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한국 베네수엘라전을 보는데, 스코어보다 먼저 눈에 걸린 건 경기의 온도였다. 0-0이라는 숫자는 차갑고 단순하지만, 그 안에는 대표팀이 왜 답답했는지 꽤 선명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울산의 0-0, 무승부보다 더 무거웠던 흐름
2026년 10월 2일 열린 하나은행 초청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경기에서 한국은 베네수엘라와 0-0으로 비겼다. 친선전이라는 이름표가 붙었지만, 이 경기는 그냥 가볍게 넘길 수 있는 90분은 아니었다. 로베르트 모레노 임시 감독 체제에서 방향을 확인해야 했고, 우루과이전 1-4 패배 뒤 분위기를 다시 세워야 하는 경기였기 때문이다.
상대인 베네수엘라는 남미 특유의 압박과 전환 속도를 가진 팀이다. FIFA 랭킹상 한국이 30위권 초반, 베네수엘라가 40위권 후반으로 소개된 경기였지만, 실제 경기 안에서는 그 격차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이 공을 오래 만지는 장면보다, 베네수엘라가 공을 빼앗은 뒤 빠르게 전진하는 장면이 더 날카롭게 남았다.
- 경기일: 2026년 10월 2일
- 장소: 울산 문수축구경기장
- 결과: 한국 0-0 베네수엘라
- 슈팅 수: 한국 7개, 베네수엘라 12개
- 한국의 첫 슈팅: 전반 45분
슈팅 7-12, 숫자가 말한 공격의 막힘
이 경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록은 슈팅 수였다. 한국이 7개, 베네수엘라가 12개. 홈 경기에서, 그것도 흐름을 되살려야 하는 평가전에서 슈팅 수가 밀렸다는 건 단순한 통계 이상이다. 공격 진입 과정이 느렸고, 박스 근처에서 마지막 패스가 끊기는 장면이 반복됐다.
특히 전반 45분에야 첫 슈팅이 나왔다는 점은 꽤 상징적이다. 축구에서 슈팅은 단순히 골을 노리는 행동이 아니라, 상대 수비를 뒤로 물러서게 만드는 압박 신호다. 그런데 한국은 전반 대부분의 시간을 그 신호 없이 보냈다. 점유가 있더라도 상대가 두려워하지 않는 점유라면 경기의 무게를 가져오기 어렵다.
공격보다 수비가 먼저 보인 경기
송범근의 선방, 김민재를 중심으로 한 수비 대응은 결과적으로 무실점을 지켜냈다. 하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수비가 잘해서 버틴 경기와 공격이 잘 풀려서 주도한 경기를 구분하게 된다. 이날 한국은 전자에 가까웠다. 수비 라인이 여러 번 긴장했고, 후방에서 공을 끊어도 전방으로 연결되는 속도가 충분히 살아나지 않았다.
손흥민의 59호골이 멈춘 밤
경기 전 관심은 손흥민의 A매치 득점 기록에도 쏠렸다. 앞선 두 경기 연속골로 차범근 전 감독의 한국 남자 A매치 최다 58골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베네수엘라전은 59호골을 기대하게 만드는 무대였다. 그런데 기록은 다음 경기로 넘어갔다.
사실 손흥민이 침묵했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다. 문제는 손흥민에게 공이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빠르게 돌아서서 슈팅할 공간, 수비 뒷공간을 찌르는 패스, 측면에서 접고 들어오는 연계가 자주 만들어지지 않았다. 대표팀 에이스에게 모든 걸 맡기는 경기가 아니라, 에이스가 장점을 꺼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다시 드러났다.
베네수엘라는 왜 쉬운 상대가 아니었나
베네수엘라는 월드컵 본선 경험이 없는 팀이라는 설명 때문에 가볍게 보일 수 있다. 그런데 남미 예선에서 계속 강팀들과 부딪히는 팀은 기본적으로 몸싸움, 간격 유지, 역습 타이밍이 단단하다. 이름값보다 경기 체질이 까다로운 상대였고, 한국은 그 밀도 높은 압박을 빠르게 풀어내지 못했다.
베네수엘라는 수비 시 간격을 좁히고, 공을 빼앗으면 곧바로 전진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중앙에서 한 번에 전진 패스를 넣기 어려웠고, 측면으로 돌려도 크로스나 컷백까지 이어지는 빈도가 낮았다. 결국 0-0은 운 나쁜 무득점이라기보다, 공격 작업의 완성도가 아직 충분하지 않았다는 쪽에 가까웠다.
우즈베키스탄전까지 남은 과제
한국은 2026년 10월 6일 용인 미르스타디움에서 우즈베키스탄을 상대한다. 베네수엘라전이 답답했다면, 우즈베키스탄전은 반응을 보여줘야 하는 경기다. 단순히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건 전진 속도, 슈팅 빈도, 그리고 손흥민에게만 쏠리지 않는 공격 루트다.
대표팀 경기를 볼 때 가끔 스코어보다 슈팅 시점, 볼 탈취 뒤 첫 패스, 박스 안 진입 횟수 같은 숫자가 더 많은 말을 해준다. 한국 베네수엘라 0-0도 그랬다. 비겼다는 사실보다, 왜 전반 45분까지 슈팅이 나오지 않았는지가 더 오래 남는다. 팬으로서는 답답했지만, 바로 그런 경기에서 팀의 현재 위치가 가장 솔직하게 드러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