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공주에 갔을 때, 공산성보다 먼저 발이 향한 곳은 제민천 골목이었다. 이름만 들으면 큰 관광지 같지 않은데, 그래서 더 마음이 갔다. 버스에서 내려 금강을 건너고, 차 소리가 조금씩 줄어드는 쪽으로 걸어가니 물길 옆으로 낮은 건물과 오래된 간판들이 느리게 이어졌다.
유명 관광지 옆에서 한 발 비껴난 길
공주는 국내여행지로 꽤 익숙한 이름이다. 공산성, 무령왕릉과 왕릉원, 한옥마을처럼 먼저 떠오르는 장소들이 있다. 그런데 제민천 주변은 그 이름들 사이에 살짝 접힌 페이지 같았다. 평일 오전 11시쯤 도착했는데, 20분 넘게 걷는 동안 여행객처럼 보이는 사람은 세 팀 정도였다. 대신 장바구니를 든 어르신, 자전거를 천천히 미는 동네 사람, 가게 문을 열어두고 바닥을 쓸던 사장님이 더 자주 보였다.
이런 분위기는 유명 관광지와 확실히 다르다.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서는 장면보다, 걷다가 잠깐 멈추는 시간이 많다. 물길은 크지 않고 화려하지도 않지만, 그 덕분에 시선이 멀리 도망가지 않는다. 낮은 다리, 벽에 남은 페인트 자국, 창가에 놓인 화분 같은 것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온다.
가는 길은 어렵지 않고, 속도는 천천히 맞춰진다
공주종합버스터미널에서 바로 간다면 택시로 7분에서 10분 정도 잡으면 된다. 걸어서 가면 금강을 건너 원도심 쪽으로 들어가야 해서 30분 안팎이 걸린다. 나는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약한 날이라 걸었다. 금강을 건너는 동안 도시의 폭이 한 번 넓어지고, 원도심에 가까워질수록 골목의 간격이 좁아지는 느낌이 좋았다.
공산성에서 출발한다면 더 가깝다. 성곽 주변의 넓은 길에서 남쪽 골목으로 내려오면 10분 정도면 제민천 물길을 만난다. 공산성을 먼저 보고 내려와도 좋지만, 솔직히 나는 제민천을 먼저 걷고 나서 공산성 쪽으로 올라가는 동선이 더 마음에 들었다. 조용한 길에서 시작하면 공주의 오래된 결이 조금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 공주종합버스터미널 기준: 택시 7~10분, 도보 약 30분
- 공산성 주변 기준: 도보 약 10분
- 가볍게 걷는 시간: 제민천 주변만 천천히 보면 1시간 내외
- 함께 묶기 좋은 곳: 공산성, 산성시장, 중동성당 주변 골목
제민천 골목에서 좋았던 장면들
물길 옆 낮은 벤치
제민천을 따라 걷다 보면 잠깐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띄엄띄엄 나온다. 여행지에서 의외로 중요한 건 이런 짧은 쉼이다. 카페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나는 편의점에서 산 작은 음료 하나를 들고 물소리를 들었다. 물이 깊거나 맑아서 감탄하는 종류는 아니었다. 그런데 도심 한가운데에서 소리가 낮게 흐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산성시장과 다른 온도
산성시장은 확실히 더 생활감이 강하다. 사람이 오가고, 음식 냄새가 올라오고, 물건을 고르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제민천 골목은 그보다 한 박자 낮다. 시장이 점심 무렵의 식탁이라면, 제민천은 식사 뒤에 천천히 걷는 길에 가깝다. 두 곳은 걸어서 이어지기 때문에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같은 공주 안에서도 장소마다 호흡이 다르다는 걸 몸으로 느끼게 된다.
오래된 건물 사이의 작은 가게들
제민천 주변에는 새로 단장한 가게와 오래 버틴 가게가 섞여 있다. 간판만 반짝이는 골목이 아니라, 페인트가 조금 벗겨진 벽과 새로 칠한 문이 같이 있다. 나는 이런 섞임이 좋다. 너무 예쁘게만 꾸민 골목은 사진을 찍고 나면 기억이 금방 옅어지는데, 생활의 흔적이 남은 곳은 나중에 이상하게 다시 떠오른다.
사람 적은 국내여행지를 찾는다면 시간대가 중요했다
제민천은 조용한 편이지만, 공주 자체가 주말에는 꽤 알려진 국내여행지라 시간대를 잘 고르는 편이 낫다. 내가 걷기에 가장 좋았던 때는 평일 오전과 늦은 오후였다. 오전에는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열고, 늦은 오후에는 빛이 건물 옆면에 낮게 걸린다. 반대로 지역 행사나 축제 기간에는 원도심 전체가 활기를 띠어서 한적한 느낌은 줄어든다.
봄과 가을은 걷기 좋지만, 유명한 계절인 만큼 공산성 주변은 사람이 많아질 수 있다. 그럴 때는 큰길만 따라가지 말고 제민천 물길을 기준으로 한 블록 안쪽 골목을 걸으면 훨씬 차분하다. 여행 코스를 빽빽하게 채우기보다, 공산성 하나와 제민천 산책 정도로만 잡아도 하루가 허전하지 않았다.
- 조용한 분위기: 평일 오전, 늦은 오후
- 피하면 좋은 때: 지역 행사와 축제가 겹치는 시간
- 추천 계절: 오래 걷기 편한 봄, 가을
- 어울리는 여행자: 사진 명소보다 동네의 결을 보고 싶은 사람
내가 다시 간다면 이렇게 걷겠다
다시 간다면 터미널에서 바로 택시를 타고 제민천 근처에 내릴 것 같다. 먼저 물길을 따라 40분쯤 걷고, 산성시장 쪽에서 간단히 밥을 먹고, 해가 조금 기울 때 공산성으로 올라가는 순서. 유명한 장소를 아예 빼자는 뜻은 아니다. 다만 먼저 조용한 골목을 지나고 나면, 많이 알려진 곳도 조금 덜 소비하듯 보게 된다.
공주 제민천은 화려한 국내여행지는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심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심심함이 오래 남았다. 여행이 꼭 새롭고 강렬한 장면으로만 채워질 필요는 없으니까. 어떤 날은 낯선 동네의 물길 옆을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내가 잠깐 다른 속도로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