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퓨처스리그 기록표를 넘기다 김서현 이름 앞에서 손이 멈췄다. 구속만 놓고 보면 여전히 눈이 가는 투수인데, 기록의 행간은 꽤 복잡했다. 단순히 ‘공이 빠르다’로 설명하기엔 볼넷과 사사구가 자꾸 흐름을 끊고 있었다.
빠른 공보다 먼저 보이는 숫자
KBO 퓨처스리그 기록실 기준으로 김서현의 2026년 2군 성적은 24경기 28이닝, 평균자책점 3.86, 2승 1패 1세이브 2홀드로 전해졌다. 표면만 보면 완전히 무너진 성적은 아니다. 그런데 불펜 투수에게 더 중요한 건 평균자책점 하나보다 등판마다 주자를 얼마나 공짜로 내보냈느냐다.
김서현의 문제는 맞아서 무너지는 장면보다, 타자와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카운트가 불리해지는 장면이 반복됐다는 데 있다. 볼넷은 단순한 출루 하나가 아니다. 불펜 투수에게는 벤치의 계산을 흔드는 신호다. 특히 1이닝을 맡아야 하는 투수가 선두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내면, 그 순간부터 투구 내용이 아니라 위기관리 능력 시험으로 바뀐다.
2군에서도 반복된 제구 난조
보도된 퓨처스리그 등판들을 이어서 보면 흐름이 더 선명하다. 5월 말 KIA전에서는 1이닝 1볼넷 3탈삼진 무실점으로 강한 구위를 보여줬다. 삼진 세 개는 분명 매력적인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 경기에도 볼넷이 하나 있었다. 무실점이라는 결과 뒤에 작은 불안 신호가 같이 붙어 있었던 셈이다.
6월 상무전에서는 몸에 맞는 공과 볼넷이 겹치며 경기 운영이 꼬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7월 말 SSG전에서도 ⅔이닝 1피안타 4사사구 2실점으로 흔들렸다. 이런 기록은 팬 입장에서 답답할 수밖에 없다. 150km대 공을 던지는 투수가 2군 타자들을 상대로도 스트라이크존을 계속 놓치면, 문제는 구위보다 재현성 쪽으로 옮겨간다.
- 강점: 타자를 압도할 수 있는 빠른 공과 탈삼진 능력
- 불안 요소: 선두타자 출루, 연속 볼넷, 사사구 이후 급격한 흔들림
- 관전 포인트: 무실점보다 스트라이크 비율과 볼넷 억제
김서현을 어렵게 만드는 건 기대치다
사실 김서현은 평범한 유망주로 소비되기 어려운 투수다. 입단 당시부터 강속구, 높은 잠재력, 마무리 후보라는 단어가 따라붙었다. 팬들이 그를 보는 기준도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2군에서 1이닝 무실점을 해도 ‘좋다’보다 ‘볼넷은 왜 또 나왔지’라는 반응이 먼저 나오는 이유다.
근데 이 기대치가 선수에게는 꽤 무거운 압박일 수 있다. 불펜 투수는 한 경기에서 보여줄 표본이 짧다. 선발처럼 5이닝, 6이닝 안에서 리듬을 되찾을 시간이 없다. 첫 타자에게 볼넷을 주는 순간, 투수 본인도 관중도 벤치도 같은 생각을 한다. 또 시작인가. 이 인식이 쌓이면 공 하나가 더 무거워진다.
김서현의 투구를 볼 때 가장 아쉬운 대목은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힘이 너무 큰데, 그 힘을 매번 같은 방향으로 꺼내지 못하는 느낌에 가깝다. 빠른 공이 스트라이크존 위아래로 크게 벗어나면 타자는 굳이 방망이를 낼 이유가 없다. 그러다 카운트가 몰리면 변화구도, 직구도 선택지가 좁아진다.
복귀 신호도 있었지만 숙제는 남았다
8월에는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 김서현은 퓨처스리그 최근 3경기에서 3이닝 무피안타 2볼넷 2탈삼진 1실점, 그것도 비자책점으로 기록됐고 이후 1군 복귀 소식도 전해졌다. 이 대목은 중요하다. 완전히 무너진 투수라면 복귀 카드로 다시 꺼내기 어렵다. 한화가 여전히 김서현의 공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만 팬들이 보고 싶은 건 단발성 호투가 아니다. 1이닝 무실점보다 10구 안팎으로 첫 타자를 제압하는 장면, 볼넷 뒤에도 바로 스트라이크를 꽂는 장면, 주자가 있을 때 투구 템포가 무너지지 않는 장면이다. 김서현이 다시 중요한 이닝을 맡으려면 평균자책점보다 이런 장면들이 먼저 쌓여야 한다.
기록표가 말하는 진짜 과제
김서현의 2군 볼넷 난조는 단순히 ‘멘탈 문제’ 같은 말로 덮기엔 너무 아깝다. 기록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 구위는 여전히 위협적이지만, 불펜 투수에게 필요한 최소 조건인 볼넷 억제가 아직 안정권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솔직히 팬 입장에서는 답답하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유형의 투수다. 공 하나만 제대로 들어가면 타자가 밀리는 게 보이고, 동시에 공 두세 개가 빠지면 이닝 전체가 흔들린다. 그래서 김서현의 다음 등판에서 봐야 할 숫자는 최고 구속보다 볼넷, 투구 수, 첫 타자 승부다. 그 세 숫자가 조용해질 때, 빠른 공의 이야기도 다시 크게 들릴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