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책상 서랍을 비우다가 멀티비타민 통이 두 개나 나온 적이 있다. 하나는 회사 책상에 두고 먹던 것, 하나는 온라인 행사 때 싸다고 산 것. 둘 다 반쯤 남아 있었다. 그때 좀 민망했다. 몸에 좋을 것 같아서 샀는데, 막상 내가 뭘 얼마나 먹는지는 잘 모르고 있었으니까.
멀티비타민은 이름부터 마음을 놓게 만든다. 여러 가지 비타민과 미네랄이 한 알에 들어 있다니, 바쁜 날의 보험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직접 한 달 정도 다시 먹어보면서 느낀 건 의외로 단순했다. 이건 피로를 한 방에 없애는 알약이라기보다, 내 식사가 얼마나 들쑥날쑥한지 보게 만드는 작은 체크 장치에 가까웠다.
처음엔 효과보다 습관이 먼저 보였다
나는 아침을 자주 건너뛴다. 점심은 대충 먹고, 저녁에 몰아서 먹는 날도 많다. 이런 생활에서 멀티비타민을 먹으면 왠지 부족한 부분이 채워질 것 같았다. 실제로 식사를 챙기기 어려운 날에는 심리적으로 안심이 됐다.
다만 몸이 확 달라지는 느낌은 크지 않았다. 잠을 5시간 잔 날은 멀티비타민을 먹어도 피곤했고, 물을 적게 마신 날은 오후에 여전히 머리가 무거웠다. 반대로 잠을 잘 자고 식사를 평소보다 고르게 한 날은 영양제를 먹었는지 잊어버릴 만큼 컨디션이 괜찮았다.
그래서 나는 멀티비타민을 피로 회복제처럼 기대하면 실망하기 쉽다고 느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안내에서도 건강기능식품은 의약품이 아니며 질병 치료나 예방을 대신하는 물건이 아니라고 본다. 이 선을 알고 나니 오히려 선택이 쉬워졌다.
라벨에서 먼저 본 건 함량이었다
멀티비타민을 고를 때 제품명보다 먼저 본 건 성분표였다. 특히 1일 영양성분 기준치 대비 몇 퍼센트인지가 중요했다. 어떤 제품은 비타민 B군이 100% 안팎이고, 어떤 제품은 1,000% 가까이 들어 있기도 했다. 숫자가 클수록 든든해 보이지만 꼭 내 몸에 더 맞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100% 근처가 생각보다 편했다
미국 국립보건원 보충제 자료에서도 기본적인 멀티비타민은 대체로 권장량에 가까운 수준일 때 건강한 성인에게 큰 문제가 적다고 설명한다. 반대로 여러 영양제를 겹쳐 먹거나 강화 식품까지 자주 먹으면 비타민 A, 철, 아연, 나이아신, 엽산 같은 일부 성분은 필요 이상으로 많아질 수 있다.
- 하루 1정 기준인지, 2정 기준인지 먼저 봤다.
- 비타민 A가 레티놀 형태로 많은 제품은 한 번 더 확인했다.
- 철분은 필요한 사람에게는 유용하지만, 모두에게 꼭 필요한 성분은 아니었다.
- 칼슘, 마그네슘은 멀티비타민 한 알에 충분히 넣기 어려워 함량이 낮은 제품도 많았다.
솔직히 예전에는 성분이 많을수록 좋은 제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라벨을 보다 보니 멀티비타민은 더 많이 넣은 제품보다 내가 이미 먹고 있는 음식, 약, 영양제와 덜 겹치는 제품이 편했다.
먹는 시간도 은근히 차이가 났다
처음 며칠은 빈속에 먹었다가 속이 살짝 불편했다. 특히 커피만 마신 아침에 먹으면 울렁거리는 느낌이 있었다. 그래서 점심 식사 직후로 바꿨더니 훨씬 무난했다. 지용성 비타민이 들어 있는 제품은 식사와 같이 먹는 편이 부담이 덜하다는 설명도 납득이 됐다.
한 달 동안 내가 지킨 방식은 단순했다. 매일 완벽하게 챙기려고 하지 않고, 식사를 한 뒤 물과 함께 먹었다. 깜빡한 날은 다음 날 두 알을 몰아 먹지 않았다. 이 작은 원칙이 생각보다 중요했다. 영양제는 빠진 날을 벌충하는 방식으로 먹기 시작하면 금방 양이 흐트러진다.
보관도 의외로 신경 쓰였다. 욕실 선반은 편하지만 습기가 많다. 나는 책상 위보다 부엌 찬장 안쪽에 두는 쪽이 나았다. 눈에 보여야 먹는 사람이라면 작은 약통에 일주일치만 덜어두는 방식도 괜찮았다. 다만 아이 손이 닿는 곳은 피하는 게 맞다.
이런 경우는 그냥 넘기기 어렵다
멀티비타민은 흔한 제품이라 가볍게 느껴지지만, 누구에게나 같은 방식으로 맞지는 않는다. 특히 약을 먹고 있거나 특정 상황에 해당하면 성분표를 더 꼼꼼히 봐야 한다.
- 항응고제를 복용 중이라면 비타민 K가 들어 있는 제품은 의사나 약사와 먼저 상의하는 편이 안전하다.
- 흡연자나 과거 흡연자는 고함량 베타카로틴, 비타민 A 제품을 조심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 임신 중이거나 임신 가능성이 있다면 일반 멀티비타민보다 임산부용 제품을 기준으로 상담받는 게 낫다.
- 철분이 든 제품은 빈혈이 없는 성인 남성이나 폐경 이후 여성에게 꼭 맞지 않을 수 있다.
- 이미 비타민 D, 오메가3, 칼슘, 마그네슘 등을 따로 먹고 있다면 겹치는 성분부터 확인해야 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가장 많이 뜨끔했다. 비타민 D를 따로 먹으면서 멀티비타민까지 먹으면 양이 겹칠 수 있고, 피곤하다고 B군 제품을 추가하면 또 겹친다. 영양제는 하나씩 볼 때보다 같이 볼 때 진짜 모습이 보였다.
내가 계속 먹는다면 이렇게 고를 것 같다
지금 다시 고른다면 광고 문구보다 세 가지를 볼 것 같다. 첫째, 내 나이와 생활 패턴에 맞는 제품인지. 둘째, 각 성분이 지나치게 고함량은 아닌지. 셋째, 내가 이미 먹는 다른 제품과 충돌하지 않는지. 여기에 건강기능식품 표시와 섭취 시 주의사항, 유통기한까지 보면 적어도 충동구매는 줄어든다.
멀티비타민을 한 달 먹고 나서 내가 얻은 건 극적인 변화가 아니었다. 대신 아침을 계속 거르는 습관, 물을 적게 마시는 날, 채소를 거의 안 먹는 주간이 꽤 선명하게 보였다. 그게 좀 현실적이었다. 한 알로 생활을 덮기보다, 한 알을 계기로 생활을 다시 보게 되는 정도. 내게 멀티비타민은 그 정도 거리감일 때 가장 오래 갈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