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의원 상담실 앞에서 식단표를 들고 한숨 쉬던 분이 있었습니다. 닭가슴살, 고구마, 샐러드만 적혀 있었는데 3일 만에 어지럽고 짜증이 나서 못 하겠다고 하셨어요. 사실 다이어트식단은 버티는 식단이 아니라, 덜 힘들게 오래 이어갈 수 있는 식사 구조에 가깝습니다.
너무 적게 먹는 식단은 오래가기 어렵습니다
체중은 대체로 내가 쓰는 에너지보다 먹는 에너지가 적을 때 줄어듭니다. 다만 그 차이가 너무 크면 몸은 금방 피곤해지고, 배고픔도 세게 옵니다. 여러 비만 진료 권고에서 흔히 말하는 현실적인 감량 속도는 일주일에 약 0.5kg 안팎, 많아도 1kg 정도입니다. 하루 500kcal 정도를 줄였을 때 이런 속도가 나오는 경우가 많지만, 사람마다 키, 체중, 활동량, 복용 약이 달라서 숫자는 참고용으로 보는 편이 좋습니다.
특히 하루 800kcal 이하처럼 매우 낮은 열량의 식단은 혼자 시도하기엔 부담이 큽니다. 단기간에 체중이 빠져 보여도 근육과 수분이 함께 줄 수 있고, 어지럼, 변비, 탈모, 생리 변화, 폭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다이어트식단을 짤 때는 빠른 변화보다 생활 안에 들어오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한 끼는 접시 비율로 생각하면 쉽습니다
복잡한 계산이 싫다면 접시를 3칸으로 나눠 떠올리면 됩니다. 절반은 채소와 해조류, 4분의 1은 단백질, 나머지 4분의 1은 밥이나 고구마 같은 탄수화물로 채우는 방식입니다. 여기에 국물은 적당히, 기름진 반찬은 양을 줄이면 한국식 식사에도 꽤 잘 맞습니다.
- 밥: 평소 한 공기를 먹었다면 반 공기에서 3분의 2공기 정도로 시작
- 단백질: 달걀, 두부, 생선, 살코기, 닭고기, 콩류 중 한 가지를 손바닥 크기 정도
- 채소: 나물, 생채소, 쌈채소, 버섯, 미역 등을 두 주먹 정도
- 지방: 견과류 한 줌이 아니라 작은 한 숟가락 정도로 조절
예를 들면 점심에 현미밥 반 공기, 제육볶음 작은 접시, 상추쌈, 콩나물무침, 된장국 건더기 위주로 먹는 식사가 가능합니다. 제육을 완전히 금지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고기 양과 양념, 밥 양을 함께 조절하면 식사의 만족감이 남습니다.
탄수화물을 끊기보다 질과 양을 바꾸는 편이 낫습니다
다이어트식단을 시작하면 밥부터 끊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탄수화물을 갑자기 거의 없애면 오후에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운동할 힘이 부족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흰빵, 과자, 달달한 음료처럼 빨리 먹고 금방 배고파지는 탄수화물은 줄이는 게 좋지만, 밥, 잡곡, 감자, 고구마, 오트밀 같은 음식은 양을 맞추면 식단 안에 넣을 수 있습니다.
아침을 거르면 점심과 저녁에 양이 커지는 분도 많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거창한 아침보다 삶은 달걀 1개와 플레인 요거트, 또는 두부와 과일 조금처럼 단순한 조합이 낫습니다. 공복 시간이 길수록 저녁에 라면, 치킨, 빵으로 기울기 쉬운 분이라면 아침이나 오후 간식을 작게 넣는 편이 오히려 전체 섭취량을 줄이는 데 유리할 수 있습니다.
외식과 간식은 빼는 게 아니라 자리를 정하면 됩니다
식단이 무너지는 순간은 대개 회식, 배달, 야식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외식을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메뉴를 고를 때는 튀김보다 구이, 크림보다 맑은 국물, 곱빼기보다 보통 양을 먼저 생각하면 부담이 줄어듭니다. 국밥을 먹는다면 밥을 전부 말지 않고, 돈가스를 먹는다면 밥과 소스를 조금 남기는 식입니다.
간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예 참다가 밤에 크게 먹는 것보다, 오후 3~4시에 견과류 조금, 우유나 두유, 삶은 달걀, 과일 반 개 정도를 넣는 편이 나을 때가 있습니다. 다만 견과류와 말린 과일은 건강한 이미지와 달리 열량이 높습니다. 봉지째 먹기보다 작은 접시에 덜어두는 습관이 꽤 큰 차이를 만듭니다.
이럴 때는 식단보다 진료가 먼저입니다
다이어트식단은 건강한 성인에게도 개인차가 큽니다. 당뇨병, 신장질환, 간질환, 심장질환이 있거나 혈압약, 당뇨약,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복용 중이라면 식단을 크게 바꾸기 전에 의료진과 상의하는 게 안전합니다. 임신 중이거나 수유 중인 경우, 청소년, 고령자도 혼자 강한 제한식을 시작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식단을 하는 중에 가슴 통증, 실신, 심한 어지럼, 숨참, 반복되는 구토, 손 떨림과 식은땀, 월경 중단, 폭식과 죄책감이 반복된다면 체중계보다 몸의 신호를 먼저 봐야 합니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6개월 사이 체중의 5% 이상이 빠졌거나, 먹는 양을 줄이지 않았는데 살이 계속 빠지는 경우도 진료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좋은 다이어트식단은 완벽한 메뉴판이 아닙니다. 내 하루에 맞게 밥 양을 조금 줄이고, 단백질을 빠뜨리지 않고, 채소를 늘리고, 너무 배고픈 시간을 줄이는 쪽에 가깝습니다. 몸을 혼내는 방식보다 몸과 협상하는 방식이 결국 더 오래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