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2027 KBO 신인드래프트 명단을 훑다가 홍화철 이름이 없다는 대목에서 손이 잠깐 멈췄다. 홍성흔의 아들이라는 익숙한 수식어도 있었지만, 사실 더 눈에 걸린 건 187cm 왼손 투수, 최고 147km라는 숫자였다. 이런 프로필을 가진 고3 투수가 110명 안에 없었다면, 팬 입장에서는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110명 안에 없었던 이름
KBO 발표 기준 2027 신인드래프트는 2026년 9월 21일 열렸다. 전면 드래프트 방식으로 1라운드부터 11라운드까지 진행됐고, 10개 구단이 총 110명을 지명할 수 있는 판이었다. 고교 졸업 예정자, 대학 졸업 예정자, 얼리드래프트 신청자, 해외 및 기타 자격 선수까지 더해 지명 대상자는 1,280명 규모였다.
그 큰 풀 안에서 홍화철은 꽤 독특한 이름이었다. 서울고 좌완 투수, 좌투좌타, 큰 키, 그리고 야구팬에게 익숙한 가족사까지 붙어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중요한 건 최근 경기 내용이었다. 봉황대기 부산고전에서 4⅔이닝 3피안타 8탈삼진 무실점. 더 강하게 남은 장면은 전체 1순위로 향한 하현승을 3구 삼진으로 잡은 순간이었다.
신인드래프트 포기 이유, 단순한 미지명이 아니었다
홍화철이 호명되지 않은 배경은 실력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스포츠조선 보도 흐름을 보면, 그는 드래프트를 앞두고 미국 대학 진학 쪽으로 방향을 굳혔다. 프로 유니폼을 바로 입는 대신 학업과 야구를 함께 가져가는 길을 택한 셈이다. 아버지 홍성흔이 미국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 코치 연수를 하고 있다는 점도 생활 적응 면에서는 현실적인 기반이 될 수 있었다.
여기서 포인트가 하나 있다. 드래프트 참가 신청을 한 뒤에는 절차상 물러나기 어렵다는 설명이 나왔다. 그래서 서울고 김동수 감독 등이 10개 구단에 사실상 참가 의사가 없다는 뜻을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구단 입장에서는 지명권 하나가 꽤 무겁다. 특히 중후반 라운드에서는 한 장 한 장이 육성 계획과 직결된다. 모르고 호명했다가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손실이 생긴다.
그러니까 홍화철의 사례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은 미지명이라기보다, 선수가 먼저 다른 길을 택했고 구단들이 그 의사를 존중한 장면에 가깝다. 팬들이 놀란 이유는 이해된다. 147km를 던지는 좌완은 늘 귀하다. 근데 드래프트는 능력 평가표만 놓고 돌아가는 행사가 아니다. 선수의 진로 의사, 계약 가능성, 구단의 육성 시간표가 같이 움직인다.
기록표가 말하는 기대와 불안
솔직히 기록만 놓고 보면 홍화철은 완성형 유망주와는 거리가 있었다. 올해 10경기 출전, 주말리그 후반기 3경기 8이닝에서 볼넷 6개와 사구 6개가 언급됐다. 좌완 파이어볼러에게 제구 기복은 흔한 숙제지만, 고교 드래프트에서 구단이 감수해야 할 위험이기도 하다. 구속은 147km까지 찍혔지만, 스트라이크존을 꾸준히 공략하는 능력은 별개의 항목이다.
- 강점: 187cm 신체 조건, 좌완, 최고 147km 직구, 짧은 투수 경력에서 나온 상승세
- 변수: 실전 표본 부족, 볼넷과 사구 비율, 변화구 완성도, 투구 폼 반복성
- 평가 포인트: 현재 성적보다 2~4년 뒤 구속과 제구가 함께 올라갈 수 있느냐
스카우트들이 홍화철을 완전히 놓기 어려웠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 당장 1군 전력으로 보는 선수는 아니어도, 몸을 만들고 투구 메커니즘을 다듬으면 150km 이상을 바라볼 수 있는 좌완이라는 계산이 가능하다. KBO에서 이런 유형은 중반 라운드 이후에도 충분히 투자 가치가 있다.
미국 대학이라는 우회로의 의미
미국 대학 진학은 낭만적인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꽤 냉정한 계산이 필요한 길이다. 장점은 분명하다. 20대 초반에 몸을 더 만들 시간, 영어권 생활 경험, 학업 병행, 다양한 타자와 리그 환경을 겪을 기회가 생긴다. 특히 투수 전향 시기가 길지 않은 선수라면 프로 입단 직후 성과 압박을 받는 것보다 더 넓은 성장 시간을 확보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반대로 쉬운 길은 아니다. 미국 대학 야구는 로스터 경쟁이 치열하고, 학교 선택에 따라 등판 기회가 크게 갈린다. 아무리 구속이 좋아도 경기에서 공을 던지지 못하면 발전 속도는 느려진다. 그래서 홍화철에게 중요한 건 유명한 학교 이름보다 꾸준히 이닝을 받을 수 있는 환경, 투수 코치와 트레이닝 시스템, 그리고 제구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구속을 키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홍화철이라는 이름이 다시 커질 조건
앞으로 홍화철을 볼 때는 홍성흔의 아들이라는 문구보다 몇 가지 숫자를 봐야 한다. 첫째, 볼넷과 사구가 줄어드는가. 둘째, 직구 평균 구속이 최고 구속 근처로 따라오는가. 셋째, 좌타자와 우타자를 상대로 쓸 변화구가 생기는가. 넷째, 선발이든 불펜이든 자기 역할 안에서 반복 가능한 투구를 보여주는가.
나는 이번 선택이 꽤 흥미롭다. 프로 지명을 받는 순간의 박수도 크지만, 아직 다듬을 부분이 많은 좌완에게 시간은 꽤 비싼 자산이다. 홍화철이 미국 대학에서 진짜 투수로 몸을 바꿔 돌아온다면, 이번 드래프트에서 불리지 않은 하루가 오히려 커리어의 방향을 넓힌 장면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숫자는 아직 미완성인데, 그래서 더 지켜볼 맛이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