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KIA 경기를 보다 보면 6회 이후 투수 교체가 꽤 흥미롭게 보인다. 예전 같으면 선발이 내려간 뒤부터 불안한 계산을 먼저 했는데, 2026시즌 KIA는 최소한 ‘누가 한 이닝을 버텨줄 수 있나’라는 선택지가 전보다 많아졌다. 그 중심에 이태양과 김범수가 있다.
둘 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독식하는 유형은 아니다. 그런데 야구에서 진짜 비싼 선수는 꼭 세이브 하나로 기억되는 선수만은 아니다. 경기 중반에 흐름을 끊고, 선발이 남긴 주자를 지우고, 다음 투수에게 깨끗한 이닝을 넘겨주는 선수의 값어치는 순위표가 빡빡해질수록 더 크게 보인다.
후반 야구가 달라지면 순위표도 달라진다
KBO 기록 기준으로 KIA는 9월 23일 현재 131경기 71승 58패 2무, 승률 0.550으로 4위권 싸움을 하고 있다. 팀 평균자책점은 4.28로 리그 4위, WHIP는 1.39다. 압도적인 마운드라기보다는 선발과 불펜이 크게 무너지지 않는 쪽에 가깝다.
여기서 눈에 들어오는 숫자가 홀드 82개다. 팀 세이브가 24개인 것과 비교하면, KIA의 후반 운영은 단순히 마지막 한 명에게 기대는 구조가 아니었다. 6회와 7회, 때로는 5회부터 경기의 결을 붙잡아야 하는 날이 많았고, 그 역할을 나눠 가진 투수들이 필요했다.
- 이태양은 우완 베테랑으로 긴 이닝과 짧은 이닝을 오갈 수 있는 카드다.
- 김범수는 좌완 불펜이라는 희소성과 58경기 등판이라는 사용량 자체가 의미를 만든다.
- KIA는 두 선수를 통해 특정 보직 하나보다 후반 선택지를 넓히는 쪽에 투자했다.
이태양의 가치는 조용한 이닝에서 나온다
이태양은 2차 드래프트 1라운드로 KIA 유니폼을 입었다. 양도금 4억 원과 연봉 2억7000만 원을 합치면 1년 활용 비용이 6억7000만 원 수준이다. 요즘 불펜 시장 가격을 생각하면, 1군에서 계산 가능한 이닝을 주는 베테랑을 이 정도 비용으로 확보한 건 꽤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기록도 그 방향을 뒷받침한다. 2026시즌 이태양은 19경기 22이닝, 1승 3홀드, 평균자책점 2.86, WHIP 1.18을 남겼다. 피안타율 0.250, 볼넷 6개라는 숫자도 괜찮다. 삼진으로 찍어누르는 투수라기보다는 스트라이크를 먼저 넣고, 타자의 타이밍을 흐리며, 수비가 움직일 수 있게 만드는 유형이다.
사실 이런 투수는 박스스코어에서 티가 덜 난다. 1이닝 무실점은 그냥 지나가고, 2이닝을 막아도 하이라이트 첫 장면에 잘 잡히지 않는다. 근데 긴 시즌을 보면 이런 이닝들이 팀의 체력을 아낀다. 특히 부상과 엔트리 변동이 반복되는 시즌에는 ‘오늘도 던질 수 있는 베테랑’이 불펜 전체의 안전장치가 된다.
김범수의 숫자는 더 시끄럽다
김범수는 평가가 조금 복잡하다. 58경기 38이닝, 1승 3패 1세이브 13홀드. 등판 수와 홀드만 보면 KIA가 기대한 좌완 불펜의 역할을 꽤 많이 맡았다. 하지만 평균자책점 5.92, WHIP 2.08, 볼넷 29개, 블론세이브 4개라는 숫자는 그냥 넘기기 어렵다.
이 지점이 오히려 김범수 이야기를 더 야구답게 만든다. 가치 증명이라는 말이 꼭 예쁜 기록지만 뜻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김범수는 좋은 날에는 좌타자 타이밍을 빼앗고 강한 공으로 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간다. 그런데 제구가 흔들리는 날에는 한 타자를 잡으러 올라왔다가 이닝 전체가 무거워진다. 좌완 파워 불펜의 매력과 위험이 한 시즌 안에 같이 들어 있는 셈이다.
KIA 입장에서는 그래도 김범수를 쉽게 뺄 수 없다. 좌완 불펜은 대체가 쉽지 않고, 58경기를 맡긴다는 건 벤치가 그를 계속 승부처 옵션으로 봤다는 뜻이다. 다만 포스트시즌급 경기에서는 볼넷 하나가 곧 실점권으로 이어진다. 김범수가 다음 단계로 가려면 구위보다 카운트 싸움에서 더 많은 답을 보여줘야 한다.
둘을 같이 봐야 보이는 KIA의 계산
이태양과 김범수는 같은 불펜 투수지만 역할의 질감이 다르다. 이태양은 흔들린 경기의 속도를 낮추는 투수다. 김범수는 특정 타순과 좌타 라인을 겨냥해 경기의 방향을 바꾸는 투수다. 하나는 안정성, 하나는 매치업 가치에 가깝다.
그래서 둘의 가치는 개인 기록만 떼어놓고 보면 절반만 보인다. KIA가 필요했던 건 완벽한 마무리 한 명이 아니라, 선발이 5이닝에서 멈췄을 때 6회부터 8회까지 조합할 수 있는 카드들이었다. 팀 홀드 82개라는 숫자는 그 운영의 흔적이다. 이태양이 적은 실점으로 이닝을 먹어주고, 김범수가 많은 경기에서 좌완 선택지를 제공하면서 KIA는 후반 승부를 더 세밀하게 가져갈 수 있었다.
가치 증명은 아직 진행형이다
이태양은 이미 비용 대비 효율과 역할 적응에서 꽤 선명한 답을 냈다. 많은 이닝은 아니어도 22이닝 평균자책점 2.86은 베테랑 불펜에게 기대한 바로 그 그림에 가깝다. 김범수는 반대로 숙제를 많이 남긴 채 자신의 필요성을 보여줬다. 13홀드와 58경기 등판은 분명한 가치지만, WHIP 2점대는 KIA가 더 높은 곳을 보려면 반드시 줄여야 할 숫자다.
그래도 둘의 영입을 단순히 성공과 실패로 갈라 말하기는 아깝다. 이태양은 KIA 불펜에 숨 쉴 틈을 줬고, 김범수는 좌완 카드의 존재감을 시즌 내내 유지했다. 완벽해서 증명한 게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팀이 필요했던 시간을 버텨냈다는 쪽에 더 가깝다. 그래서 이 조합은 기록지만큼이나 흐름으로 읽을 때 재미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