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KIA 경기를 보다가 스코어보다 먼저 불펜 쪽 움직임을 보게 됐다. 이게 요즘 타이거즈 팬들의 마음을 꽤 잘 보여준다. 리드하고 있어도 편하지 않고, 한 점 차가 되면 휴대폰 야구 커뮤니티 알림이 먼저 터진다. 키워드는 분명하다. 기아 팬들 투수 운용 불만 폭발. 그런데 이 불만은 단순히 누가 맞았다는 감정만으로 생긴 게 아니다. 기록을 보면 오히려 더 복잡하다.
불만은 투수 이름보다 타이밍에서 터졌다
팬들이 가장 예민하게 보는 지점은 ‘누가 올라왔느냐’보다 ‘왜 지금이었느냐’다. 5점 차 9회가 한순간에 흔들린 경기, 2점 리드를 지키지 못한 경기처럼 기억에 박히는 장면은 오래 간다. 야구는 144경기 장기전이지만, 팬의 체감은 특정 이닝 하나에 쌓인다. 특히 8회와 9회는 숫자보다 감정의 밀도가 높다.
이범호 감독이 후반기 초반 집단 마무리 체제를 꺼낸 것도 그래서 논쟁적이었다. 상대 타자와 컨디션을 보고 막겠다는 방향은 데이터적으로 이해가 된다. 다만 팬 입장에서는 ‘오늘 누가 끝내는지’가 매번 바뀌면 불안이 커진다. 마무리 투수는 구위만큼 루틴과 상징성이 중요하다. 경기 전부터 9회 그림이 그려져야 보는 사람도, 던지는 사람도 호흡을 맞추기 쉽다.
숫자는 완전히 나쁘지 않아서 더 묘하다
KBO 기록실 기준으로 9월 하순 KIA는 131경기에서 71승 58패 2무, 승률 0.550으로 4위권을 지키고 있다. 팀 평균자책점도 4.28이다. 리그 전체 흐름을 놓고 보면 무너진 마운드라고 말하기 어렵다. 오히려 전반기만 보면 불펜 지표는 꽤 반전이 있었다.
시즌 초반 KIA 불펜 평균자책점은 4월 10일까지 7점대 중반까지 치솟으며 리그 하위권이었다. 그런데 성영탁이 마무리 역할을 맡은 뒤 7월 초까지는 3점대 후반으로 내려갔고, 전반기 불펜 평균자책점도 4.50으로 리그 상위권까지 올라왔다. 조상우가 전반기 40경기 13홀드, 평균자책점 1.53을 찍었고, 곽도규도 복귀 후 20경기 5홀드, 평균자책점 1.88로 힘을 보탰다. 이 정도면 ‘투수진이 답이 없다’는 말은 기록과 어긋난다.
근데 팬들이 화나는 이유는 바로 여기 있다. 좋은 카드가 있는데도 특정 순간에 엇박자가 나는 것처럼 보이면 불만은 더 커진다. 약한 전력이 무너지면 체념이 생기지만, 버틸 수 있는 전력이 흔들리면 ‘왜 이렇게 썼나’라는 질문이 남는다.
집단 마무리 체제의 장점과 대가
집단 마무리는 요즘 야구에서 낯선 개념이 아니다. 9회라고 해서 무조건 한 명에게 맡기지 않고, 상대 중심타선이 8회에 걸리면 가장 강한 투수를 그때 쓰는 방식이다. 세이버 관점에서는 꽤 합리적이다. 승부처는 이닝 숫자가 아니라 타순, 점수 차, 주자 상황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 장점은 분명하다. 좌우 매치업을 더 세밀하게 맞출 수 있고, 특정 투수의 연투 부담을 줄일 수 있다.
- 단점도 선명하다. 역할이 흐려지면 선수 루틴이 흔들리고, 팬들은 매 경기 불펜 선택을 판정하듯 보게 된다.
- 특히 KIA처럼 순위 경쟁 중인 팀은 한 경기 손실이 체감상 두 배로 커진다.
성영탁은 7월 초 기준 31경기 12세이브, 평균자책점 3.41로 시즌 초반 불펜 붕괴를 막아낸 카드였다. 정해영을 셋업으로 돌리고 성영탁을 뒤에 세웠던 선택은 분명 한동안 통했다. 하지만 마무리는 성적이 조금 흔들리는 순간 평가가 급격히 바뀐다. 12세이브보다 9회 블론 하나가 더 크게 보이는 자리다.
팬들이 원하는 건 완벽보다 납득이다
사실 벤치가 모든 정보를 공개할 수는 없다. 불펜 피로도, 몸 상태, 전날 불펜 피칭, 선수 본인의 감각은 기록지 밖에 있다. 팬들이 모르는 사정이 당연히 있다. 그런데 팬들이 느끼는 답답함도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같은 투수가 반복해서 애매한 상황에 올라오거나, 구위가 좋아 보이는 투수가 늦게 나오는 장면이 겹치면 ‘기준이 뭐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투수 운용은 늘 결과론의 공격을 받는다. 막으면 명장이고 맞으면 늦은 교체다. 그렇다고 모든 비판이 결과론으로만 처리되는 것도 아니다. 연투 관리, 좌우 매치업, 이닝 시작 투입과 주자 있는 상황 투입의 차이, 필승조와 추격조의 경계는 실제 승률에 영향을 준다. 특히 팬들이 경기마다 투구 수와 등판 간격까지 챙겨보는 시대에는 벤치의 선택도 더 촘촘하게 해석된다.
이 불만은 아직 기대가 남았다는 신호다
KIA 팬들의 투수 운용 불만이 크게 번지는 건 팀이 완전히 내려앉지 않았기 때문이다. 4위권에서 버티고 있고, 팀 평균자책점도 리그 중상위권이며, 불펜에는 조상우, 성영탁, 정해영, 곽도규처럼 계산 가능한 이름들이 있다. 그래서 더 아깝다. 이 전력으로 놓치는 경기는 단순한 1패가 아니라 운영의 선택지까지 같이 떠올리게 만든다.
벤치가 해야 할 일은 팬 여론에 끌려가는 게 아니라, 납득 가능한 원칙을 경기력으로 보여주는 쪽에 가깝다. 누가 9회를 맡든, 왜 그 투수가 그 상황에 나오는지 흐름이 보이면 불만은 줄어든다. KIA의 올 시즌은 투수진이 약해서만 흔들린 시즌이 아니다. 좋은 재료를 어떤 순서로 꺼내느냐가 순위 싸움의 체감 온도를 바꾸는 시즌이다. 그래서 다음 접전에서 불펜 문이 열리는 순간, 팬들의 시선은 또 한 번 마운드가 아니라 벤치 쪽으로 먼저 향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