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색화 전시를 직접 보고 나서야 알게 된 조용한 그림의 진짜 재미

단색화 전시를 직접 보고 나서야 알게 된 조용한 그림의 진짜 재미

얼마 전 미술관에서 단색화 작품을 한참 바라본 적이 있는데, 솔직히 처음 3분은 조금 난감했다. 멀리서 보면 그냥 하얗고, 검고, 누렇고, 비슷비슷한 면처럼 보였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니 화면에 긁힌 자국, 눌린 결, 물감이 스며든 층이 보였다. 그때부터는 이상하게 발이 잘 안 떨어졌다.

단색화는 말 그대로 한 가지 색만 쓰는 그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근데 실제로 보면 색보다 과정이 더 크게 느껴진다. 같은 흰색이라도 바탕이 비치는 흰색, 종이가 숨 쉬는 흰색, 물감이 여러 번 밀려 올라온 흰색이 전부 다르다. 그래서 단색화는 ‘단순한 그림’보다 ‘천천히 봐야 보이는 그림’에 가깝다고 느꼈다.

처음엔 왜 이게 유명한지 잘 몰랐다

단색화는 1970년대 한국 현대미술 흐름 안에서 자주 이야기된다. 박서보, 정상화, 하종현, 윤형근 같은 작가들이 대표적으로 언급된다. 이 이름들을 몰라도 작품 앞에 서면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다. 강하게 외치는 그림이라기보다, 반복해서 쌓고 밀고 비우는 그림이다.

처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나도 그릴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잠깐 든다. 나도 그랬다. 그런데 작품 설명을 읽고, 실제 표면을 보니 그 말이 쉽게 안 나왔다. 어떤 작품은 물감을 바른 뒤 다시 긁어내고, 어떤 작품은 캔버스 뒤에서 물감을 밀어내며, 또 어떤 작품은 종이에 연필선을 끝없이 반복한다. 결과물은 조용하지만 몸을 많이 쓴 흔적이 남아 있다.

단색화가 재미있어지는 지점

단색화는 사진으로 보면 손해를 많이 보는 장르다. 화면이 납작하게 찍히면 그냥 색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까이 보면 표면이 꽤 다르다. 빛이 비스듬히 닿을 때 생기는 그림자, 물감이 마른 두께, 천의 조직감이 작품마다 다르게 드러난다.

내가 본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은 건 거의 흰색에 가까운 화면이었다. 멀리서는 빈 벽 같았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일정한 간격의 선이 계속 이어져 있었다. 대단한 사건은 없는데 묘하게 오래 보게 됐다. 마치 조용한 방에서 시계 소리가 갑자기 크게 들리는 느낌이었다.

  • 멀리서 먼저 전체 분위기를 본다.
  • 한 발 가까이 가서 표면의 결을 본다.
  • 옆으로 조금 이동하면서 빛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을 본다.
  • 작품 설명은 너무 빨리 읽지 말고, 먼저 내 눈으로 본 느낌을 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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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에 단색화 감성을 들이면 어떨까

전시를 보고 나니 집 인테리어에서 왜 단색화 느낌의 그림을 많이 찾는지도 이해됐다. 색이 강하지 않으니 공간을 압도하지 않고, 대신 벽의 분위기를 차분하게 만든다. 특히 흰색, 회색, 먹색 계열 작품은 가구와 충돌이 적다.

다만 단색화 감성 액자를 고를 때는 색 이름만 보고 고르면 조금 아쉽다. 같은 베이지라도 노란 기가 강하면 따뜻해 보이고, 회색이 섞이면 훨씬 차분해진다. 거실처럼 빛이 많이 들어오는 곳에서는 표면 질감이 있는 그림이 살아나고, 침실처럼 조도가 낮은 곳에서는 대비가 너무 약한 그림이 밋밋해 보일 수 있다.

작은 공간에서는 크기가 꽤 중요했다

직접 액자를 걸어보니 작은 작품 여러 개보다, 여백이 있는 큰 작품 하나가 더 안정적으로 보일 때가 많았다. 예를 들어 폭 180cm 정도의 소파 위라면 30cm짜리 액자 하나는 너무 외롭게 보인다. 80cm 안팎의 가로형 작품이나 50cm 정도의 세로형 작품 두 점이 훨씬 균형 있게 느껴졌다.

또 하나 의외였던 건 프레임이다. 단색화 느낌의 작품은 액자 테두리가 너무 두꺼우면 그림보다 틀이 먼저 보인다. 얇은 원목, 흰색, 검정 프레임이 무난했고, 유광 금속 프레임은 공간에 따라 조금 튈 수 있었다.

비싸 보이는 그림과 좋은 그림은 조금 달랐다

단색화는 경매나 해외 전시 이야기가 붙으면서 ‘비싼 미술’ 이미지가 강해진 면도 있다. 실제로 유명 작가의 원화는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장르를 좋아하게 되는 데 꼭 가격표가 먼저 올 필요는 없다고 느꼈다. 중요한 건 표면을 보는 재미, 반복에서 오는 리듬, 조용한 색이 주는 밀도였다.

프린트 작품이나 신진 작가의 작업에서도 비슷한 감각을 찾을 수 있다. 다만 너무 단순히 ‘흰 바탕에 선 몇 개’처럼 흉내만 낸 이미지는 금방 질린다. 가까이 봤을 때 재료감이 있거나, 붓질과 층이 느껴지는 작품이 오래 간다. 화면이 조용할수록 작은 차이가 더 크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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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색화는 빨리 판단하면 손해다

단색화는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그림은 아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몇 분만 더 보면 표면의 움직임이 보이고, 작가가 같은 행동을 얼마나 집요하게 반복했는지도 조금씩 느껴진다. 나에게는 그 지점이 꽤 매력적이었다.

화려한 그림처럼 한눈에 마음을 빼앗지는 않지만, 대신 오래 볼수록 방 안의 공기처럼 스며드는 힘이 있다. 다음에 단색화 작품을 만나면 멀리서 한 번, 가까이서 한 번, 옆으로 움직이며 한 번 더 보고 싶다. 처음엔 조용해서 지나쳤던 그림이 의외로 오래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있으니까.

단색화 전시를 직접 보고 나서야 알게 된 조용한 그림의 진짜 재미 -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