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2027 KBO 신인 드래프트를 보다가 KIA 차례에서 손이 잠깐 멈췄다. 전체 3순위. 많은 팬들이 서울디자인고 좌완 박근서를 떠올리던 자리였는데, KIA는 경남고 내야수 이호민을 불렀다. KBO가 공지한 지명 순서도 키움, 두산, KIA, 롯데 순이었고, 실제로 3순위 KIA 이호민, 4순위 롯데 박근서로 이어졌다. ([koreabaseball.com]) ([koreabaseball.com])
처음엔 살짝 의외처럼 보였다. 그런데 기록을 다시 보니 이 선택은 단순한 변덕이 아니었다. 박근서가 밀린 그림이라기보다, 이호민이 막판에 판을 흔들 만큼 강한 증거를 쌓아 올린 쪽에 가깝다.
박근서 대세론이 생긴 이유는 분명했다
박근서는 드래프트 전부터 말이 많을 수밖에 없는 카드였다. 188cm, 95kg의 좌완 투수. 최고 구속은 아마야구 기록 서비스 기준 150km까지 찍혔고, 2026년 서울디자인고에서 11경기 41.2이닝, 평균자책점 2.16, 탈삼진 64개, WHIP 1.060을 남겼다.
숫자를 조금 더 쪼개면 매력이 더 잘 보인다. 9이닝당 탈삼진이 13.8개, 볼넷은 1.9개 수준이다. K/BB 7.1이라는 건 고교 좌완 강속구 투수에게 흔히 붙는 제구 불안 꼬리표와는 거리가 있다. 좌완, 구속, 체격, 삼진 능력. 스카우트들이 좋아할 단어가 거의 다 들어 있다.
- 2026년 박근서: 41.2이닝, 평균자책점 2.16, 탈삼진 64개
- 세부 지표: 9이닝당 탈삼진 13.8개, 볼넷 1.9개, K/BB 7.1
- 프로 가치: 좌완 파워피처 희소성, 선발 전환 가능성, 몸의 스케일
다만 이 카드에는 기억해야 할 단서도 있었다. 박근서는 1학년 때 팔꿈치 인대 수술을 겪었고, 공식 경기 샘플이 길지 않았다. 물론 재활 이후 구속과 경기력이 올라온 흐름은 인상적이다. 그래도 전체 3순위라면 구단은 현재 능력만이 아니라 부상 이력, 누적 이닝, 성장 곡선의 흔들림까지 같이 계산하게 된다.
이호민의 숫자는 조용히 크게 말했다
이호민은 체격부터 눈에 들어온다. 186cm, 94kg의 우투우타 내야수. 2026년 경남고에서 20경기 타율 0.420, 86타석 29안타, 2홈런, OPS 1.103을 기록했다. 출루율 0.494, 장타율 0.609라는 조합도 좋다. 힘만 앞서는 고교 거포라기보다, 맞히고 고르고 멀리 보내는 균형이 있었다.
사실 더 눈에 띄는 건 1년짜리 반짝이 아니라는 점이다. 2025년에도 타율 0.409, 4홈런, 45타점, OPS 1.108을 찍었다. 고교 레벨에서 장타자들은 종종 삼진이 늘고 출루가 흔들리는데, 이호민은 2026년 삼진률 12.8%, 볼넷률 9.3%로 버텼다. 거포 이미지에 비해 타석 완성도가 꽤 높다.
박근서가 희소성이라면 이호민은 확률이었다
박근서는 성공하면 선발 좌완 에이스 그림이 그려진다. 이건 정말 큰 매력이다. 반면 이호민은 우타 코너 내야 거포라는 형태로, KIA 타선의 미래 그림에 바로 꽂힌다. 특히 KIA가 상위 라운드에서 내야 자원을 적극적으로 모은 흐름까지 겹치면, 3순위 이호민은 팀 구성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지명처럼 보인다.
- 이호민의 강점: 장타력, 컨택, 높은 출루율, 국제대회 임팩트
- 박근서의 강점: 좌완 강속구, 삼진 능력, 선발 자원 희소성
- KIA의 선택 기준: 투수보다 타자라는 단순 비교보다, 실패 확률과 팀 내 포지션 수요를 함께 본 결정
드래프트 직전 판을 흔든 장면
분위기가 확 바뀐 장면은 대만에서 열린 U-18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이었다. 이호민은 일본전에서 4회 추격 솔로 홈런을 때렸고, 6회에는 역전 2루타로 경기 흐름을 뒤집었다. 한국이 3-2로 이긴 그 경기에서 4번타자가 해줘야 할 일을 거의 교과서처럼 해낸 셈이다.
고교 기록은 늘 해석이 필요하다. 상대 수준, 구장, 대회 일정, 투수 로테이션에 따라 숫자가 출렁인다. 그런데 국제대회 한일전, 그것도 끌려가던 경기에서 홈런과 역전 장타를 같이 보여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스카우트에게는 기록지의 숫자보다 더 강하게 남는 장면이 있다. 이호민은 그 타이밍을 제대로 잡았다.
KIA 쪽 설명에서도 이 대목은 빠지지 않았다. 이호민이 아시아청소년야구선수권에서 7타점, 5득점으로 중심타선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파워만 보는 선택이 아니라, 큰 경기에서 배트가 늦지 않았다는 확인에 가까웠다. ([sportschosun.com])
KIA가 감수한 리스크도 꽤 선명하다
물론 이호민 지명이 무조건 편한 선택은 아니다. 고교 우타 거포는 프로에서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 금속 배트와 나무 배트의 차이, 바깥쪽 변화구 대응, 2스트라이크 이후 콘택트 유지, 3루 수비 지속 가능성까지 숙제가 많다. 고교 때 1루와 3루를 오간 선수라면 수비 포지션도 꽤 중요한 변수다.
그런데 KIA가 이 리스크를 받아들인 이유도 이해된다. 박근서를 뽑으면 마운드의 미래가 커진다. 이호민을 뽑으면 라인업의 중심축 후보를 얻는다. 둘 다 맞는 선택일 수 있지만, 전체 3순위에서 KIA가 더 크게 본 건 타석에서 경기의 결을 바꾸는 힘이었다.
재미있는 건 박근서가 곧바로 롯데에 4순위로 지명됐다는 점이다. 이건 박근서 평가가 무너졌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두 선수의 간격이 정말 촘촘했다는 신호다. KIA가 이호민을 고른 순간 박근서 대세론은 흔들렸지만, 박근서의 가치는 바로 다음 순번에서 확인됐다.
개인적으로 이 지명은 몇 년 뒤 다시 꺼내 보기 좋은 장면이라고 본다. 박근서가 사직에서 좌완 선발로 자리 잡고, 이호민이 광주에서 장타를 쌓아 간다면 이 3순위와 4순위는 꽤 오래 비교될 것이다. 지금 당장은 KIA가 고른 쪽이 이호민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에는 숫자, 장면, 팀 사정이 생각보다 촘촘하게 겹쳐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