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지인이 전월세 계약을 앞두고 계약서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보증금 2억 4천만 원, 월세 35만 원짜리 빌라였는데 조건만 보면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등기부를 보니 선순위 근저당이 3억 1천만 원 잡혀 있었고, 같은 건물에 이미 전세권 설정된 세대도 있었습니다. 중개사 말은 간단했습니다. “집주인이 사업하는 분이라 대출이 좀 있을 뿐입니다.” 현장에서 오래 굴러본 사람은 이 말이 제일 무섭습니다.
전월세는 싸게 들어가는 게임이 아닙니다
초보일수록 월세 5만 원, 전세보증금 1천만 원 차이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물론 돈 중요합니다. 저도 처음 경매 배울 때는 숫자 하나에 목숨 걸었습니다. 그런데 전월세 계약은 싸게 들어가는 것보다 안전하게 빠져나올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보증금은 내 돈이지만, 계약하는 순간 남의 집 담보 구조 안으로 들어가는 돈이 됩니다.
예를 들어 시세 5억 원짜리 집에 근저당 3억 5천만 원이 있고, 내 보증금이 1억 5천만 원이면 숫자로는 딱 맞아 보입니다. 근데 경매로 넘어가면 감정가 그대로 낙찰되는 경우만 있는 게 아닙니다. 유찰되면 4억, 3억 2천까지도 내려갑니다. 여기에 체납 관리비, 배당 순위, 선순위 임차인까지 끼면 내 보증금은 종이 위 숫자처럼 얌전히 남아 있지 않습니다.
등기부에서 내가 먼저 보는 세 줄
전월세 계약 전에는 등기부등본을 직접 봐야 합니다. 중개사가 보여주는 화면만 믿지 말고, 계약 당일에도 다시 확인하는 게 낫습니다. 경매장에서 많이 본 사고 물건은 대부분 처음부터 위험 신호가 있었습니다. 다만 계약하는 사람이 그 신호를 생활 소음처럼 넘겼을 뿐입니다.
- 소유자가 계약서의 임대인과 같은지 확인합니다.
- 근저당권 설정일과 금액을 봅니다.
- 가압류, 압류, 임의경매개시결정 같은 단어가 있는지 봅니다.
- 다가구주택이면 다른 세대 보증금까지 추정해야 합니다.
특히 다가구주택은 초보가 제일 조심해야 합니다. 아파트처럼 호수별로 등기가 나뉘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내 방 하나만 보는 식으로 접근하면 위험합니다. 건물 전체가 하나의 담보로 묶여 있고, 먼저 들어온 임차인이 많으면 내가 뒤로 밀릴 수 있습니다. 제가 초보 지인에게 다가구 전세를 권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수익형 부동산을 오래 본 사람에게는 계산 가능한 물건일 수 있지만, 첫 전월세 계약자에게는 정보 비대칭이 큽니다.
확정일자와 전입신고만 믿으면 안 되는 이유
전입신고하고 확정일자 받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반은 맞고 반은 부족합니다. 대항력은 전입신고와 실제 거주가 맞물려야 하고, 우선변제권은 확정일자와 순위가 중요합니다. 문제는 내 앞에 이미 누가 있느냐입니다. 내가 아무리 성실하게 신고해도 선순위 근저당보다 앞설 수는 없습니다.
실제 경매 사건을 보면 이런 일이 흔합니다. 임차인은 계약 다음 날 전입신고를 했고 확정일자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근저당은 그보다 2년 먼저 설정돼 있었습니다. 집값이 오를 때는 별일 없어 보이지만, 집주인이 연체하고 경매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낙찰가에서 은행이 먼저 가져가고, 남은 돈으로 임차인이 배당받습니다. 남은 돈이 없으면 보증금 손실이 생깁니다. 서류를 제대로 했는데도 손해를 보는 구조가 여기서 나옵니다.
전세와 월세, 위험의 모양이 다릅니다
전세는 보증금 규모가 크기 때문에 한 번 사고가 나면 타격이 큽니다. 대신 매달 나가는 돈이 적어 현금흐름은 편합니다. 월세는 보증금이 낮아 상대적으로 손실 한도가 작지만, 매달 지출이 누적됩니다. 반전세는 그 중간인데, 보증금도 꽤 크고 월세도 나가는 애매한 구조가 될 때가 있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보는 기준은 단순합니다. 내 보증금이 사라져도 버틸 수 있는 돈인지 먼저 봅니다. 듣기 불편한 말이지만, 전월세 보증금은 안전자산이 아닙니다. 집주인의 신용, 부동산 가격, 선순위 권리, 임차인 순위가 모두 엮인 채권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보증금이 커질수록 이자 아끼는 계산보다 회수 가능성을 먼저 봐야 합니다.
계약 전 30분만 써도 피할 수 있는 것들
저라면 계약 전에 최소한 이 정도는 확인합니다. 등기부등본은 계약 직전 발급본을 보고, 건축물대장으로 위반건축물 여부를 봅니다. 전세보증보험 가입 가능 여부도 확인합니다. 집주인 계좌와 계약서상 임대인 명의가 같은지도 봅니다. 대리인이 나온다면 위임장, 인감증명서, 신분증 확인은 기본입니다.
- 잔금일에 다시 등기부를 확인합니다.
- 특약에는 선순위 권리 변동 금지 문구를 넣습니다.
- 전입신고와 확정일자는 입주 즉시 처리합니다.
- 보증보험이 안 되는 이유를 중개사 말로만 넘기지 않습니다.
- 시세보다 지나치게 싼 집은 싼 이유를 끝까지 묻습니다.
특약 문구도 대충 쓰면 힘이 약합니다. “임대인은 잔금일까지 현 등기상 권리 상태를 유지하며, 추가 담보 설정이나 제한물권 설정 시 임차인은 계약을 해제하고 계약금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처럼 구체적으로 써야 합니다. 물론 특약 하나로 모든 사고가 막히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분쟁이 생겼을 때 내 입장을 설명할 근거가 됩니다.
내가 초보라면 이런 전월세는 피합니다
첫째, 선순위 근저당이 시세 대비 과한 집입니다. 둘째, 다가구인데 전체 임차인 보증금 규모를 알 수 없는 집입니다. 셋째, 집주인이 잔금 전에 대출을 갚겠다고 말만 하는 집입니다. 넷째, 보증보험 가입이 어렵거나 거절되는 집입니다. 다섯째, 중개사가 “다들 이렇게 해요”라는 말로 설명을 줄이는 집입니다.
경매를 오래 하다 보면 무서운 물건은 겉으로 험악하지 않습니다. 도배 새로 되어 있고, 역세권이고, 집주인 말도 부드럽습니다. 사고는 늘 서류의 작은 순서 차이에서 납니다. 전월세 계약은 좋은 집을 고르는 일이기도 하지만, 더 정확히는 나쁜 구조를 걸러내는 일입니다. 저는 초보라면 조금 비싸도 권리관계가 단순한 집을 택하겠습니다. 월세 몇 만 원 아끼려다 보증금 수천만 원을 불안하게 들고 사는 건, 현장에서 봐도 남는 장사가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