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편하게 볼 영화를 묻는 지인에게 몇 작품을 떠올리다가 결국 다시 인턴을 꺼냈습니다. 신기한 건 이 영화가 늘 ‘무난한 추천’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다시 보면 꽤 많은 감정이 따라온다는 점입니다. 로버트 드 니로와 앤 해서웨이가 나오는 2015년 영화이고, 직장 코미디처럼 시작하지만 속은 꽤 부드러운 성장극에 가깝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벤의 매너가 먼저 보였고, 두 번째 볼 때는 줄스의 피로가 더 크게 보였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같은 장면이 다르게 보이는 작품들이 있는데, 인턴은 그쪽에 속합니다. 크게 사건을 몰아치지 않아도, 사람 사이에 필요한 거리감과 신뢰를 은근히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시니어 인턴이라는 설정이 가볍지 않은 이유
영화의 출발점은 단순합니다. 70세의 벤이 온라인 패션 회사에 시니어 인턴으로 들어갑니다. 겉으로만 보면 세대 차이를 웃음으로 풀어내는 이야기처럼 보이죠. 그런데 이 영화는 벤을 ‘귀여운 할아버지 캐릭터’로만 소비하지 않습니다. 그는 느리지만 무능하지 않고, 조용하지만 존재감이 약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젊은 CEO 줄스는 빠르고 유능하지만 늘 여유가 없습니다. 회사는 성장했고, 직원은 늘었고, 가정 안에서도 풀어야 할 감정이 쌓여 있습니다. 사실 영화가 흥미로운 지점은 여기입니다. 벤은 줄스를 가르치려 들지 않습니다. 조언보다 관찰을 먼저 하고, 판단보다 신뢰를 먼저 줍니다. 요즘 콘텐츠에서 보기 드문 어른의 방식입니다.
이 영화를 좋아할 사람
인턴은 자극적인 반전이나 강한 갈등을 기대하면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퇴근 후 마음을 크게 흔들지 않는 좋은 영화를 찾는 사람에게는 꽤 안정적인 선택입니다. 특히 직장 생활에서 ‘일을 잘한다’는 말의 의미가 자꾸 바뀌는 시기에 보면 더 잘 들어옵니다.
- 따뜻하지만 지나치게 달콤한 영화는 부담스러운 사람
- 직장, 커리어, 관계 이야기를 편안한 톤으로 보고 싶은 사람
- 앤 해서웨이의 현실적인 피로감과 로버트 드 니로의 절제된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
- 부모님과 함께 봐도 어색하지 않은 영화를 찾는 사람
솔직히 이 영화는 ‘인생 영화’처럼 세게 꽂히는 타입은 아닐 수 있습니다. 대신 오래 앉아도 불편하지 않은 의자 같은 매력이 있습니다. 장면마다 큰 소리를 내지 않는데, 보고 나면 사람을 대하는 태도 하나쯤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줄스 캐릭터가 생각보다 현실적이다
많은 사람이 인턴을 벤의 영화로 기억하지만, 다시 보면 줄스의 영화이기도 합니다. 줄스는 일을 사랑하지만 일 때문에 계속 심리적으로 밀려납니다. 회사에서 강해야 하고, 집에서는 미안해야 하고, 주변에서는 ‘그래도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그 균형이라는 게 실제로는 얼마나 어려운지 영화는 꽤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특히 줄스가 회사 안에서 뛰어다니는 장면들은 코미디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창업자이자 여성 리더가 겪는 압박이 들어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녀에게 대표 자리를 나누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가정의 빈틈을 지적합니다. 영화가 모든 문제를 날카롭게 파고들지는 않지만, 적어도 줄스가 단순히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남깁니다.
스포일러 없이 보는 감상 포인트
이 영화는 사건보다 리듬을 보는 작품입니다. 회의실, 사무실 책상, 자동차 안, 집 안의 대화가 차곡차곡 쌓이면서 벤과 줄스의 관계가 바뀝니다. 둘 사이에는 로맨스가 없습니다. 그 점이 오히려 좋습니다. 남녀 주인공이 서로를 구원하는 방식이 꼭 사랑이어야 한다는 오래된 공식에서 살짝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좋은 건 벤의 품위가 과시적이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는 정장을 입고, 손수건을 챙기고, 시간을 지킵니다. 그런데 영화가 말하고 싶은 건 단순히 옛날 방식이 멋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상대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 태도, 필요한 순간에만 한 걸음 다가가는 감각, 타인의 속도를 존중하는 능력이 벤의 진짜 매력입니다.
약한 스포일러가 싫다면 여기까지만 읽어도 충분합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는 일과 가정, 선택의 문제를 다룹니다. 다만 무겁게 몰아붙이기보다 낸시 마이어스 영화 특유의 밝고 정돈된 공간 안에서 감정을 풀어냅니다. 그래서 어떤 관객에게는 현실보다 너무 부드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도 그 지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현실을 완전히 해결하려는 작품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소란스러운 현실 속에서, 품위 있는 관계가 사람을 얼마나 버티게 하는지 보여주는 쪽에 가깝습니다.
OTT보다 중요한 건 지금 내 기분과 맞는지다
이 작품은 서비스별 제공 여부가 시기마다 바뀌는 편이라, 보고 싶을 때는 사용 중인 OTT 검색창에서 제목을 직접 확인하는 편이 가장 정확합니다. 다만 중요한 건 어디서 보느냐보다 어떤 상태에서 보느냐입니다. 머리가 복잡한 날, 사람에게 조금 지친 날, 일을 계속 잘하고 싶은데 마음이 따라오지 않는 날에 특히 잘 맞습니다.
인턴은 대단한 선언을 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대신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태도, 나이가 들어도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감각, 그리고 유능한 사람에게도 다정한 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조용히 건넵니다. 저는 그래서 이 영화를 ‘가볍게 틀었다가 생각보다 오래 남는 영화’로 기억합니다. 편안한 영화가 꼭 얕은 영화는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꽤 좋은 예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