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연말정산 환급 이야기를 하다가 IRP계좌를 아직도 퇴직금 받는 통장 정도로만 알고 있는 분이 꽤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사실 IRP는 이름이 조금 딱딱해서 그렇지, 잘 쓰면 세액공제와 노후자금 준비를 같이 챙길 수 있는 계좌입니다. 다만 중간에 꺼내 쓰기 불편하고, 투자 상품에도 제한이 있어서 무작정 만드는 것보다는 내 현금흐름에 맞춰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IRP계좌는 어떤 돈을 넣는 계좌인가
IRP는 개인형 퇴직연금입니다. 회사를 옮기거나 퇴직할 때 받은 퇴직급여를 넣어둘 수 있고, 직장인이나 개인사업자처럼 소득이 있는 사람이 본인 돈을 추가로 납입할 수도 있습니다. 은행, 증권사, 보험사에서 만들 수 있는데 계좌 이름은 같아도 수수료와 담을 수 있는 상품은 조금씩 다릅니다.
연금저축과 헷갈리기 쉬운데, 둘 다 노후자금용 계좌이고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은 비슷합니다. 차이는 한도와 운용 규칙입니다. 연금저축은 세액공제 대상 한도가 연 600만원까지이고, IRP까지 합치면 연금계좌 전체로 연 900만원까지 공제 대상이 됩니다. 연금저축 없이 IRP계좌 하나만 써도 공제 대상 금액을 900만원까지 채울 수 있습니다.
세액공제는 얼마까지 받을 수 있나
국세청 안내 기준으로 2026년 현재 연금저축과 IRP를 합친 세액공제 한도는 연 900만원입니다. 총급여가 5,500만원 이하이거나 종합소득금액이 4,500만원 이하라면 지방소득세를 포함해 16.5%를 적용받습니다. 900만원을 꽉 채우면 최대 148만5천원입니다.
그 기준을 넘는 사람은 13.2%가 적용됩니다. 같은 900만원을 넣어도 최대 118만8천원 정도입니다. 예를 들어 연금저축에 이미 600만원을 넣고 있다면 IRP계좌에는 300만원만 추가해도 공제 한도를 채웁니다. 반대로 연금저축이 없다면 매달 75만원씩 IRP에 넣으면 연 900만원이 됩니다.
- 연금저축 600만원 + IRP 300만원: 공제 대상 900만원
- IRP만 900만원 납입: 공제 대상 900만원
- 연 900만원을 초과한 납입분: 세액공제 대상은 아니지만 노후자금으로는 운용 가능
다만 세액공제는 내가 실제로 낼 세금 안에서 효과가 납니다. 이미 결정세액이 적은 사람은 계산상 공제액을 전부 체감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말에 급하게 큰돈을 넣기보다, 내 소득과 이미 납입한 연금저축 금액을 먼저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계좌를 만들 때는 수수료와 상품 범위를 같이 본다
IRP계좌는 어디서 만들든 세제 틀은 비슷하지만 실제 사용감은 다릅니다. 어떤 금융사는 비대면 계좌에 운용관리수수료나 자산관리수수료를 낮게 적용하기도 하고, 어떤 곳은 예금 상품은 다양하지만 ETF 선택지가 좁을 수 있습니다. 장기간 들고 갈 계좌라 수수료 차이가 작아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꽤 크게 느껴집니다.
개설 전 체크할 것
- 비대면 개설 시 수수료가 면제되거나 낮아지는지
- 정기예금, 펀드, 국내 상장 ETF, TDF 등 내가 원하는 상품을 담을 수 있는지
- 앱에서 입금, 매수, 상품 변경이 편한지
- 퇴직금을 받을 목적이라면 회사 제출용 계좌확인서 발급이 쉬운지
운용 규칙도 알아두면 좋습니다. IRP는 퇴직연금 성격이 있어서 주식형 펀드나 주식형 ETF 같은 위험자산을 계좌 전체의 70%까지만 담을 수 있습니다. 나머지 30%는 예금, 채권형 상품, 요건을 갖춘 TDF처럼 금융사가 안전자산 또는 예외 상품으로 분류한 쪽에 배치해야 합니다. 여기서 안전자산이라는 말이 원금보장을 뜻하는 건 아닙니다. 채권형 상품도 가격이 흔들릴 수 있으니 상품 설명을 꼭 봐야 합니다.
돈을 넣기 전 꼭 생각할 부분
IRP계좌의 가장 큰 장점은 세액공제지만, 가장 큰 불편함도 세금에서 나옵니다. 만 55세 이후, 원칙적으로 가입 5년이 지난 뒤 연금으로 나누어 받아야 낮은 세율을 적용받기 쉽습니다. 퇴직급여가 들어간 계좌는 5년 요건이 빠지는 경우가 있지만, 개인 납입금 중심이라면 이 조건을 의식해야 합니다.
중간에 해지하면 세액공제를 받은 납입금과 운용수익에 기타소득세 16.5%가 붙을 수 있습니다. 급하게 쓸 돈, 전세 만기 때 필요한 돈, 1~2년 안에 써야 할 목돈을 IRP에 넣으면 나중에 마음이 꽤 복잡해집니다. 생활비 예비자금은 따로 두고, 없어도 당장 생활이 흔들리지 않는 금액부터 넣는 방식이 현실적입니다.
나중에 연금으로 받을 때도 계산할 부분이 있습니다. 세액공제를 받은 개인 납입금과 운용수익은 나이에 따라 3.3~5.5% 수준의 연금소득세가 적용됩니다. 사적연금 수령액이 연 1,500만원을 넘으면 종합과세와 16.5% 분리과세 중 선택해야 하는 구간이 생길 수 있습니다. 퇴직금을 IRP에서 연금으로 받는 경우에는 실제 수령연차에 따라 퇴직소득세 부담이 줄어드는 구조가 적용됩니다.
처음 시작한다면 이렇게 잡으면 편하다
처음부터 900만원을 채우겠다고 마음먹으면 부담이 큽니다. 월 10만원이나 20만원으로 자동이체를 걸어두고, 연말에 소득과 카드 사용액, 다른 공제 항목을 보면서 추가 납입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 부담이 덜합니다. 연금저축을 이미 쓰고 있다면 IRP는 부족한 공제 한도를 채우는 보조 계좌처럼 써도 됩니다.
투자 성향이 보수적이면 예금 비중을 높이고, 장기투자에 익숙하다면 위험자산 70% 한도 안에서 국내 상장 ETF나 펀드를 섞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세액공제 금액만 보고 계좌를 방치하지 않는 겁니다. 1년에 한두 번이라도 수익률, 수수료, 위험자산 비중을 확인하면 IRP계좌가 단순한 절세 통장이 아니라 오래 버티는 노후자금 계좌로 자리 잡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많이 넣는 것보다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금액을 찾는 쪽이 더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