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KBO 기록실에서 하주석의 연도별 성적을 쭉 넘겨봤는데, 숫자가 꽤 묘했다. 화려하게 터진 슈퍼스타의 그래프라기보다는, 기대와 부침과 생존이 계속 엇갈린 선수의 기록에 가까웠다. 그래서 하주석이라는 이름은 단순히 타율 몇 할, 홈런 몇 개로만 읽기 어렵다. 2012년 한화 1라운드 1순위로 들어온 유격수, 한때 대전 내야의 중심으로 기대를 받았던 선수, 그리고 2026년 KIA 유니폼을 입은 베테랑 내야수. 이 흐름 자체가 꽤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1라운드 1순위라는 무게
하주석은 신일고를 거쳐 2012년 한화에 1라운드 1순위로 입단했다. 프로필만 놓고 보면 185cm, 92kg의 체격, 우투좌타, 내야수. 고교 시절부터 공격력 있는 유격수로 기대를 받았고, 한화가 긴 안목으로 키우려 했던 카드였다. 그런데 고졸 야수가 바로 1군에서 자리를 잡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특히 유격수라면 더 그렇다. 타격만 버티면 되는 포지션이 아니라, 수비 부담과 경기 운영까지 함께 짊어져야 한다.
실제로 데뷔 초반 기록은 거칠었다. 2012년 70경기 타율 0.173, 2013년 5경기 타율 0.091. 숫자만 보면 차갑다. 하지만 이 시기는 실패라기보다 적응의 비용에 가까웠다. 군 복무 이후 돌아온 2016년에 흐름이 달라졌다. 115경기에서 타율 0.279, 10홈런, 57타점. 유격수로 이 정도 장타와 타점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꽤 의미 있는 시즌이었다.
가장 좋았던 그림은 2017년과 2021년에 있다
하주석의 커리어를 볼 때 자주 눈에 들어오는 시즌은 2017년이다. 111경기 타율 0.285, 11홈런, 52타점, 장타율 0.440. 여기에 3루타가 8개였다. KBO 기록실 기준으로 그해 3루타 부문 2위권에 해당하는 숫자였고, 단순히 맞히는 타자가 아니라 갭을 가르고 달릴 수 있는 유격수라는 인상을 남겼다. 솔직히 이때의 하주석은 보는 맛이 있었다. 스윙은 크고 삼진도 있었지만, 한 번 맞으면 경기 분위기를 확 바꾸는 장면이 나왔다.
2021년도 빼놓기 어렵다. 138경기, 타율 0.272, 143안타, 10홈런, 68타점, 23도루. 한 시즌을 거의 풀타임으로 버티면서 두 자릿수 홈런과 20도루 이상을 같이 만든 것이다. 이건 유격수에게 꽤 귀한 조합이다. 물론 삼진 135개는 부담이었다. 그래도 공격 생산성과 주루, 출장 경기 수를 같이 보면 팀 입장에서는 계산이 서는 주전 내야수였다. 하주석을 향한 기대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숫자가 말하는 장점과 약점
- 장점은 유격수치고 장타를 기대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2016년 10홈런, 2017년 11홈런, 2021년 10홈런은 포지션 가치를 높이는 기록이었다.
- 또 하나는 운동능력이다. 2021년 23도루, 2022년 20도루는 단순 이미지가 아니라 실제 기록으로 남아 있다.
- 약점은 출루율과 삼진이다. 통산 출루율이 0.318이고, 2026년 9월 말 기준 통산 삼진은 882개다. 타격 사이클이 내려갈 때 버틸 장치가 부족했다.
- 수비에서는 넓은 움직임을 보여준 시기도 있었지만 실책 누적도 적지 않다. 통산 실책 114개라는 숫자는 유격수 커리어의 긴 시간을 보여주는 동시에 리스크도 같이 보여준다.
2022년 이후의 굴곡은 기록만으로 덮이지 않는다
사실 하주석 이야기는 2022년 이후를 빼고 말하기 어렵다. 2022년 그는 125경기에서 타율 0.258, 5홈런, 58타점, 20도루를 기록했다. 표면적으로 완전히 무너진 시즌은 아니었다. 그런데 삼진 126개, 출루율 0.309, 장타율 0.342로 공격의 질은 전성기 기대치와 거리가 있었다. 여기에 판정 항의와 더그아웃 행동으로 인한 논란, 시즌 뒤 음주운전 징계까지 겹치며 선수 이미지와 커리어 흐름이 크게 흔들렸다.
2023년은 더 가혹했다. 25경기 타율 0.114. 표본이 작다고 해도, 복귀 뒤 경기 감각과 입지가 동시에 흔들린 시즌이었다. 운동선수에게 실전 공백은 잔인하다. 타이밍이 밀리고, 수비 첫 스텝이 늦고, 타석에서 공 하나를 참는 감각도 무뎌진다. 팬들의 신뢰를 다시 얻는 문제는 그보다 더 오래 걸린다. 이때부터 하주석은 유망주도, 확실한 주전도 아닌 애매한 구간에 놓였다.
반등의 신호, 그리고 차가웠던 FA 시장
그런데 2024년과 2025년 성적은 흥미롭다. 2024년 64경기 타율 0.292, 출루율 0.349, 장타율 0.394. 2025년에는 95경기 타율 0.297, 82안타, 4홈런, OPS 0.728을 남겼다. 전성기처럼 폭발적인 시즌은 아니어도, 방망이만 보면 다시 1군에서 쓸 수 있는 내야수라는 신호가 있었다. 특히 2025년 276타수 82안타는 단순 운으로만 치부하기 어렵다.
하지만 시장의 평가는 냉정했다. 2025년 초 한화와 1년 총액 1억1000만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고, 사실상 큰 FA 대우와는 거리가 있었다. 같은 포지션에 심우준이 합류하면서 하주석의 입지는 더 좁아졌다. 기록만 괜찮다고 자리가 자동으로 생기지는 않는다. 팀 구성, 수비 안정성, 나이, 이미지, 연봉 구조가 한꺼번에 작동한다. 이게 프로의 무서운 부분이다.
KIA에서의 2026년, 역할은 달라졌다
2026년 7월, 하주석은 한화를 떠나 KIA로 옮겼다. KIA가 불펜 투수 이형범을 내주고 하주석을 받는 1대1 트레이드였다. 한 팀에서 오래 뛴 내야수가 시즌 중 유니폼을 바꾸는 장면은 언제 봐도 묘하다. 팬 입장에서는 추억과 현실이 동시에 온다. 한화에서는 입지가 줄었고, KIA는 내야 자원이 필요했다. 서로의 필요가 맞아떨어진 이동이었다.
2026년 KIA 성적은 9월 말 KBO 기록실 기준 63경기 타율 0.254, 51안타, 4홈런, 19타점, 출루율 0.311, 장타율 0.358이다. 통산으로는 1033경기, 타율 0.267, 900안타, 57홈런, 386타점, 83도루. 이 숫자를 보면 지금의 하주석은 팀 공격을 끌고 가는 중심타자라기보다, 내야 여러 자리를 메우면서 한 방과 경험을 보태는 선수에 가깝다. 예전처럼 미래를 맡기는 카드가 아니라, 현재의 빈틈을 줄이는 카드다.
그래서 하주석을 볼 때 중요한 건 기대치 조절이다. 1라운드 1순위 유격수였던 과거만 붙잡으면 아쉽고, 논란 이후의 이미지만 보면 기록의 맥락이 지워진다. 그는 분명 좋은 시즌을 만든 적이 있고, 동시에 자기 커리어를 어렵게 만든 시간도 있었다. 지금 남은 평가는 아주 단순하다. 제한된 기회 안에서 수비 안정감, 좌타 내야수 가치, 그리고 가끔 나오는 장타를 얼마나 꾸준히 보여주느냐. 하주석의 다음 페이지는 화려한 재등장보다 조용한 증명에 더 가까워 보인다. 야구에서는 그런 선수의 시간이 의외로 오래 기억에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