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라 콜린스 전시를 드라마 한 시즌처럼 따라갔더니, 팬심의 민낯이 보였다

페트라 콜린스 전시를 드라마 한 시즌처럼 따라갔더니, 팬심의 민낯이 보였다

얼마 전 사진첩을 뒤적이다가 대림미술관에서 봤던 《페트라 콜린스: fangirl》 사진들이 줄줄이 나왔는데, 이상하게 전시장이 아니라 드라마 한 장면들이 떠올랐습니다. 분명 사진전이었는데, 보고 나면 인물의 과거 회상, 방 안의 비밀, 팬심이 커지는 순간까지 한 시즌을 몰아본 느낌이 남더라고요.

첫 장면부터 이미 취향을 고백하는 전시

《페트라 콜린스: fangirl》은 2025년 8월 29일부터 2026년 2월 15일까지 서울 대림미술관에서 이어졌던 대규모 개인전입니다. 사진, 영상, 설치, 패션, 아카이브, 에디토리얼 작업까지 500여 점 규모로 구성됐고, 페트라 콜린스가 왜 2010년대 이후의 이미지 감각을 바꾼 작가로 자주 불리는지 꽤 넓게 보여줬습니다.

입장하자마자 먼저 오는 건 정보가 아니라 온도였습니다. 뿌연 빛, 분홍과 보랏빛 사이의 색감, 방금 울고 난 사람 같은 얼굴, 너무 예쁜데 어딘가 불안한 공간. 이 전시는 작품을 하나씩 해석하라고 밀어붙이기보다, 먼저 그 분위기 안에 앉혀놓습니다. 그래서 미술관에 왔다기보다 누군가의 오래된 다이어리를 허락 없이 펼친 기분도 살짝 들었어요.

몽환적인데, 생각보다 꽤 서늘하다

페트라 콜린스 하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는 ‘몽환’, ‘소녀성’, ‘틴에이지 감성’ 쪽입니다. 그런데 직접 전시장 동선을 따라가면 그 단어들이 생각보다 납작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됩니다. 예쁘고 부드러운 장면 안에 불안, 욕망, 자기 연출, 타인의 시선이 같이 들어 있거든요. 예능으로 치면 화사한 세트장에서 웃고 있는데, 편집점 사이사이에 출연자의 진짜 피곤함이 비치는 순간과 비슷합니다.

특히 좋았던 건 사진만 벽에 걸어두는 방식이 아니라 방, 무대, 소품, 영상이 함께 움직인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떤 공간은 인형의 집 같고, 어떤 공간은 뮤직비디오 세트장 같고, 또 어떤 장면은 SNS 피드 속 이미지를 그대로 입체화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관람자가 작품 앞에 서는 사람이 아니라 그 이미지 세계 안으로 들어간 사람처럼 배치되는 구조였죠.

개인적으로 좋았던 지점

  • 사진과 설치가 같이 놓이면서 작품의 분위기가 훨씬 오래 남았습니다.
  • 셀러브리티 이미지가 단순한 유명인 사진이 아니라 팬심과 소비의 장면으로 읽혔습니다.
  • 색감은 달콤하지만, 그 안에 있는 감정은 생각보다 복잡했습니다.
  • 전시장 동선이 짧은 영상 시리즈를 이어 보는 것처럼 리듬감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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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걸이라는 제목이 의외로 날카로운 이유

‘fangirl’이라는 제목을 처음 보면 가볍게 덕질, 팬심, 좋아하는 마음 정도로 읽기 쉽습니다. 그런데 전시를 보고 나면 이 단어가 훨씬 복잡하게 들립니다. 누군가를 좋아해서 이미지를 모으고, 따라 하고, 다시 찍고, 나만의 방식으로 소유하려는 마음. 그 마음은 귀엽기도 하지만 때로는 집요하고, 또 때로는 나를 만드는 재료가 됩니다.

드라마로 치면 이 전시는 성장물과 심리극 사이에 있습니다. 주인공이 자기 방에서 시작해 점점 더 큰 무대로 나아가는데, 그 과정이 완전히 밝지만은 않습니다. 카메라 앞의 인물들은 예쁘게 꾸며져 있지만, ‘보여지는 나’와 ‘진짜 나’ 사이에서 계속 흔들립니다. 그래서 관람 중간중간 나도 모르게 내 예전 프로필 사진, 좋아했던 아이돌 포스터, 친구들과 찍은 필름 사진까지 같이 떠올랐습니다.

호불호는 여기서 갈릴 것 같다

솔직히 이 전시는 취향을 꽤 탑니다. 선명한 메시지, 사회적 발언, 작품별 설명이 또렷한 전시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조금 흐릿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미지의 결, 색감, 공간의 무드, 팬덤 문화의 감정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꽤 오래 붙잡히는 전시입니다. 특히 사진전인데도 ‘사진을 감상했다’보다 ‘어떤 세계관을 지나왔다’는 감상이 더 강합니다.

또 하나 호불호가 갈릴 부분은 셀러브리티와 브랜드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섞인다는 점입니다. 누군가는 그 지점을 동시대적이라고 볼 수 있고, 누군가는 상업 이미지와 순수 예술의 경계가 애매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 애매함이 페트라 콜린스답다고 봤습니다. 요즘 우리가 이미지를 소비하는 방식 자체가 이미 광고, 팬덤, 사적인 기억, 알고리즘 사이를 계속 오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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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도 남는 장면

전시가 끝난 뒤에도 페트라 콜린스라는 이름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2026년 6월에는 보그 살롱에서 연준을 촬영한 프로젝트 전시가 짧게 열리기도 했고, 그 흐름을 보면 그의 작업이 케이팝 팬덤, 패션, 잡지 이미지와 얼마나 잘 맞물리는지 다시 보이더라고요. 그냥 예쁜 사진을 잘 찍는 작가라기보다, 누군가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를 이미지로 만드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제 취향으로는 《페트라 콜린스: fangirl》이 아주 친절한 전시는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자주 생각나는 전시였습니다. 보는 동안에는 ‘예쁘다’가 먼저 나오고, 나와서는 ‘왜 저 장면이 불편했지’가 따라오는 타입. 그래서 더 드라마 같았습니다. 화면은 반짝이는데 인물의 속은 조용히 흔들리는 작품, 그런 장면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페트라 콜린스의 세계가 꽤 오래 남을 겁니다.

페트라 콜린스 전시를 드라마 한 시즌처럼 따라갔더니, 팬심의 민낯이 보였다 - 요약