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가계부를 같이 보다가 2금융권대출 500만 원 때문에 매달 생활비가 계속 밀리는 분을 만났습니다. 대출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월급날 들어온 돈이 카드값과 대출 원리금으로 먼저 빠지고 나면 식비를 줄일 힘조차 남지 않는 구조가 문제였습니다.
제2금융권은 보통 은행이 아닌 저축은행, 상호금융, 카드사, 캐피탈, 보험사 같은 금융회사를 말합니다. 1금융권보다 문턱이 낮게 느껴질 수 있지만 금리, 한도, 상환 방식에 따라 가계부에는 꽤 무겁게 남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출을 볼 때 승인 가능성보다 다음 달 통장 흐름을 먼저 봅니다.
1. 월 상환액은 생활비보다 먼저 빠진다
가계부에서 2금융권대출을 볼 때 가장 먼저 적는 숫자는 금리가 아니라 월 상환액입니다. 예를 들어 500만 원을 연 15%, 36개월 원리금균등으로 빌리면 월 상환액은 대략 17만 3천 원 정도입니다. 총 이자는 약 124만 원입니다. 같은 500만 원이라도 연 8%라면 월 상환액은 약 15만 7천 원, 총 이자는 약 64만 원 수준으로 내려갑니다.
월 1만 6천 원 차이는 작아 보입니다. 그런데 3년으로 늘리면 60만 원 가까운 차이가 됩니다. 이 돈이면 4인 가구 장보기 한두 달,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공과금 몇 달치입니다. 작은 금리 차이가 결국 생활비 항목 하나를 통째로 밀어내는 일이 생깁니다.
2. 승인보다 중요한 3가지 조건
대출 광고는 보통 한도와 속도를 앞세웁니다. 하지만 가계부에는 속도보다 조건이 오래 남습니다. 특히 아래 3가지는 신청 전에 숫자로 적어두는 편이 좋습니다.
- 금리: 연 몇 퍼센트인지, 고정인지 변동인지 확인합니다.
- 기간: 기간이 길수록 월 부담은 줄지만 총 이자는 늘어납니다.
- 수수료: 중도상환수수료, 인지세, 부대비용이 있는지 봅니다.
금융위원회 안내 기준으로 법정 최고금리는 연 20%입니다. 그런데 연 19%대라고 해서 마음이 편해지는 건 아닙니다. 법으로 허용되는 범위 안에 있다는 말과 우리 집 현금흐름에 맞는다는 말은 다릅니다. 저는 연 15%를 넘는 대출은 생활비를 줄여 갚을 수 있는지보다, 대출 없이 버티는 다른 선택지가 정말 없는지부터 다시 봅니다.
3. 가계부에서 먼저 지워볼 5가지 지출
2금융권대출을 생각한다는 건 이미 현금이 빠듯하다는 신호일 때가 많습니다. 이럴 때 무조건 아끼라는 말은 별 소용이 없습니다. 대신 최근 3개월 가계부에서 반복 지출을 펼쳐놓고, 줄였을 때 삶이 크게 무너지지 않는 항목부터 봅니다.
- 안 쓰는 구독료: 월 9,900원짜리 3개면 1년에 35만 원이 넘습니다.
- 배달 추가비: 배달비와 최소주문금액 때문에 한 끼가 8천 원씩 커지는지 봅니다.
- 편의점 소액결제: 하루 5천 원이면 한 달 15만 원입니다.
- 보험 중복: 실손, 운전자, 특약이 겹치는 부분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 카드 할부: 할부는 이미 쓴 돈을 미래 월급에 붙여두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월 20만 원이 나오면 500만 원 대출의 월 상환액 상당 부분을 스스로 만든 셈입니다. 물론 모든 집이 이렇게 여유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숫자로 확인하면 빌려야 할 금액이 500만 원에서 300만 원으로 줄어드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4. 이미 받았다면 이 순서로 줄인다
이미 2금융권대출이 있다면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건 지금부터 어떤 순서로 줄일지입니다. 저는 보통 금리가 높은 대출, 남은 기간이 짧은 대출, 월 상환액이 생활비를 크게 흔드는 대출을 따로 표시합니다.
예를 들어 1,000만 원을 연 16%, 48개월로 갚고 있다면 월 상환액은 대략 28만 원대이고 총 이자는 360만 원 안팎까지 커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월 10만 원을 추가 상환할 수 있다면 단순히 잔액만 줄어드는 게 아니라 앞으로 낼 이자도 같이 줄어듭니다. 다만 중도상환수수료가 있다면 수수료보다 줄어드는 이자가 큰지 계산해야 합니다.
대환대출도 선택지가 될 수 있습니다. 금융감독원 금융상품 비교 서비스나 각 업권의 비교공시를 보면 대략적인 금리 범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공시된 평균 금리와 내 실제 금리는 다를 수 있습니다. 신용점수, 소득, 기존 부채, 연체 이력에 따라 조건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5. 신청 전 가계부에 써야 할 문장
저는 대출을 고민할 때 금액 옆에 이유를 꼭 적습니다. “생활비 부족”이라고만 쓰면 다음 달에도 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이사비 300만 원, 상여금 들어오는 2월까지 4개월 사용”처럼 목적과 기간을 적으면 대출이 임시 다리인지, 생활비 구멍을 막는 테이프인지 보입니다.
2금융권대출이 항상 나쁜 선택은 아닙니다. 병원비, 보증금, 갑작스러운 실직처럼 시간을 사야 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다만 대출금이 월급 통장에 들어오면 잠깐 숨이 트이고, 상환일이 오면 다시 숨이 막히는 구조는 오래 버티기 어렵습니다.
신청 버튼을 누르기 전에는 세 줄만 적어도 좋습니다. 빌리는 금액, 매달 갚을 금액, 대출 없이 줄일 수 있는 금액입니다. 이 세 숫자가 서로 맞지 않으면 승인 여부와 별개로 생활이 먼저 흔들립니다. 돈 관리는 대단한 의지보다 이런 작은 확인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