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휴대폰 사진을 노트북으로 옮겼는데, 파일 이름이 IMG_1048, KakaoTalk_202609, screenshot 같은 식으로 뒤섞여 있었다. 여행 사진 몇 장만 찾으려다가 20분을 날리고 나니 문득 궁금해졌다. 이거 다들 하나씩 손으로 바꾸는 걸까?
그래서 파이썬을 꺼냈다. 개발자가 쓰는 어려운 도구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생활 속 반복 작업에는 꽤 현실적인 해결책이 된다. 특히 파일 이름 바꾸기, 엑셀 비슷한 표 다루기, 폴더 안 파일 세기 같은 일은 생각보다 짧은 코드로 끝난다.
왜 하필 파이썬이었나
솔직히 처음부터 멋진 자동화 같은 걸 기대한 건 아니었다. 그냥 사진 312개 이름을 날짜_장소_번호 형태로 바꾸고 싶었다. 손으로 하면 파일 하나에 5초만 잡아도 26분 정도 걸린다. 중간에 실수하거나 딴짓하면 40분도 금방이다.
파이썬은 이런 반복 작업에 강하다. 사람이 규칙을 한 번 정해주면, 컴퓨터가 같은 행동을 계속한다. 예를 들어 폴더 안의 jpg 파일만 찾고, 촬영 날짜 순서대로 번호를 붙이고, 앞에 trip_busannight 같은 이름을 붙이는 식이다.
처음에는 코드가 낯설어서 겁이 났다. 그런데 실제로 필요한 건 거창한 문법이 아니었다. 폴더 위치, 파일 목록 가져오기, 새 이름 만들기, 이름 바꾸기. 이 네 가지만 이해하면 작은 생활 문제 하나는 해결된다.
직접 해보니 제일 무서운 건 실수였다
파일 이름을 한꺼번에 바꾸는 작업은 은근히 긴장된다. 잘못하면 소중한 사진 파일명이 전부 이상하게 바뀔 수 있으니까. 그래서 먼저 원본 폴더를 복사해서 테스트용 폴더를 만들었다. 이 과정 하나만 해도 마음이 꽤 편해진다.
내가 쓴 방식은 단순했다. 폴더 안 파일을 읽고, 확장자가 jpg나 png인 것만 고른 뒤, 001부터 번호를 붙였다. 예를 들면 busan_001.jpg, busan_002.jpg 같은 식이다. 312개 파일이 바뀌는 데는 2초도 안 걸렸다.
여기서 놀란 점은 속도보다 확인 과정이었다. 실행 전에는 바뀔 이름을 화면에 먼저 출력하게 만들었다. 실제 변경 전에 미리 보는 단계다. 이걸 넣으니 실수 가능성이 확 줄었다. 생활 자동화에서 중요한 건 빠르게 끝내는 것보다 되돌릴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쪽에 가까웠다.
파이썬이 생활 문제에 쓸모 있는 순간들
사진 파일 이름 바꾸기 말고도 써먹을 곳이 꽤 많았다. 막상 생각해보면 우리는 매일 비슷한 클릭을 반복한다. 그중 일부는 파이썬으로 덜어낼 수 있다.
- 다운로드 폴더에서 pdf, 이미지, 압축 파일을 종류별로 나누기
- 가계부 csv 파일에서 한 달 카페 지출만 골라 합계 보기
- 여러 개의 텍스트 파일에서 특정 단어가 들어간 줄만 찾기
- 파일명 앞에 날짜를 붙여 순서가 흐트러지지 않게 만들기
- 반복해서 쓰는 메모 양식을 자동으로 생성하기
다만 모든 일을 파이썬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오히려 피곤하다. 5개 파일 이름 바꾸려고 코드를 짜는 건 배보다 배꼽이 커진다. 내 기준으로는 같은 행동이 30번 이상 반복될 때부터 파이썬을 꺼낼 만했다. 100번이 넘어가면 거의 무조건 생각해볼 가치가 있었다.
초보자가 덜 헤매는 기준
파이썬을 처음 만질 때 가장 많이 막히는 부분은 문법보다 위치다. 파일이 어디 있는지, 코드가 어느 폴더를 바라보는지 헷갈리기 쉽다. 그래서 처음에는 바탕화면보다 테스트용 폴더 하나를 만들고, 파일 3개만 넣어서 연습하는 게 낫다.
또 하나는 삭제 작업을 피하는 것이다. 이름 바꾸기나 복사처럼 비교적 되돌리기 쉬운 작업부터 시작하는 편이 좋다. 삭제 자동화는 익숙해진 뒤에도 조심스럽다. 실제로 나는 삭제 대신 old라는 폴더로 옮기는 방식을 더 자주 쓴다.
코드는 짧을수록 좋았다. 처음부터 예쁘게 만들겠다고 함수, 옵션, 로그까지 넣으면 금방 지친다. 생활 문제 해결용 파이썬은 멋진 프로그램이 아니라 작은 도구에 가깝다. 나중에 또 쓸 것 같으면 그때 조금씩 다듬으면 된다.
써보고 나서 바뀐 생각
파이썬을 배운다는 말은 조금 거창하게 들린다. 그런데 실제로 해보니 공부라기보다 귀찮음을 줄이는 습관에 가까웠다. 반복되는 일을 발견하고, 규칙을 적고, 컴퓨터에게 맡기는 과정이다.
사진 312개 이름을 바꾼 뒤 가장 좋았던 건 시간 절약보다 찝찝함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폴더를 열었을 때 파일들이 순서대로 보이고, 원하는 사진을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별것 아닌데 꽤 산뜻했다.
파이썬은 대단한 사람만 쓰는 도구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소한 불편을 그냥 넘기지 않는 사람에게 잘 맞는다. 내 생활에서 반복되는 클릭이 보이면, 이제는 먼저 이런 생각을 한다. 이거 혹시 컴퓨터한테 맡길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