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수원 경기 하이라이트를 다시 돌려봤는데, 이상하게 점수보다 먼저 귀에 남은 건 관중석의 소리였다. 1만8700석이 꽉 찬 수원KT위즈파크, 그 안에서 황재균이 헬멧을 고쳐 쓰고 타석으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은 기록지 한 줄로만 담기엔 꽤 아까웠다.
1만8700명 앞에서 열린 진짜 고별 타석
2026년 9월 13일, KT와 롯데의 수원 경기는 황재균의 은퇴식이 열린 날이었다. 이날 수원KT위즈파크는 1만8700석 매진. KT의 시즌 22번째 매진 경기였고, 상대가 황재균이 전성기의 상당 부분을 보낸 롯데였다는 점도 묘했다. KT 팬도, 롯데 팬도 각자 다른 기억으로 황재균을 바라본 날이었다.
황재균은 은퇴선수 특별 엔트리로 등록됐다. 보통 이런 날은 행사 중심으로 지나가기 쉽다. 그런데 이강철 감독은 실제 경기 안에 황재균을 넣었다. KT가 5-2로 앞선 6회말 1사 주자 없는 상황, 권동진 타석에서 대타 황재균이 등장했다. 숫자로 쓰면 1타수 무안타 1삼진. 하지만 그 짧은 타석에는 선수의 마지막과 팀의 현재가 동시에 들어 있었다.
네 개의 직구와 345일의 공백
상대는 롯데 좌완 이영재였다. 이영재는 황재균에게 148km, 149km, 148km, 150km 직구를 연달아 던졌다. 은퇴식용 느슨한 승부가 아니었다. 황재균은 한 차례 파울을 만들었지만 마지막엔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근데 이 장면이 오히려 좋았다. 마지막 타석이 예우만으로 포장된 장면이 아니라, 투수는 자기 공을 던지고 타자는 그 공에 반응하는 야구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345일 만의 출전이었다는 점도 크게 다가온다. 타격 타이밍은 숫자로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특히 150km 직구는 기억만으로 칠 수 있는 공이 아니다. 그래서 삼진이라는 결과보다 중요한 건 황재균이 다시 타석에 섰다는 사실이었다. 20년 가까이 몸에 새긴 루틴으로 배트를 들고, 관중의 함성 속에서 마지막 한 번의 승부를 받아낸 장면. 스포츠에서 이런 순간은 성적표보다 오래 간다.
KT는 낭만만 챙긴 게 아니었다
이 경기가 더 흥미로운 이유는 KT가 선두 경쟁 중이었다는 점이다. 그냥 감성 이벤트로 하루를 쓴 게 아니었다. KT는 롯데를 5-2로 이기며 6연승을 달렸고, 시즌 성적을 75승 3무 46패로 만들었다. 9월 중순의 1위 팀에게 한 경기 한 경기는 꽤 무겁다. 그런데 그 안에서 황재균의 작별 장면까지 만들었다.
경기 흐름을 숫자로 보면
- KT 선발 소형준은 6이닝 7피안타 1볼넷 7탈삼진 2실점으로 시즌 8승을 챙겼다.
- 김민혁은 4타수 3안타 3득점으로 공격의 출발점 역할을 했다.
- 안현민은 선제 적시타 포함 2타점, 샘 힐리어드는 5회 시즌 34호 투런포로 5-2를 만들었다.
- 박영현은 9회를 막고 시즌 27세이브를 기록했다.
그러니까 황재균의 대타 카드는 경기 흐름이 만들어준 선물에 가까웠다. 3점 차 리드, 선발의 퀄리티스타트, 중심 타선의 해결. 이 조건들이 맞물리면서 그가 관중 앞에 설 시간이 열렸다. 낭만도 결국 경기력이 받쳐줄 때 더 선명해진다.
2201경기가 말해주는 황재균이라는 선수
황재균의 커리어를 보면 누적의 무게가 먼저 보인다. 2006년 현대 유니콘스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히어로즈, 롯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KT를 거쳤다. KBO 통산 기록은 타율 0.285, 2266안타, 227홈런, 1121타점, 1172득점, 235도루. 이날 롯데전까지 더하면 통산 2201번째 경기였다.
솔직히 황재균은 특정 한 시즌만 떼어놓고 설명하기보다 긴 시간 버틴 선수로 봐야 더 정확하다. 14시즌 연속 100안타, 2020년 3루수 골든글러브, 2021년 KT 창단 첫 통합 우승 주장. 이력의 폭이 넓다. 롯데 시절엔 리그를 대표하는 공격형 3루수로 이름을 키웠고, KT에서는 팀의 첫 우승 서사 한복판에 있었다.
그런 선수의 마지막 공식 장면이 홈런도, 안타도 아닌 삼진이었다는 게 이상하게 잘 어울린다. 야구는 늘 원하는 그림만 주지 않는다. 대신 그 선수가 어떤 방식으로 오래 버텼는지를 보여준다. 황재균은 마지막에도 타석에 들어섰고, 150km 직구에 배트를 냈고, 결과를 받아들였다.
삼진 뒤에 남은 장면
타석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7회초 황재균은 익숙한 3루수 자리로 나갔다. 허경민이 잠시 유격수로 이동했고, 손동현이 대타 한태양에게 초구를 던진 뒤 황재균은 교체됐다. 공 하나, 수비 위치 하나, 동료들과의 포옹. 길게 뛰지 않아도 충분했다. 그라운드가 그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넬 시간이었다.
1만8700명 앞에서 남은 기록은 1타수 1삼진이다. 그런데 팬들이 기억할 건 아마 숫자보다 걸음일 가능성이 크다. 타석으로 들어갈 때의 박수, 3루에 섰을 때의 환호,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며 나눈 포옹. 황재균의 마지막은 화려한 장면보다 야구가 한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단단한 예우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 경기는 KT의 6연승 경기이면서, 동시에 한 선수의 2201경기째 인사로 오래 남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