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파리바게뜨 매장 앞을 지나가다 추석 선물세트 진열대를 꽤 오래 봤습니다. 사실 명절 선물은 맛만으로 팔리지 않습니다. 받는 사람이 상자를 열기 전부터 이미 판단이 시작되거든요. 이게 성의 있어 보이는지, 너무 흔해 보이지는 않는지, 가격대가 어색하지 않은지. 브랜드 입장에서는 이 짧은 순간이 꽤 무서운 시험대입니다.
파리바게트 추석 선물세트가 파는 건 빵만이 아니었다
올해 파리바게뜨가 내세운 흐름은 ‘안녕 K파바’입니다. 제주 메밀 카스테라, 제주 청보리빵, 만월빵, 구움과자 아뜰리에, 레몬 크림 마들렌 같은 제품들이 전면에 나왔습니다. 파리바게뜨 공식 상품 안내에서도 선물 카테고리에 제주 청보리빵, 제주 메밀 카스테라, 만월빵 등이 배치되어 있죠.
여기서 재미있는 건 방향입니다. 예전 명절 베이커리 선물은 대체로 ‘무난한 롤케이크’와 ‘보기 좋은 쿠키 상자’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제주산 메밀, 청보리, 쌀조청, 쑥떡 같은 단어가 앞으로 나옵니다. 빵집이지만 한식 디저트의 언어를 빌려온 셈입니다.
브랜드 마케팅 관점에서 보면 이건 꽤 영리한 선택입니다. 명절에는 사람들의 구매 기준이 평소와 달라집니다. 내가 먹고 싶은 것보다 ‘상대가 받았을 때 이상하지 않은 것’이 중요해집니다. 그래서 너무 실험적이면 부담스럽고, 너무 평범하면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파리바게뜨는 그 중간 지점을 ‘한국적이지만 낯설지 않은 베이커리’로 잡은 겁니다.
전국 3000개 매장이 주는 편안함과 흔함의 양면
뉴스1 보도에 따르면 파리바게뜨는 전국에 30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는 국내 최대 베이커리 브랜드입니다. 이 숫자는 추석 선물 시장에서 엄청난 무기입니다. 급하게 선물을 사야 할 때, 동네에서 바로 살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가치입니다. 선물은 마음의 표현이지만, 현실에서는 이동 동선과 시간표의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다만 이 강점은 동시에 약점이 됩니다. 너무 쉽게 살 수 있는 브랜드는 가끔 ‘특별함’에서 손해를 봅니다. 명절 선물에서 받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맛있겠다”만이 아닙니다. “이걸 고르려고 생각을 했구나”라는 신호가 있어야 합니다. 파리바게트 추석 선물세트가 올해 패키지와 재료 이야기에 힘을 준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 접근성은 좋지만 너무 일상적으로 보일 수 있다.
- 가격 부담은 낮출 수 있지만 프리미엄 인상은 약할 수 있다.
- 매장 수가 많아 구매 편의성은 높지만 선물의 희소성은 낮다.
- 그래서 제품명, 포장, 재료 스토리로 의미를 보강해야 한다.
‘K파바’는 유행어가 아니라 방어 전략에 가깝다
파리바게뜨는 2025년 10월 ‘K파바’라는 브랜드 비전을 공개했습니다. K팝처럼 글로벌 식문화를 이끌겠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설명이 붙었습니다. 솔직히 이런 슬로건은 잘못 쓰면 금방 공허해집니다. 소비자는 브랜드 선언문보다 실제 제품을 먼저 보니까요.
그런데 추석 선물세트에서는 이 메시지가 비교적 자연스럽게 붙습니다. 명절은 원래 전통, 가족, 인사, 체면, 감사의 언어가 강한 시즌입니다. 여기에 제주 메밀 카스테라나 청보리빵을 얹으면 ‘K’라는 단어가 갑자기 튀어나온 느낌이 덜합니다. 캘리그라피 협업, 전통 매듭 무늬, 훈민정음 모티프 같은 장치도 같은 방향입니다.
브랜드가 어떤 약속을 할 때 중요한 건 멋진 말보다 반복 가능성입니다. 파리바게뜨가 K파바를 단발성 캠페인으로 끝내지 않고 명절, 지역 식재료, 선물 패키지로 계속 변주한다면 소비자는 조금씩 익숙해집니다. 반대로 다음 시즌에 전혀 다른 톤으로 갈아타면 ‘또 하나의 시즌 문구였구나’ 하고 지나가겠죠.
가격 인상 뒤의 명절 선물,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올해 8월 파리바게뜨는 원료비와 제반 비용 상승을 이유로 일부 제품 가격을 평균 5% 조정한다고 공지했습니다. 대상에는 빵류 86종, 케이크디저트류 41종, 선물류 29종, 카페 35종이 포함됐습니다. 추석 선물세트를 바라볼 때 이 맥락을 빼놓으면 반쪽짜리 이야기만 하게 됩니다.
소비자는 요즘 가격에 예민합니다. 선물세트가 1만 원대인지, 2만 원대인지, 3만 원을 넘는지에 따라 구매 이유가 달라집니다. 특히 베이커리 선물은 한우나 과일처럼 ‘비싼 게 당연한 카테고리’가 아니라서, 가격이 오르면 바로 체감됩니다. 그래서 브랜드는 포장만 키우는 방식으로는 설득하기 어렵습니다. 재료, 구성, 보관성, 나눠 먹기 편한 개수까지 납득되어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제주 청보리빵 8개입처럼 수량이 보이는 제품은 유리합니다. 나눠 먹기 쉽고, 상자 안이 비어 보일 위험도 낮습니다. 고단백 서리태 카스테라처럼 단백질 11g을 내세우거나, 저당 발효버터 롤케익처럼 100g당 당류 5g 미만이라는 메시지를 붙이는 것도 요즘 소비자의 계산법을 의식한 선택입니다.
선물세트가 성공하려면 ‘안전한 선택’ 이상의 이유가 필요하다
파리바게트 추석 선물세트의 가장 큰 장점은 실패 확률이 낮다는 겁니다. 누구나 아는 브랜드, 가까운 매장, 익숙한 맛, 과하지 않은 가격대. 이 조합은 명절 직전 구매에서 강합니다. 특히 직장 동료, 거래처, 친척 어른처럼 취향을 정확히 모르는 사람에게는 안전한 선택지가 됩니다.
하지만 브랜드가 오래 사랑받으려면 안전함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파리바게뜨라서 샀다’에서 ‘이번 구성은 괜찮아서 샀다’로 넘어가야 합니다. 올해의 K파바 선물세트는 그 방향으로 한 걸음 움직인 느낌입니다. 전통을 너무 무겁게 만들지 않고, 베이커리의 일상성을 완전히 버리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이 전략이 꽤 현실적이라고 봅니다. 명절 선물 시장에서 대단히 새로워지는 건 위험합니다. 대신 익숙한 브랜드가 조금 더 성의 있어 보이는 언어를 갖는 것, 그게 실제 매대에서는 더 강하게 작동합니다. 파리바게뜨가 이번 추석에 한 약속은 거창한 프리미엄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 그래도 생각한 티가 나는 선물’에 가깝습니다. 그 정도의 약속을 꾸준히 지키는 브랜드가 결국 명절마다 다시 장바구니에 들어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