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직장 내 성범죄 판결 기사를 보다가 마음이 꽤 무거웠습니다. 회사라는 공간은 하루 중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기도 한데, 그 안에서 권한을 가진 사람이 부하 직원을 상대로 범행을 이어갔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뉴스1과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울산지법은 상습강제추행과 강간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60대 회사 임원 A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습니다. 사회봉사 200시간, 성폭력 치료강의 40시간도 함께 명령됐습니다.
무슨 사건이었나
보도된 사실관계를 기준으로 보면, A씨는 울산 지역의 한 수출입물품 검정업체에서 임원으로 일했습니다. 2019년 11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20대 부하 직원 B씨를 약 50차례 강제추행한 혐의를 받았습니다.
업무를 가르쳐 주겠다는 이유로 접근하거나 신체 접촉을 했고, 입맞춤을 시도한 내용도 보도됐습니다. 2022년 2월에는 야근 중이던 피해자를 회의실로 부른 뒤 성폭행을 시도했으나 피해자가 도망치면서 미수에 그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재판부는 죄질이 상당히 좋지 않다고 봤습니다. 다만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 초범인 점, 피해자와 합의해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을 양형에 반영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지점 때문에 온라인에서는 집행유예가 적절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커졌습니다.
왜 직장 문제로 봐야 하나
이 사건은 단순히 개인 간 문제가 아니라 직장 안의 권력관계와 연결돼 있습니다. 임원과 부하 직원 사이에는 평가, 업무 배정, 고용 안정성 같은 현실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피해자가 거절 의사를 밝혔더라도 그 거절이 곧바로 안전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많은 직장인이 불편한 말을 듣거나 부적절한 접촉을 겪어도 바로 문제 제기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괜히 일을 크게 만든 사람으로 보일까 봐,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까 봐, 주변에서 믿어주지 않을까 봐 망설이게 됩니다.
그래서 직장 내 성희롱과 성폭력 사건에서는 ‘싫다고 말했는지’만 볼 일이 아닙니다. 상대가 거절할 수 있는 환경이었는지, 신고해도 보호받을 구조가 있었는지, 조직이 평소 어떤 분위기를 만들었는지가 같이 중요합니다.
내 회사에서는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
국가법령정보센터에서 확인되는 남녀고용평등법 체계상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해야 하고, 사건을 알게 되면 지체 없이 조사와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합니다. 피해자나 신고자에게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 성희롱 예방교육은 형식적으로 출석만 채우는 교육이 되면 효과가 약합니다.
- 신고 창구는 인사팀 하나로 끝내기보다 외부 상담, 익명 제보, 고충처리위원 등 여러 경로가 필요합니다.
-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상급자일수록 피해자와의 분리 조치가 빠르게 이뤄져야 합니다.
- 피해자에게 합의나 침묵을 압박하는 분위기는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작은 회사일수록 문제가 더 어렵습니다. 임원이 곧 회사 분위기이고, 신고를 받는 사람도 가해자와 가까울 수 있습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제도 문구보다 실제 작동 방식이 더 중요합니다.
집행유예 논란을 어떻게 볼까
이번 판결에서 많은 사람이 불편함을 느낀 부분은 횟수와 기간입니다. 약 2년 넘게 50차례 이어진 혐의, 그리고 강간미수까지 포함된 사건인데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가 선고됐기 때문입니다.
법원은 여러 양형 요소를 종합합니다. 초범인지, 범행을 인정했는지, 피해 회복 노력이 있었는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지 등을 봅니다. 그런데 사회적 시선에서는 ‘합의가 있으면 장기간 반복된 권력형 성범죄도 감형될 수 있나’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합의 자체를 단순하게 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피해자에게 합의는 긴 재판을 끝내고 일상을 회복하기 위한 선택일 수도 있고, 경제적·심리적 부담 속에서 내린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합의 여부만으로 피해의 크기가 줄었다고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에게 남는 문제
이런 사건을 접하면 당장 내 일터의 규칙을 다시 보게 됩니다. 회식 자리에서의 농담, 단둘이 남는 야근, 업무 지도를 이유로 한 과도한 접근, 사적인 연락 요구가 그냥 불편한 분위기로만 넘어가도 되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근데 직장 문화는 거창한 선언보다 작은 기준에서 바뀝니다. 상급자가 부하 직원에게 사적인 만남을 반복적으로 요구하지 않는 것, 몸에 손대는 행동을 친근감으로 포장하지 않는 것, 누군가 불편함을 말했을 때 예민하다고 몰아가지 않는 것부터 시작됩니다.
피해를 겪은 사람에게 필요한 말은 참으라는 조언이 아닙니다. 기록을 남기고, 믿을 수 있는 동료나 외부 상담기관과 연결되고, 회사 절차와 형사 절차를 분리해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회사 역시 개인 간 오해로 축소하기보다 업무 공간에서 벌어진 안전 문제로 다뤄야 합니다.
이번 사건은 특정 연령대의 문제가 아니라 권한이 견제되지 않을 때 직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법원의 판단은 법원의 영역에 남더라도, 일터가 구성원을 보호하는 방식은 우리 생활과 아주 가까운 문제입니다. 안전한 직장은 좋은 복지가 아니라 일할 수 있는 최소 조건에 가깝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