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회의실 간식 선반을 보다가 웃음이 났습니다. 예전엔 믹스커피와 과자 몇 봉지가 전부였는데, 요즘은 탄산수, 단백질바, 수입 쿠키, 개별 포장 버터까지 올라옵니다. 회사 간식이 그냥 허기를 막는 물건에서 ‘우리가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작은 신호가 된 거죠.
그래서 MBC ‘전지적 참견 시점’ 349회에서 나온 박세리의 탕비실 쇼핑 장면은 꽤 흥미로웠습니다. 2025년 5월 31일 방송에서 박세리는 용인 사무실을 새로 공개했고, 매니저들과 창고형 마트로 가서 팬트리, 베이글, 크림치즈, 라면, 고급 버터, 견과류, 탄산수까지 카트에 담았습니다. 보도된 결제 금액은 약 100만 원. 방송 뒤 사람들이 검색한 단어가 바로 ‘전참시 박세리 버터’였습니다.
버터가 아니라 박세리의 약속이 팔렸다
방송 직후 많이 언급된 제품은 프랑스 프리미엄 버터 라콩비에트, 혹은 라꽁비에뜨로 불리는 브랜드입니다. 개별 포장된 15g 단위 버터, 프랑스 샤랑트푸아투 지역의 AOP 이미지, ‘버터계 에르메스’라는 별명까지 갖고 있죠. 그런데 솔직히 상품 스펙만 보면 비슷한 프리미엄 버터는 더 있습니다.
이 장면이 터진 이유는 제품보다 사람이 먼저였다고 봅니다. 박세리는 대중에게 오래전부터 ‘큰손’, ‘리치 언니’, ‘주변 사람을 잘 챙기는 사람’이라는 캐릭터로 기억돼 왔습니다. 비싼 걸 자랑하려는 느낌보다, 자기 사람에게 좋은 걸 먹이고 싶어 하는 태도가 먼저 보입니다. 브랜드 마케팅에서 이 차이는 큽니다. 같은 고가 제품이라도 누가 어떤 상황에서 꺼내느냐에 따라 ‘허세’가 되기도 하고 ‘환대’가 되기도 하니까요.
프리미엄은 가격표보다 장면으로 설득된다
브랜드를 오래 보다 보면, 프리미엄 상품이 자주 하는 실수가 있습니다. 원산지, 공법, 인증, 수상 이력만 앞세우는 겁니다.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소비자가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은 대개 더 생활 쪽에 붙어 있습니다. 아침에 베이글을 반으로 갈라 따뜻하게 굽고, 차가운 개별 버터를 하나 뜯어 올리는 장면. 손님에게 커피와 함께 작은 트레이를 내는 장면. 그런 장면이 있어야 가격이 이야기로 바뀝니다.
박세리 버터가 검색된 것도 이 구조와 닮았습니다. ‘프랑스산 고급 버터’라는 설명보다 ‘박세리가 사무실 탕비실에 쟁여둔 버터’라는 문장이 더 강합니다. 제품이 쓰일 공간이 보였고, 먹는 사람이 보였고, 왜 그걸 골랐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광고 문구로 만들면 어색했을 말이 관찰 예능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통과된 셈입니다.
1. 캐릭터와 상품의 결이 맞았다
박세리라는 인물은 성취의 이미지와 생활의 이미지가 같이 있습니다. LPGA와 명예의 전당 같은 거대한 이력도 있지만, 예능에서는 냉장고, 식재료, 직원 복지, 손님맞이 같은 일상적 장면으로 자주 소비됩니다. 이 간극이 좋습니다. 너무 멀리 있는 스타가 아니라, 좋은 걸 크게 사서 함께 나누는 사람으로 보이니까요.
라콩비에트 같은 프리미엄 버터는 이 지점에서 득을 봅니다. 개별 포장이라는 실용성은 사무실과 맞고, 고급 식재료라는 이미지는 박세리의 취향과 맞습니다. 브랜드가 억지로 대사를 만든 게 아니라, 이미 형성된 인물의 약속 위에 상품이 올라탄 모양새입니다.
2. ‘나를 위한 사치’보다 ‘우리를 위한 대접’이었다
요즘 프리미엄 식품 시장은 예전처럼 혼자 몰래 즐기는 고급 취향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좋은 빵, 좋은 버터, 좋은 커피는 집들이, 회의, 선물, 손님맞이와 연결됩니다. 작은 돈은 아니지만 명품 가방처럼 멀지는 않고, 평범한 간식보다는 확실히 기분을 바꿉니다.
100만 원 탕비실 쇼핑이라는 숫자도 그래서 기능했습니다. 금액만 보면 과합니다. 그런데 사무실 이전, 직원 복지, 미팅 손님 응대라는 맥락이 붙으니 ‘많이 샀다’가 아니라 ‘제대로 채웠다’로 읽힙니다. 브랜드가 얻은 건 노출량이 아니라 사용 이유였습니다.
운도 있었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사실 이런 장면은 기획한다고 다 되지 않습니다. 방송 타이밍, 출연자의 이미지, 제품의 검색 가능성, 시청자의 생활 욕망이 맞아야 합니다. 전참시 박세리 버터가 운이 좋았던 부분도 분명 있습니다. 관찰 예능은 광고보다 느슨하고, 시청자는 그 느슨함 속에서 진짜 취향을 발견했다고 느낍니다.
근데 운만으로는 오래 가지 않습니다. 검색한 사람이 실제 상품 페이지에서 납득할 만한 정보와 가격, 구매처, 후기, 사용 장면을 만나야 다음 행동으로 넘어갑니다. 2026년 9월 신세계푸드 뉴스룸에서도 라콩비에트를 프리미엄 원재료로 언급하며 베이커리 경쟁력 강화 계획을 밝힌 걸 보면, 이 브랜드는 단순한 방송 화제에서 식품 업계의 원재료 경쟁력 쪽으로도 이동하고 있습니다.
브랜드가 배울 만한 지점
- 첫째, 제품명보다 사용 장면을 먼저 설계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좋은 버터’보다 ‘어디에 올려 먹는 버터인지’를 더 빨리 기억합니다.
- 둘째, 모델의 유명세보다 모델의 생활 맥락이 중요합니다. 박세리에게는 크게 사고 함께 나누는 서사가 이미 있었습니다.
- 셋째, 프리미엄은 설명보다 납득입니다. 가격이 비싸도 쓰임이 분명하면 소비자는 스스로 이유를 찾아냅니다.
- 넷째, 방송 노출 뒤 검색 흐름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름 표기, 구매 동선, 제품 특징이 흐릿하면 관심은 금방 식습니다.
저는 이 사례를 보면서 작은 버터 한 조각이 꽤 큰 브랜드 교과서가 될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라콩비에트가 갑자기 대단해졌다기보다, 박세리라는 사람이 오래 쌓아온 신뢰가 그 상품에 잠깐 빛을 비춰준 장면에 가깝습니다. 결국 브랜드는 약속을 먼저 만들고, 상품은 어느 날 그 약속을 증명하는 소품이 됩니다. 전참시 박세리 버터가 재밌는 건 바로 그 순서가 화면 안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보였다는 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