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가계부를 넘겨보다가 예전에 전세를 옮길 때 적어둔 메모를 봤습니다. 그때 저는 전세보증금대출 한도만 먼저 보고 집을 보러 다녔는데, 막상 계산해보니 진짜 부담은 대출 가능액이 아니라 매달 빠져나가는 이자와 고정비였습니다.
전세보증금대출은 잘 쓰면 월세보다 주거비를 낮출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숫자를 대충 보면 이사 후 6개월쯤 지나서 생활비가 빡빡해집니다. 계약서 쓰기 전에 최소한 아래 5가지는 가계부 숫자로 먼저 맞춰보는 게 좋습니다.
1. 대출 한도보다 월 이자부터 계산하기
은행에서 “얼마까지 가능하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급해집니다. 하지만 가계부 입장에서는 총액보다 월 부담이 먼저입니다. 예를 들어 전세보증금 3억 원짜리 집에 자기 돈 1억 4천만 원, 전세보증금대출 1억 6천만 원을 넣는다고 해보겠습니다. 금리가 연 3.8%라면 단순 계산 월 이자는 약 50만 7천 원입니다.
여기서 금리가 0.5%포인트만 올라가도 1년에 80만 원, 한 달로 나누면 약 6만 7천 원이 더 나갑니다. 이 돈은 커피 몇 잔 줄이는 수준이 아니라 통신비 할인, 장보기 예산, 외식 횟수까지 같이 움직이는 금액입니다.
가계부에 먼저 넣어볼 항목
- 예상 대출금과 금리별 월 이자
- 관리비, 주차비, 인터넷, 도시가스 등 새집 고정비
- 이사비, 중개보수, 보증료, 입주 청소비
- 비상금으로 남길 현금 최소 3개월치 생활비
2. HF, HUG, 기금 대출의 차이 알기
전세보증금대출이라고 다 같은 상품은 아닙니다. 한국주택금융공사(HF)의 전세자금보증은 사람의 소득과 부채 상환능력을 많이 봅니다. 일반전세자금보증은 수도권 기준 임차보증금 7억 원, 그 외 지역 5억 원 이하 조건이 자주 기준으로 쓰이고, 보증한도는 최대 4억 원으로 안내됩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금안심대출보증은 대출보증과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이 결합된 구조입니다. 그래서 내 소득만 보는 게 아니라 집 자체가 안전한지도 중요합니다. 주택 가격, 선순위 채권, 보증금 수준에 따라 가능 여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주택도시기금의 버팀목 계열은 무주택, 소득, 자산, 세대주 요건 같은 정책 조건을 봅니다. 청년, 신혼부부, 중소기업 취업청년처럼 대상별로 한도와 금리가 달라질 수 있으니 은행 상담 전에 본인 조건을 먼저 적어두면 상담 시간이 확 줄어듭니다.
3. 보증금 안전성은 절약보다 먼저 보기
전세보증금대출을 받을 때 가장 아까워 보이는 돈이 보증료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돈을 보험료처럼 봅니다. 몇십만 원을 아끼려다가 보증금 전체가 묶이면 가계부가 아니라 인생 계획이 흔들립니다.
특히 빌라, 다세대, 오피스텔은 매매가와 전세가 차이가 작을 때가 있습니다. 집주인의 대출이 이미 크게 잡혀 있거나, 등기부에 권리관계가 복잡하면 대출 승인과 별개로 조심해야 합니다. 은행에서 대출이 된다는 말과 내 보증금이 안전하다는 말은 완전히 같은 뜻이 아닙니다.
계약 전 확인할 숫자
- 전세보증금이 주변 매매가의 어느 정도인지
- 등기부상 선순위 근저당 금액
- 내 보증금과 선순위 채권을 더한 금액
- 반환보증 가입 가능 여부와 예상 보증료
4. 월급의 25% 선을 넘는지 보기
제가 가계부를 오래 쓰면서 만든 기준은 단순합니다. 전세대출 이자와 관리비를 합친 주거 고정비가 세후 월급의 25%를 넘으면 다른 지출이 자주 밀립니다. 맞벌이라면 합산 소득으로 보되, 한 사람 소득이 잠시 끊겨도 버틸 수 있는지 따로 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세후 월소득이 360만 원인 1인 가구가 전세대출 이자 55만 원, 관리비 18만 원을 낸다면 주거 고정비는 73만 원입니다. 소득의 약 20%라 꽤 안정적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자동차 할부 35만 원, 보험료 22만 원, 학자금 상환 20만 원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전세보증금대출은 단독으로 판단하면 안 되고 기존 고정비와 한 줄에 세워야 합니다.
5. 집을 고르기 전에 내 상한선을 적기
부동산을 보러 가면 2천만 원 차이가 작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전세보증금대출 2천만 원이 늘고 금리가 연 4%라면 월 이자는 약 6만 7천 원 늘어납니다. 2년이면 약 160만 원입니다. 냉장고를 바꿀 돈이거나, 비상금 한 달치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 보기 전에 세 줄을 먼저 씁니다. “최대 보증금”, “최대 대출금”, “월 주거비 상한선”입니다. 이 숫자가 있으면 집이 마음에 들어도 잠깐 멈출 수 있습니다. 감정이 나쁜 게 아니라, 감정만으로 2년짜리 계약을 하면 매달 통장에서 답이 나옵니다.
- 월 이자와 관리비 합계는 얼마까지 괜찮은가
- 대출 실행 후 통장에 얼마를 남길 것인가
- 중도상환 계획이 있는가
- 2년 뒤 이사, 갱신, 매매 중 어떤 선택지를 열어둘 것인가
전세보증금대출은 무조건 피해야 할 빚도 아니고, 무조건 좋은 기회도 아닙니다. 내 월급, 내 소비습관, 내가 견딜 수 있는 불안의 크기에 맞아야 오래 버틸 수 있습니다. 저는 대출 상담을 받기 전에 가계부에 예상 이자부터 적어보는 쪽을 권합니다. 숫자를 먼저 보면 집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내 생활을 지키는 선택지가 더 또렷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