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김서현의 퓨처스리그 기록표를 다시 넘겨보다가 숫자 하나에서 오래 멈췄다. 평균자책점 3.86. 얼핏 보면 2군에서 아주 무너진 성적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 옆에 붙은 28이닝 28볼넷, 몸에 맞는 공 5개를 보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진다. 김서현 2군 볼넷 제구 난조라는 말은 단순한 인상평이 아니라, 기록표 한가운데 꽤 선명하게 박혀 있는 문제다.
작년 33세이브 투수에게 생긴 낯선 숫자
김서현은 2025년에 한화 뒷문을 맡아 69경기 66이닝, 2승 4패 33세이브 2홀드, 평균자책점 3.14를 남겼다. 2004년생 투수가 마무리 자리에서 이 정도 시즌을 보냈다는 건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삼진도 71개였고, 구위만 놓고 보면 리그 상위권 불펜으로 분류해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시즌에도 볼넷은 완전히 적은 편이 아니었다. 66이닝 31볼넷이면 9이닝당 볼넷이 약 4.2개다. 그래도 당시에는 압도적인 공 힘, 위기에서 삼진을 뽑는 능력, 세이브 상황을 버티는 경험이 숫자의 흔들림을 덮었다. 문제는 2026년에 그 균형이 깨졌다는 점이다.
2026년 1군 성적은 28경기 24이닝, 평균자책점 7.13, 26볼넷, WHIP 2.21이다. 9이닝당 볼넷은 9.8개 수준까지 치솟았다. 작년의 불안 요소가 올해는 경기 운영을 직접 흔드는 변수로 커진 셈이다.
퓨처스 성적표가 더 말해주는 것
KBO 퓨처스리그 기록실에 잡힌 김서현의 2026년 2군 성적은 24경기 28이닝, 평균자책점 3.86, 2승 1패 1세이브 2홀드다. 여기까지만 보면 재정비가 어느 정도 된 듯한 느낌도 있다. 피안타율은 0.160이고 탈삼진은 33개다. 2군 타자들이 김서현의 공을 쉽게 받아친 건 아니라는 뜻이다.
근데 볼넷 28개와 사구 5개가 같이 붙으면 해석이 확 바뀐다. 피안타가 15개뿐인데도 실점이 15점까지 늘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안타를 맞아서 무너진 경기보다, 스스로 주자를 쌓고 카운트를 잃은 경기가 많았다는 쪽에 더 가깝다.
- 2025년 1군: 66이닝 31볼넷, 9이닝당 약 4.2볼넷
- 2026년 1군: 24이닝 26볼넷, 9이닝당 약 9.8볼넷
- 2026년 퓨처스: 28이닝 28볼넷, 9이닝당 9.0볼넷
- 2026년 퓨처스: 피안타율 0.160, 탈삼진 33개
이 조합이 참 묘하다. 공은 여전히 위력적인데, 스트라이크존 안으로 반복해서 넣는 능력이 따라오지 않는다. 강속구 투수에게 제구 난조가 생기면 단순히 볼넷 하나가 늘어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타자는 기다리기 시작하고, 포수는 리드 폭을 줄이고, 투수는 더 세게 던지려다 릴리스가 빨라지거나 늦어진다. 그렇게 한 타석의 볼넷이 다음 타석의 스트라이크까지 잠식한다.
최근 흐름에도 밝은 면과 불안한 면이 같이 있다
최근 10경기만 떼어 보면 평균자책점 2.31이다. 피안타율은 0.083으로 더 낮다. 숫자만 보면 많이 좋아졌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실제로 8월 12일부터 15일까지 퓨처스 3경기에서는 3이닝 무피안타 2볼넷 2탈삼진 1실점, 자책점은 없었다. 1군 복귀 명분으로 삼을 만한 흐름이었다.
하지만 같은 최근 10경기 합계에는 11과 3분의 2이닝 동안 볼넷 13개, 사구 1개가 남아 있다. 평균자책점이 낮아도 볼넷 흐름이 여전히 거칠다는 뜻이다. 7월 31일 SSG전처럼 3분의 2이닝 1피안타 4볼넷 2실점으로 흔들린 경기는, 김서현의 현재 리스크를 압축해서 보여준다.
불펜 투수는 선발처럼 긴 이닝에서 만회할 시간이 없다. 특히 김서현처럼 경기 후반에 쓰일 가능성이 큰 투수는 볼넷 하나가 곧 동점 주자, 역전 주자로 바뀐다. 150km대 공을 던질 수 있다는 매력은 여전하지만, 그 공이 볼카운트 3-1에서 빠지면 타자는 방망이를 낼 이유가 줄어든다.
제구 난조는 멘탈만의 문제가 아니다
팬들은 흔히 제구가 흔들리면 멘탈을 먼저 말한다. 물론 마무리 경험, 큰 경기 피홈런, 시즌 초반 부진이 투수의 머릿속에 남는 건 자연스럽다. 하지만 제구는 마음만으로 해결되는 항목이 아니다. 투구 밸런스, 하체 이동, 팔이 나오는 타이밍, 릴리스 포인트, 변화구 감각이 한 번에 엮인다.
김서현은 역동적인 투구폼을 가진 투수다. 장점은 힘이다. 공이 살아 들어올 때는 타자가 알고도 밀린다. 반대로 밸런스가 조금만 어긋나면 공이 존을 크게 벗어난다. 구단이 투구폼 수정 제안을 했다는 보도까지 나왔고, 김서현은 자신의 동작 안에서 답을 찾는 쪽을 택했다. 이 선택이 성공하려면 결과보다 과정의 반복성이 먼저 보여야 한다.
복귀 조건은 의외로 단순하다
김서현에게 필요한 건 화려한 1이닝 3탈삼진보다 평범한 스트라이크다. 첫 타자에게 볼넷을 주지 않는 경기, 20구 안팎에서 이닝을 끝내는 경기, 변화구로 카운트를 잡는 경기, 몸쪽 공이 빠져도 다음 공을 존에 넣는 경기. 이런 장면이 여러 번 이어져야 1군 벤치도 계산을 세울 수 있다.
그래도 기다릴 이유는 분명히 있다. 피안타율 0.160과 28이닝 33탈삼진은 공 자체가 죽지 않았다는 신호다. 완전히 맞아 나가는 투수라면 복구 방향이 더 어렵다. 김서현은 아직 타자를 압도할 재료를 갖고 있다. 다만 지금은 그 재료를 경기 안에서 쓸 수 있게 만드는 단계다.
그래서 나는 김서현을 당장 실패로 묶어두기보다, 볼넷이 줄어드는 몇 경기의 연속성을 더 보고 싶다. 강속구 투수의 회복은 대개 한 번의 번쩍임보다 반복되는 평범한 스트라이크에서 시작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