로 넣으라고 한다
- 토지 소유자와 시행사가 다르지만 설명이 흐릿하다
- 건축허가, 착공, 사용승인 단계가 말로만 설명된다
- 확정수익을 말하면서 보증 주체가 약하다
- 주변 실거래가가 아니라 광고용 예상가만 보여준다
특히 확정수익이라는 말은 조심해야 합니다. 월 100만 원을 2년 보장한다고 해도, 그 돈을 누가 어떤 재원으로 주는지 봐야 합니다. 시행사가 자본금 1억 원짜리 작은 법인인데 수십 세대에 수익을 보장한다면 계산이 안 맞습니다. 이런 건 수익 보장이 아니라 미끼일 때가 많습니다.
계약서보다 먼저 확인한 서류들
초보자는 계약서를 먼저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계약서보다 바깥 서류를 먼저 봅니다. 등기부등본, 건축물대장, 토지이용계획, 건축허가 관련 서류, 신탁계약 또는 자금관리 구조입니다. 대법원 인터넷등기소, 정부 민원 서비스, 지자체 건축 부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들이 꽤 많습니다.
등기부에서는 소유자, 근저당, 가압류, 신탁 여부를 봅니다. 토지에 이미 빚이 잔뜩 잡혀 있는데 분양대금으로 사업을 굴리는 구조라면 위험합니다. 물론 부동산 개발은 대출 없이 진행되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담보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빚을 누가 통제하고 분양대금이 어디로 흘러가느냐입니다.
건축허가도 말이 아니라 문서로 봐야 합니다. 상담사는 곧 착공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인허가가 지연 중인 현장도 있습니다. 착공 전 분양은 구조가 더 예민합니다. 공사가 멈추면 수분양자는 계약금과 중도금을 넣고도 입주를 못 합니다. 경매로 넘어가면 내 돈이 어디 순위에 있는지부터 따져야 하는데, 이때 이미 늦은 경우가 많습니다.
싼 가격이 아니라 빠져나갈 길을 봐야 합니다
분양사기 피해자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들 처음에는 싸게 샀다고 생각합니다. 주변보다 10퍼센트 싸다, 프리미엄이 붙을 거다, 월세가 바로 나온다. 그런데 부동산은 싸게 사는 것보다 잘못 샀을 때 빠져나갈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3억짜리 생활형숙박시설을 2억 7천만 원에 분양받았다고 합시다. 겉으로는 3천만 원 싸게 산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대출이 막히고, 용도 문제가 생기고, 임대수요가 광고와 다르면 그 3천만 원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잔금 못 치르면 계약금과 중도금 일부가 묶이고, 소송까지 가면 시간도 같이 날아갑니다.
경매에서도 비슷합니다. 감정가보다 싸게 낙찰받았다고 좋아했다가 선순위 임차인, 유치권, 법정지상권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분양도 같습니다. 분양가 할인보다 권리와 사업 구조가 먼저입니다. 싸다는 말에 눈이 가는 순간, 제일 중요한 질문을 놓칩니다. 이 사업이 끝까지 갈 수 있나, 내 돈은 법적으로 어디에 서 있나.
초보라면 이런 물건은 그냥 지나가는 게 낫습니다
저는 초보에게 고수익 물건을 권하지 않습니다. 특히 분양사기 냄새가 나는 물건은 공부 삼아 계약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현장 공부는 서류를 떼고, 주변 중개업소에 묻고, 같은 시행사의 과거 사업을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돈을 넣어야만 배우는 건 아닙니다.
- 계약 당일 입금을 강하게 요구하는 물건
- 분양대행사 말과 공적 서류 내용이 다른 물건
- 수익률 설명은 길고 위험 설명은 짧은 물건
- 신탁, 보증, 자금관리 구조를 명확히 말하지 못하는 물건
- 주변 월세 시세보다 임대수익을 과하게 잡은 물건
현장에서 제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기회는 다시 오지만, 잘못 묶인 돈은 오래 안 풀립니다. 분양사기는 욕심 많은 사람만 당하는 게 아닙니다. 바쁜 사람, 처음 해보는 사람, 서류 보는 순서를 모르는 사람이 당합니다. 그래서 저는 수익률 계산기보다 등기부를 먼저 열고, 광고 문구보다 돈 들어가는 계좌를 먼저 봅니다. 부동산은 용감한 사람이 버는 시장처럼 보이지만, 오래 살아남는 쪽은 대체로 겁이 많은 사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