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참교육〉을 몰아봤는데, 처음엔 당연히 김무열과 이성민 조합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몇 회 지나고 나니까 묘하게 자꾸 생각나는 인물이 따로 있더라고요. 바로 표지훈, 피오가 맡은 봉근대였습니다.
이 드라마는 무너진 교육 현장을 바로잡기 위해 만들어진 교권보호국이 선 넘는 학생, 학부모, 교사와 부딪히는 이야기입니다. 장르는 학교 드라마라기보다 액션, 코미디, 사회 이슈가 섞인 사이다극에 가깝고요. 그 안에서 봉근대는 힘으로 밀고 나가는 캐릭터가 아니라, 살짝 어수룩해 보이는데 이상하게 판을 움직이는 조력자 쪽에 가깝습니다.
봉근대가 은근히 남는 이유
봉근대는 교권보호국의 천재 사무관입니다. 설정만 놓고 보면 카이스트를 빠르게 졸업한 두뇌형 캐릭터인데, 막상 화면에서는 똑똑함을 과시하는 타입이 아닙니다. 말투나 표정은 순하고, 현장에 들어가면 어딘가 허술해 보이죠. 근데 이 허술함이 단순한 웃음 포인트로만 쓰이지 않는다는 게 꽤 좋았습니다.
특히 봉근대가 학교 현장에 위장 잠입하는 장면들은 이 캐릭터의 맛을 잘 보여줍니다. 나화진이 정면 돌파라면, 봉근대는 틈으로 들어가는 인물입니다. 시끄럽게 판을 뒤집기보다, 남들이 방심하는 순간 정보를 건져 올리는 쪽이죠. 그래서 액션이 강한 회차 사이에서도 봉근대가 나오면 리듬이 한 번 부드럽게 꺾입니다.
- 김무열의 나화진이 직선적인 타격감을 담당한다면 봉근대는 빈틈과 관찰을 담당합니다.
- 진기주의 임한림이 현장형 에너지라면 봉근대는 사무실과 현장을 잇는 완충 역할을 합니다.
- 이성민의 최강석이 큰 그림을 잡는 인물이라면 봉근대는 팀 내부의 생활감을 만들어줍니다.
피오 연기는 생각보다 캐릭터와 잘 붙습니다
솔직히 피오가 나온다고 했을 때, 예능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워낙 친근하고 장난기 있는 얼굴이 강해서, 무거운 소재의 드라마 안에서 튀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봉근대라는 캐릭터는 그 선입견을 오히려 장점으로 써먹습니다.
봉근대는 심각한 사건을 가볍게 만드는 인물은 아닙니다. 대신 계속 팽팽한 분위기 속에서 시청자가 숨 쉴 틈을 갖게 해줍니다. 이 차이가 중요합니다. 장면을 망가뜨리는 농담이 아니라, 캐릭터 자체의 어색함과 선함에서 나오는 온도 조절에 가깝거든요.
좋았던 쪽
표지훈 특유의 말맛과 표정이 봉근대의 순진함과 잘 맞습니다. 캐릭터가 가진 천재성도 너무 차갑게 표현하지 않아서, 보는 입장에서는 ‘저 사람 믿어도 되겠다’는 느낌이 생깁니다. 팀이 험한 사건을 다룰수록 이런 인물이 하나쯤 있어야 화면이 숨 막히지 않습니다.
아쉬웠던 쪽
다만 봉근대의 어수룩함을 좋아하지 않는 시청자라면 반복되는 리액션이 조금 뻔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참교육〉 자체가 통쾌한 응징 구조를 자주 쓰는 작품이라, 캐릭터의 귀여운 결이 사건의 무게와 살짝 어긋난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 어긋남까지 포함해서 봉근대가 기억에 남았지만, 취향 차이는 분명히 갈릴 듯합니다.
스포 없이 말하면, 봉근대는 작품의 온도계입니다
〈참교육〉은 학교폭력, 과열된 교육열, 권력형 갑질처럼 꽤 센 소재를 다룹니다. 그래서 보는 동안 속이 시원한 장면도 있지만, 동시에 ‘이 방식이 정말 괜찮나’ 싶은 순간도 생깁니다. 원작 웹툰을 둘러싼 논쟁을 알고 보는 시청자라면 더 조심스럽게 보게 되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봉근대가 등장하면 이 드라마가 완전히 차갑고 거친 쪽으로만 흐르지는 않습니다. 그는 사건을 해결하는 절대 영웅이라기보다, 팀 안에서 인간적인 빈틈을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봉근대 장면은 큰 스포일러 없이도 말할 수 있는 관전 포인트가 많습니다. 표정, 자세, 말끝, 당황하는 타이밍 같은 작은 것들이 캐릭터를 만듭니다.
봉근대만 보고 달려도 괜찮을까
피오 팬이라면 충분히 볼 이유가 있습니다. 봉근대는 단순 카메오나 가벼운 조연이 아니라, 팀의 색깔을 바꾸는 인물에 가깝습니다. 10부작 흐름 안에서 초반부터 존재감을 쌓고, 중반 이후에도 잠입과 보조 역할로 자기 몫을 챙깁니다.
다만 〈참교육〉은 순한 드라마는 아닙니다. 통쾌한 응징극을 좋아하면 속도감 있게 볼 수 있지만, 폭력적인 해결 방식이나 자극적인 사건 배치에 예민하다면 중간중간 걸리는 장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봉근대 때문에 끝까지 보는 힘이 조금 더 생겼습니다. 큰 액션보다도, 무거운 판 안에서 이상하게 사람 냄새 나는 캐릭터가 오래 남는 쪽이라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